여러분, 조경수를 보면 소나무가 뒤틀린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보고 "아, 아름답다!"라는 표현을 합니다.
그런데 이 나무는 식물학자의 눈에는 아름답게 보이지 않는 거예요.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이렇게 보이는 거예요.
왜냐하면 원래 소나무는 쭉 뻗어서 자라는 것이 정상인데, 기후와 풍파를 겪으면서 몸이 굽고 뒤틀린 것입니다.
뿌리가 제대로 뻗지를 못하니까 몸부림을 치면서, 균형을 맞추면서 만들어낸 종합작품입니다.
고통의 산물이죠.
그런데 이 소나무는 고통을 겪어서 ’기형 소나무’가 됐는데 우리는 그것을 ’아름답다!’고 찬탄하는 겁니다.
왜 이런 말이 붙여졌을까요?
아마도 우리가 공감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우리도 고통을 겪고 나면은 고통으로부터 오는 지혜가 있고, 깨달음이 있어요.
그리고 고통으로부터 오는 좋은 결과가 있어요.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고통을 선용할 때 고통은 좋은 열매를 맺습니다.
그래서 아마 그렇지 않나 싶습니다.
고통이 엄습할 때 당장 우리는 피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고통을 긍정적인 눈으로 보고 "이것을 견디면 나는 업그레이드된다. 이것을 견디면 나는 탈바꿈한다. 이것을 견디면 나에겐 새로운 지혜가 생긴다"고 생각하시면 아마 자세가 바뀌지 않을까 싶습니다.
독일의 플루타크 연구소가 있어요.
거기서 1000명을 대상으로 연구를 했어요.
이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이미 지혜롭고, 성공했고, 명망이 있다고 인정이 된 분들을 샘플링을 해서 조사를 한 거예요.
이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거기까지 갔을까를 조사했더니 두 가지 공통점이 나왔다고 합니다.
첫 번째로 이 사람들은 전부 다 역경을 이겨낸 경험이 있다는 것입니다.
순탄한 삶을 산 사람은 1000명에 못 들어온 거예요.
두 번째로 이 사람들은 전부다 진취적이고,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똑같은 고통이 왔을 때 비관한 사람들은 여기에 못 들어온 거예요.
고통이 왔을 때 그것을 진취적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활용했던 사람들이 결국은 이런 반열에 들어설 수가 있었던 것이죠. 이런 것들을 우리가 생각하고 고통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 좋겠습니다.
키에르케고르는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부정적 감정 역시 욕망의 한 형태며 따라서 생의 에너지다"라고 했습니다.
불안은 우리를 절망으로 이끌 수도 있지만 우리를 비상시켜 주기도 한다는 얘기입니다.
이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는 거예요.
그는 또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말합니다.
불안할 때 절망을 선택하고 죽음을 선택하면 비극이죠.
우리는 도약과 비상을 선택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요즘에 두바이가 약간 흔들린다고 그래요.
이번에 타격을 받아서 좀 흔들렸는데 또다시 새로운 비전을 세계에 선포하고 추진중입니다.
두바이 프로젝트는 어디서 왔냐, 바로 불안에서 왔어요.
중동지역이 지금은 누리지만 미래는 불안하죠.
(국토의 90%가 사막이고 연 평균 기온이 40~45도를 넘나드는 나라에서) 석유가 고갈되면 뭘 먹고 살까, 그들은 이것이 불안했던 겁니다.
그 불안으로 미래를 대비해서 세계에서 가장 훌륭하다는 인공도시를 만든 겁니다.
지금 전 세계에서 수많은 관광객들로 몰려들지 않습니까?
우리에게 고통과 불안이 엄습할 때 그것들이 지니고 있는 긍정적인 측면을 생각해서 그것을 선용하는 지혜를 가져보자는 것입니다.
차동엽 신부
'東西古今'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위기를 도약의 기회로 삼아라 (0) | 2013.07.31 |
---|---|
어떤 문제도 영원하지 않다 (0) | 2013.07.29 |
삼식(三識) (0) | 2013.07.26 |
본색 (0) | 2013.07.24 |
휴브리스(Hubris 오만) (0) | 2013.07.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