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적인 자동차 왕 헨리 포드(Henry Ford).
그는 탁월한 비전과 창조력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스스로의 능력에 도취되어 자신의 비전의 노예가 되고 말았습니다.
많은 주위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그는 모델T 외엔 그 어떤 새로운 모델의 자동차도 개발하지 않았습니다.
자동차 색깔도 검은 색 외엔 만들지 않았습니다.
1927년까지 근 20년 동안 포드는 한 종류의 디자인만 고수했습니다.
포드가 옛것만 고집하고 있는 사이에 GM의 젊은 회장 슬로언(Alfred P. Sloan)은 여러 자동차 회사들을 통합하고, 소비자의 취향을 십분 고려한 다양한 종류의 차 디자인과 저렴한 가격의 차들을 생산 판매하여 급속도로 포드를 따라붙었습니다.
탁월한 발명가였고 비전 메이커였으며 전략가였던 헨리 포드였지만, 포드는 회사를 자기 개인의 왕국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포드는 결국 GM에게 추월 당했고, 1970년대 중반부터는 일본차, 독일차, 스웨덴차에게 밀리고 말았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기 위를 보지 못합니다.
자동차 왕 헨리 포드는 모델T만을 고집하다가 GM에게 자동차업계의 패권을 뺏겨 버렸습니다.
아테네는 무적이라고 자부했던 함대를 가지고도 해전에서 스파르타에게 패했고,
1차 대전 때 프랑스는 마지노선(Maginot Line)을 너무 믿다가 무너져 버렸습니다.
이를 휴브리스(Hubris 오만)라고 합니다.
과거의 성공으로 인해 교만해지고 지적, 도덕적 균형을 상실하고 판단력까지 잃게 되는 현상입니다.
토인비는 역사를 바꿔가는 창조적 소수들이 빠지기 쉬운 대표적 오류로 휴브리스를 지적했습니다.
실제 휴브리스는 역사적 전환기 곳곳에서 나타납니다.
가령 쿠데타나 혁명을 통해 정권을 잡은 창조적 소수들이 자신들을 성공시킨 그 방식대로 국가를 경영하다 국민적 저항을 불러일으키고 또 다른 유혈혁명을 낳게 된 사례를 적잖게 목격할 수 있습니다.
휴브리스는 사람이나 조직만이 아니라 문명까지도 몰락시킵니다.
흔히 문명의 몰락은 외부의 적이 아니라 내부 요인에서 비롯된다고 역사학자들은 말합니다.
그리스와 로마, 대영제국에 이르기까지 문명의 쇠퇴원인으로 한결같이 지적된 것은 강자의 오만이었다고 합니다.
4대문명 발상지인 메소포타미아에서 발원한 이슬람국가 이라크가
오늘날 저 지경에 이른 것도 휴브리스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습니다.
다양한 문화를 수용하고 관용을 베풀던 시절에는 이슬람문화가 화려하게 꽃피었지만
어느 순간 강자가 되면서 오만에 빠지고 다른 종교와 문화를 배척하기 시작하면서 이슬람문화는 쇠퇴했다는 것입니다.
항우는 초나라 장군 집안 출신으로 귀족이었습니다.
그는 힘이 장사였고,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였습니다.
유방은 아무 배경도 없는 건달 출신이었습니다.
그런데 유능한 항우가 무능한 유방에게 패했습니다.
유방은 자신의 부족함을 알았기에 부하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고, 그들이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게 해주었습니다.
그러나 항우는 자신이 너무도 유능했기에 부하들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런 일은 국가경영은 물론 대기업, 중소기업을 막론하고 모든 영역에서 일반적으로 일어납니다.
1970 ~ 80년대에 크게 성공을 거둔 우리 나라 기업들 중에 지금은 형체도 없이 사라진 회사들이 많습니다.
시대와 환경, 그리고 기술여건 등이 많이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성공을 가져다 준 경영방식을 그대로 고집하다 망한 것입니다.
휴브리스는 창조적 소수가 극복해야 할 업보(業報)의 하나입니다.
요즘 우리 사회 곳곳에서 갈등이 빚어지고 있는 것도 휴브리스 탓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휴브리스에서 벗어나려면 자기반성에 소홀하지 않으면서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겸손한 자세가 필요합니다.
/박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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