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西古今

지도자에게 있어 좋은 측근

뚜르(Tours) 2013. 10. 19. 18:58

석가(釋迦)가 늙어서 시종 겸 비서를 쓰기로 했다.
제자들이 의논 끝에 아난(阿難)이라는 청년을 추천했다.
아난은 이를 너무 분에 넘치는 영광이라면서 사양했으나 결국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조건을 달고 맡기로 했다.

첫째, 새 옷이든 헌 옷이든 석가의 옷을 받지 않는다.
그것은 자기가 다른 제자보다 더 총애받는다는 것을 스스로 경계 하기 위해서였다.

둘째, 석가가 신자 집에 초대받아 갔을 때, 동석하고 음식을 같이 먹지 않는다.
그것은 자기가 석가의 측근이라는 이유로 우쭐대지 않도록 자숙하기 위한 것이었다.

셋째, 아무 때나 석가를 만나서 시중들지 않는다.
그것은 남의 흉을 보거나 고자질하지 않겠다는 자계(自戒)를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런 측근을 얻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위(魏)의 문후(文候) 때 서문표(西門豹)가 지방 장관에 발탁되었다.
청렴결백한 그는 조금도 사리사욕에 흐르지 않았다.
당당한 그는 문후의 측근들에게 허리를 굽히거나 인사치레를 해야할 필요를 전혀 느끼지 않았다.
그래서 측근들로부터 미움을 받았다.

1년 후에 서문표가 시정 보고서를 제출하자 뜻밖에도 업무 실적이 부실하다 하여 면직 처분을 받게 되었다.
그것은 측근들이 기회 있을 때마다 임금에게 그를 중상모략한 때문이었다.
그러자 그는 다음과 같이 탄원서를 제출했다.

“지금까지 저는 지방을 어떻게 다스려야 좋을지 몰랐는데 이제 와서 겨우 알게 되었습니다.
제발 다시 한 번 지방 행정을 맡겨 주십시오.
만약에 이번에도 좋은 성적을 올리지 못한다면 저를 단죄하신다 해도 좋습니다.”

이를 딱하게 여긴 문후는 그를 복직시켰다.
서문표는 이번에는 백성들을 엄하게 다스리며 세금도 가혹하게 징수하는 한편,
문후의 측근들에게 전과는 달리 후한 인사치레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1년 후에 업무 보고를 하기 위해 서문표가 돌아오자, 문후는 그를 몹시 반기며 그 동안의 노고를 치하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측근들이 문후에게 서문표를 좋게 말해 준 덕분이었다.
그러자 서문표는 이렇게 말했다.

“지난번에 저는 전하를 위해 성실하게 일했습니다.
그 결과 면직 처분을 받았습니다.
이번에는 측근들의 비위만을 맞춰 가며 일했는데 칭찬을 받았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지방 장관 자리에 있을 마음이 없어졌습니다.”

사표를 내자 당황한 문후는,

“마음을 돌리고 이 사표를 철회하라.
나는 지금까지 자네를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제야 비로소 눈 뜨게 되었다.
제발 다시 그 지방을 맡아 다오”

하고 말했다.

보통의 경우, 이렇게 끝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서문표처럼 사표를 내는 공직자도 없거니와 문후처럼 뉘우칠 권력자도 없기 때문이다.


홍사중 지음 <리더와 보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