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샘물

프란치스코 교황님과 시대의 징표 /손희송 베네딕토 신부

뚜르(Tours) 2013. 11. 25. 10:27

 

프란치스코 교황님과 시대의 징표
/손희송 베네딕토 신부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인기가 높습니다. 로마에서는 매주 수요일 오후에 일반 알현이 있는데, 이때 오는 신자 수가 부쩍 늘었답니다. 로마의 관광객이 10%증가 했다는 얘기도 있고요. 사실 그분의 말씀과 행동을 보면 인기가 높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선 그분의 강론이나 연설 말씀이 쉽고 단순합니다. 그러면서도 정곡을 찌릅니다. 강론해본 사람은 압니다. 그러기 쉽지 않다는 것을 말입니다. 또 교황님은 솔직 담백하시더라고요. 공개석상에서 당신 스스로 죄인이라고 하면서 15일마다 고해성사를 본다고 말씀하셨더군요. ...

행동은 또 어떤가요? 얼마 전에는 연설 도중이 어린 아이 하나가 단상에 올라와서 교황님 주위를 맴돈 일이 있었지요. 연설하시는 교황님의 수단 자락을 잡고 늘어지기고 하고, 의자에도 올라가 앉기도 하고. 우리 교황님은 그런 철부지를 너그럽게 받아주셨습니다.

더욱 감동적인 것은 일반 알현 중에 얼굴이 온통 종기투성이인 중년 남자의 머리를 말없이 한참 껴안아주시고 입까지 맞춰주셨던 일입니다. 문둥병자를 만져주시던 예수님의 모습이 오버랩 되었습니다. 솔직히 저 같으면 그런 흉한 얼굴을 만져주기는커녕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오래 전에 읽었던 책 한 권이 생각났습니다.『케네스 신부의 일기』라는 책인데, 본래 제목은 <플레이보이에서 신부로>입니다. 원제가 암시하듯이 자유 분망한 생활을 하다가 신부가 된 아들 케네스에게 어머니는 이런 말을 합니다.

“내가 보기에 훌륭한 성직자란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고, 사랑하기 때문에 봉사하는 사람이다. 그런 성직자는 아무리 바빠도 늙은 노파를 편하게 해주기 위하여 발을 멈추고, 병자나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 발을 멈추는 사람이다. 어른들의 세계에서 생각할 때 아무리 하잘 것 없이 여겨지는 어린애들의 문제라도 그것을 들어줄 시간을 반드시 가져야 한다. 그런 성직자는 죄지은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고, 완고한 사람들에게 관대해야 한다.”

우리 시대는 이런 사제를 갈망합니다. ‘사랑으로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사제’. 이게 바로 시대의 징표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에게 열광하는 수많은 이들에게서 시대의 징표를 읽을 수 있지 않습니까? 사제들이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닮은 목자가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세파에 거칠어진 신자들이 부드러워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이 거친 세상이 조금은 더 부드러워지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