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西古今

’일하지 않는 자’가 ’일하는 자’를 괴롭히는 나라

뚜르(Tours) 2013. 12. 6. 23:06

중부지역에 강풍(强風) 경보가 내려진 지난 25일 새벽 5시 30분 집을 나섰다.
연말 샐러리맨들 마음은 춥고, 편하지 않다.
그래서 겨울의 초입, 서울 서초동과 양재동의 우리나라 대표 샐러리맨들 모습이 보고 싶었다.
서초동엔 삼성 본사가 있고, 양재동엔 현대차 본사가 있다.

길거리의 젖은 낙엽들에서 보듯 새벽바람은 거셌다.
첫 도착지는 현대차 빌딩.
5시 50분쯤인데도 어둠 속의 현대차 사옥 곳곳에 불 켜진 방들이 보였다.
임원 출근 시간이 새벽 6시 30분이지만 누군가 먼저 출근한 게 분명했다.
삼성으로 향했다.
현대차와 삼성 본사 사옥은 강남대로를 따라 4km 채 안 되는 거리다.
6시 5분쯤 서초동 삼성 사옥.
삼성 임원 출근시간도 6시 30분이지만 빌딩 절반 정도에 이미 불이 켜져 있다.

컴컴한 새벽녘, 바쁜 이들이 눈에 잡혔다.
혹여 사고라도 날까, 주차 관리 요원들은 어둠을 뚫고 속속 도착하는 차량들을 건물로 안내하기 바빴다.
다시 양재동으로 향했다.
6시 20분 현대차 빌딩은 사옥 진입 차로가 꽉 막혀 10대 이상 줄 서 있다.
차 한 대에서는 누군가 튀어나와 사옥으로 달려간다.
한국 경제를 이끄는 삼성, 현대차그룹은 이렇듯 새벽 6시부터 달구어진다.
재계 곳곳을 둘러보면 평생 새벽 6~7시 출근을 고집해 온 창업주나 전문경영인, 임원들이 수두룩하다.

오늘의 삼성, 현대차그룹은 절로 만들어진 게 아니다.
"(삼성전자가) 잘나간다고요?
미국 애플은 한 해에 아이폰 3종(4S, 5S, 5C)과 아이패드만으로 수십조원(2012년은 58조원)을 벌어요.
우리는 한 해에 200개 가까운 휴대폰을 만들어요.
세계 각 나라, 각 지역에 맞도록 서로 다른 사양, 디자인의 휴대폰을 만들어야 겨우 애플과 경쟁할 수 있어요.
밤새워 연구개발하고, 목숨 걸고 마케팅(판매)할밖에요."(삼성의 한 CEO)

세상엔 두 부류가 존재한다.
’일하는 자’와 ’일하지 않는 자’, ’일해서 국가에 기여하는 자’와 ’일하지 않고 혜택만 누리는 자’다.
올해는 어떤 해였을까.
기업들은 ’일하고 싶은데 환경이 뒷받침 안 된다’고 여건 조성을 요구했지만,
’재벌 기업들이 정신부터 먼저 차려라’는 야당 목소리가 더 강했다.
기업을 옥죄는 경제 민주화 법안은 앞다퉈 통과된반면,
’경제 살리자’는 경제 활성화 법안은 잠자고 있다.
’일 안 한다’고 국민들로부터 늘 비판받고 있는 국회의원들이
’시간 아껴 일하는’ 기업인 200명 이상을 국정감사장에 불러 호통쳤던 해이기도 했다.

"일하는 자에게는 일하지 않는 자가 항상 가장 가혹한 비판자 노릇을 하는지도 모른다."
삼성 창업주 호암(湖巖) 이병철 회장은 "이러한 생각을 되새기면서 분노(憤怒)와 비애(悲哀)를 내일에의 용기로 바꾸려고 잠을 이루지 못한 밤이 몇 밤이었던가"라고 밝힌 바 있다(湖巖自傳 서문).
올 한 해 일하는 자로서의 분노, 비애를 곱씹은 경제인들이 얼마나 많았을지….
생각할수록 씁쓸해진다.
일하는 자가 박수받고, 일하지 않는 자가 창피해서 무대에서 퇴출당하는,
그래서 새벽부터 경제를 달구는 기업인, 샐러리맨들이 용기를 얻는 새해가 됐으면 좋겠다.
그게 정상적이고, 미래가 있는 나라다.


 

<이광회의 태평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