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西古今

진짜 바보

뚜르(Tours) 2013. 11. 30. 23:04

강원 횡성군의 한 농장에서 팔자 좋은 개 한 마리를 보았다.
목줄을 매놓지 않아 넓은 농장을 마음껏 뛰어다니며 무공해 식품을 먹고 살고 있으니 그야말로 상팔자였다.
그러나 이 개 ‘말리’에게도 아픈 과거가 있다.
안내견 학교에서 퇴출을 당했다는 것이다.
그 바람에 이곳까지 흘러들어오게 되었다는 게 농장 주인의 말이다.
비록 낙제는 했을망정 원래 우수한 품종(레트리버)인 데다 명문학교 출신이라 말귀도 잘 알아듣고 점잖고 순해서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고 했다.

“왼발 !”

아니나 다를까,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누워 있는 개에게 시험 삼아 말을 건네자 즉각 왼발을 내밀었다.
이를 보고 재미를 붙인 옆 사람이 “오른발!”이라고 명령을 내리자 이번에는 꼼짝도 안 했다.
이래서 낙제를 했나 싶어 주인을 바라보자 주인이 웃으며 말했다.

“얘가 오른쪽으로 누워 있을 때 오른발을 달라고 하거나
왼쪽으로 누워 있을 때 왼발을 달라고 하면 딴청을 피워요.
몸을 일으켜 발을 빼기가 귀찮다 이거죠.”

순간, 사람들 사이에 웃음이 번졌다.
우리 일행은 어쩌면 이 개야말로 진짜 영리한 개가 아닐까 의심이 들었다.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동료들은 지금쯤 거추장스러운 옷을 입고 도시에서 수고하고 있을 텐데
낙제한 덕분에 이 개는 공기 좋은 자연에서 자유를 구가하고 있다.
혹시 일부러 능청을 떨고 낙제한, 알고 보면 진짜 우수한 개가 아닐까?

얼마 전에 ‘사과의 기적’이란 책을 읽었다.
일본의 사과산지로 유명한 아오모리현에서 무공해 사과농사를 짓는 농부의 이야기였다.
그 책을 읽으며 알았지만 과수농사 가운데 사과 농사는 농약 없이는 절대 불가능하다고 하는데,
한 농부가 실패를 거듭하다가 9년 만에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무공해 사과를 생산하는 불가능의 기적을 이뤘다.
성공의 비결을 물었을 때 농부는 이렇게 대답했다.

“바보로 살면 돼요. 난 아무것도 한 게 없고 자연이 하는 일을 옆에서 거들었을 뿐입니다.”

결국 사과를 만드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사과나무’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이 농부가 진짜 바보일까?
자연 앞에서 인간의 욕심을 버리고 겸허해졌을 때 농부는 해답을 얻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사과 한 개도 만들어낼 수 없는 존재라는 걸 모르고 인간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누가 더 바보일까?
그 답을 모른다면 그 사람이 진짜 바보일 것이다.


 

윤세영 /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