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eetings(손님들에게)

수퍼마켓 점원의 답답함

뚜르(Tours) 2014. 7. 11. 00:02

 

어릴 적 도덕 교과서에서 읽었을 것이다.

영국의 한 소년이 공원 잔디밭 가에서 울고 있었다.

지나가던 신사가 까닭을 물었다.

모자가 바람에 날려 잔디밭에 들어갔는데 잔디를 밟고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신사는 갖고 있던 지팡이로 모자를 끌어내 주었다.

공중도덕이나 준법정신을 일깨우기 위해 실은 글이었을 텐데

꽤 커서까지 소년의 고지식함에 고개를 갸웃했던 기억이 난다.

만약 그때 아무도 지나가지 않았다면 소년은 어떻게 했을 것인가.



재영(在英) 칼럼니스트 권석하씨가 수퍼마켓에서 부활절 선물용 케이크를 샀는데

귀퉁이가 찌그러져 있었다.

바꿔달라고 갔더니 마침 케이크 담당 점원은 자리를 비우고

바로 옆 육류(肉類) 코너 직원만 있었다.

그는 "내가 처리해 드리겠다"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곤 자기가 입고 있던 흰색 위생복을 새 옷으로 갈아입고 모자,

마스크에 장갑까지 끼고 나왔다.

위아래 열 개가 넘는 옷 단추를 끼고 식품 창고에 가 새 케이크를 갖고 나오는 데

20분이 넘게 걸렸다.

수퍼마켓에는 고기를 만지던 복장으론 다른 식품을 다룰 수 없다는 규정이 있었던 것이다.



이런 답답한 사람들 얘기가 새삼 뜻깊게 들리는 요즈음이다.

얼마 전 만원 버스를 탔더니 시각장애인이 이리저리 치이며 서서 가고 있었다.

분홍색 표시가 선명한 4~5개 노약자석엔

멀쩡한 사람들이 앉아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동네 뒷산에 갔다가는 약수터 앞에까지 강아지를 데려와 물 먹이는 사람을 봤다.



오가는 발걸음이 분주한 인도(人道)를 오토바이가 질주한다.

길거리 시위대의 마이크 소리는 규정된 한도를 한참 넘었다.

자동차 꼬리 물기, 깜빡이 안 켜고 끼어들기, 차창 밖으로 담배꽁초 버리기는 여전하다.

횡단보도 신호등이 파란색인데 차는 슬금슬금 그걸 넘어 앞으로 간다.

집 근처 고깃집 주인은 차를 몰고 온 손님들에게 차를 가게 앞 찻길에 그냥 세우라고 한다.



우리는 오랫동안 "괜찮아" "하면 된다" 같은 말들에 익숙해 왔다.

그러나 큰 도덕의 붕괴는 사소한 규칙·윤리의 위반이 쌓여서 오는 것이다.

정부와 기업만 비판한다고 국가적인 참사가 되풀이되지 않을까.

시민들 스스로 공동체의 안녕과 질서를 위해 작은 일에서부터

해선 절대 안 될 것과 해도 되는 것을 명확히 구분하는 정신 혁명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를 슬픔으로 몰아넣은 큰 재난 중에는 규정이나 제도가 없어서라기보다는

그걸 지키지 않아 일어난 것들이 너무 많다.

조선일보 <만물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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