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도 ‘프리허그(Free-hug) 운동’이 일어났다는 것을 며칠 전에야 알았다.
후안 만이란 호주 청년이 사람들을 조건 없이 안아주는 따듯한 현장이
인터넷 동영상을 통해 알려지면서 한국에서도 그 감동의 현장이 펼쳐지고 있다고 한다.
나도 ‘안아주기(hug)’의 위력을 체험한 적이 있다.
1994년 ‘백조의 호수’로 일본 공연을 갔을 때의 일이다.
‘백조의 호수’는 주역 발레리나 한 명이 청순한 백조 오데트와
사악한 흑조 오딜을 동시에 맡는 1인2역을 한다.
내가 맡은 역할이 바로 오데트·오딜이었다.
그날 따라 내 춤이 맘에 들지 않았던 나로서는 도저히 끝까지 춤을 출 자신이 없었다.
2막을 앞둔 휴식 시간은 백조에서 흑조로 분장과 의상을 바꾸어야 할 바쁜 시간이다.
극도의 심리적 불안감에 빠진 나는 더 이상 공연을 못하겠다며
화장까지 지워버리고는 하염없이 울었다.
내 발레 인생에서 가장 위태로웠던 순간이었다.
모든 무용수들과 스태프들이 당황하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 때, 당시 예술감독이었던 부르스 스타이블이 천천히 내게 오더니
아무 말 없이 안아주었다.
그 몇 초 동안 신기하게도 마음이 안정되었고,
그가 준 ‘당신은 할 수 있어’라는 무언의 격려에 다시 자신감이 샘솟기 시작했다.
2막 시작 불과 몇 분을 앞두고 흑조 오딜로 분장한 나는 무사히 공연을 마칠 수 있었다.
쏟아지는 박수갈채 속에서 나는 부르스에게 감사의 미소를 보냈다.
발레 인생 최대의 위기가 고마운 순간으로 남았다.
그가 준 ‘안아주기(hug)의 힘’이다.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장
'내면의 성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화를 푸는 방법 (0) | 2015.04.25 |
---|---|
♡ミ 인생의 4가지 계단 / 이외수 (0) | 2015.04.24 |
화가 사라지지 않는가? (0) | 2015.04.22 |
내면의 싸움 이후에 (0) | 2015.04.20 |
♧。언제나 너그러운 마음으로 / 법정(法頂)스님 (0) | 2015.04.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