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 편의 詩

나무에게 사죄하다 / 전윤호

뚜르(Tours) 2023. 7. 3. 10:08

 

 

나무에게 사죄하다  / 전윤호

 

 

먹고 살기 위해 출판사에서 일했어요

십 년이 되었지요

한 권이라도 더 팔리는 책을 내려고

하이에나처럼 저자와 독자를 괴롭혔어요

아들을 데리고

약수터에 물 뜨러 갔다가

참나무들이 베어져 넘어진 것을 보았어요

나무는 베어서 뭐 해

뭐 종이도 만들고…

그동안 내가 벤 소나무는 얼마나 많을까요

어쩌면 시베리아 숲 하나가 사라진 것은 아닌지

나무와 버섯과 사슴과 호랑이가

내가 만든 책 때문에 죽어간 것은 아닌지

평생 마시는 물이 수영장보다 크다길래

샘을 보면 미안한데

열 세 살 난 아들 뒤로

참나무들이 노려보고 있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고 말았어요

- '시안' 2003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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