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에게 사죄하다 / 전윤호
먹고 살기 위해 출판사에서 일했어요
십 년이 되었지요
한 권이라도 더 팔리는 책을 내려고
하이에나처럼 저자와 독자를 괴롭혔어요
아들을 데리고
약수터에 물 뜨러 갔다가
참나무들이 베어져 넘어진 것을 보았어요
나무는 베어서 뭐 해
뭐 종이도 만들고…
그동안 내가 벤 소나무는 얼마나 많을까요
어쩌면 시베리아 숲 하나가 사라진 것은 아닌지
나무와 버섯과 사슴과 호랑이가
내가 만든 책 때문에 죽어간 것은 아닌지
평생 마시는 물이 수영장보다 크다길래
샘을 보면 미안한데
열 세 살 난 아들 뒤로
참나무들이 노려보고 있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고 말았어요
- '시안' 2003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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