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 - 열애 일기 4 / 한승원
산 단풍의 색깔은 조금씩 진해지는 것이 아니고
어느 하룻밤의 찬서리와 함께 갑자기 새빨개지고 샛노랗게 된다고 산에 사는 젊은 비구니 스님이 그랬습니다
낙엽은 한 잎 두 잎씩 지는 게 아니고
어느 소슬한 바람 한 자락에 담벽 무너지듯 와르르 쏟아지는 것이 대부분이라고
산에 사는 늙은 스님이 그랬습니다
나는 날마다 준비합니다
사랑하는 당신께 가노라는 말도 못 하고 어느 하룻밤 사이에 단풍처럼 진해졌다가 담벽 무너지듯 떨어져갈 그 준비
- 한승원, 『열애일기』(문학과지성사,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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