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 편의 詩

옥수수밭의 소녀들 /김개미

뚜르(Tours) 2023. 9. 18. 14:27

 

옥수수밭의 소녀들  ​/김개미



이 밭의 이름은 지겨움
한낮이면 화약 냄새가 난다

우리는 바다에 가본 적 없지만
우리 섬은 초록파도가 빼곡하다

우리는 아기를 업고 다닌다
아기를 업고 놀다 자기도 한다

며칠에 한번은 숨어야 하는 때가 있는데
그때 아기가 자면 행운이다

아기가 안 자면 입을 막아야 한다
우리 손은 작아서 위험하지 않다

어른들 중에도 숨어야 하는 사람이 있다
그중엔 배가 큰 여자도 있다

얼마 전 한 여자가 아기를 낳고
태반을 들고 여길 지나갔다

우리는 며칠 동안 고양이들을 쫓아냈다
우리 중에도 여기서 태어난 아이가 있다

오래된 이야기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오늘 일도 알록달록하다

어제는 몸만 어른인 남자가 수음하는 걸 봤다
우리를 보고 소리를 지르며 도망쳤다

벌레들의 소리가 커질 때
여기서 다시 만나자

오늘 밤도 심심하지 않을 거야
가벼운 신발을 신고 와



ㅡ계간 《창작과비평》(2023,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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