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춘천시 석사동 721-3, 좌랑공(諱 安平) 묘와 모친(母親) 고성 이씨의 묘.
고려 말 국사범으로 누명을 쓰자 회양공은 둘째 아드님 개평(開平)과 함께 충청도 부여로
아내 고성 이씨는 큰아들 안평을 데리고 친정이 있는 춘천으로 피신했습니다.
안평은 여섯 아들을 두었지만 몸이 병약했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친정의 가묘(假墓)에 몰래 물을 부어 묫자리에 물이 난다 소문을 냈고
아들이 죽자 친정에 물이 나오는 묫자리에 아들을 묻게 해 달라고 청해서
그 가묘에 큰아들을 안장했습니다.
풍양조씨(豊壤趙氏) 전체 인구의 70% 이상이 안평 할아버지의 후손입니다.
한산군(漢山君)은 다섯째 아들이며 휘(諱)는 온지(溫之)이십니다.
조선 후기에 한산군 후손들이 위토(位土)를 마련하고 한산군 후손들이
해방 전까지 매년 세일제를 모셨지만 해방 후 혼란기와 6.25 동란으로 묘정을 돌보지 못했습니다.
6.25 동란으로 춘천시청이 폭격을 맞아 토지대장이 소실되었고
휴전 후 1953년 특별법으로 등기를 할 때
이를 이용하여 묘를 돌보던 산지기가 자신의 이름으로 위토를 가로채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어제 11월 5일,
오랜만에 묘정을 방문해서 인사를 드렸습니다.
비가 내려 세일제는 재실(齋室)에서 지낸다 했습니다.
위토를 가로챈 사람들이 올리는 세일제가 탐탁지 않아
묘에 재배(再拜)를 올리고 동행한 일행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홀로 돌아왔습니다.
2023. 1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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