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진 자리 / 류인서
꽃잎 지고 난 가을 뜨락에서
한 중심을 향해 둘러앉은 시간의 고분군을 만납니다
불붙어 싸우던 허공마다
깜깜하게 깊어진 그늘 하나씩 봉분처럼 돋아올라
가만가만 빛을 삼키며 침묵의 블랙홀로 가고 있네요
가벼이 날아오르고 싶은 바람홀씨들
기억 저 끝과 이 끝은 유물로 가라앉아 있을까요
벽화 속의 채운(彩雲) 하늘과
하늘을 기울여도 쏟아지지 않는 붉은 해
해의 동공에 사는 세발까마귀 눈뜨고, 웅얼웅얼
오음 음계 오랜 노랫소리 꽃물처럼 번져나와
바람 깨워 흔들며 내게로 스밉니다
그 노래를 배음으로 이울었다가 다시 부풀기도 하는
먼바다의 더 먼 별자리까지 궁상각치우, 익고 익어 따스합니다
- 류인서,『그는 늘 왼쪽에 앉는다』(창비,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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