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 편의 詩

다 사랑일세 / 임보

뚜르(Tours) 2024. 12. 10. 17:00

 

 

다 사랑일세  / 임보 

 

 

내 주머니에 늘 기만원 넘지 않게

용돈 주신 것도 다 하느님 사랑일세

내게 만일 흥청거릴 돈 있어 보게

매일 밤 친구놈들 떼로 불러 놓고

북장구 니나노에 빠지다 보면

이 몸뚱이 어이 오래 버티겠나

소주잔이나 홀짝이며 시나 쓰라고

내 용돈 그렇게 주신 것 다 사랑일세

내 키 오척단구(五尺短軀) 이리 짧게

내신 것도 다 하느님 사랑일세

만일 육척거구 미남으로 태어났어 보게

장안의 미녀들 다 몰려들어 사랑하자고

조르면 내 무슨 수로 거절할 수 있으리

그런 걱정 말고 시나 쓰라고

세상 여자들 거들떠도 안 보게

이렇게 낮게 지으심도 다 사랑일세

대동아(大東亞) 전쟁에 六.二五 동란

四.一九에 五.一六

풍진 세상 이 땅에 보내

산전수전 겪게 하신 것도

다 하느님 사랑일세

태평성대(太平聖代)에 탄탄대로(坦坦大路)

부귀영화 한평생이면

인생살이 무슨 맛이겠나

단맛 쓴맛 다 본 뒤에

매운 시 둬 줄 만들어

기죽어 사는 놈들 달래 주라고

그렇게 베푸신 것 다 사랑일세.

- '날아가는 은빛 연못',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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