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사랑일세 / 임보
내 주머니에 늘 기만원 넘지 않게
용돈 주신 것도 다 하느님 사랑일세
내게 만일 흥청거릴 돈 있어 보게
매일 밤 친구놈들 떼로 불러 놓고
북장구 니나노에 빠지다 보면
이 몸뚱이 어이 오래 버티겠나
소주잔이나 홀짝이며 시나 쓰라고
내 용돈 그렇게 주신 것 다 사랑일세
내 키 오척단구(五尺短軀) 이리 짧게
내신 것도 다 하느님 사랑일세
만일 육척거구 미남으로 태어났어 보게
장안의 미녀들 다 몰려들어 사랑하자고
조르면 내 무슨 수로 거절할 수 있으리
그런 걱정 말고 시나 쓰라고
세상 여자들 거들떠도 안 보게
이렇게 낮게 지으심도 다 사랑일세
대동아(大東亞) 전쟁에 六.二五 동란
四.一九에 五.一六
풍진 세상 이 땅에 보내
산전수전 겪게 하신 것도
다 하느님 사랑일세
태평성대(太平聖代)에 탄탄대로(坦坦大路)
부귀영화 한평생이면
인생살이 무슨 맛이겠나
단맛 쓴맛 다 본 뒤에
매운 시 둬 줄 만들어
기죽어 사는 놈들 달래 주라고
그렇게 베푸신 것 다 사랑일세.
- '날아가는 은빛 연못',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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