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 편의 詩

집에 가자 /이화은

뚜르(Tours) 2025. 3. 24. 10:17

 

 


집에 가자 
/이화은

우는 아이에게 집에 가자고 하면 뚝 울음을 그친다

집은 울지 않아도 되는 곳인 줄 아이는 알았을까

전학해 온 지 한 달 된 학교

앞에 놓은 시험지는 깜깜하고 깊었다

심해 물고기들이 유유히 헤엄쳐 다니고 있었다

집에 가고 싶었다

빈 시험지 위에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한참이나 바라보던 선생님이

그래 눈물만한 답은 없지

내 시는 아직도 눈물만한 답을 얻지 못해 헤메고 또 헤맨다

객짓밥이 유난히 시린 날은 집에 가고 싶었다

집에 가자 집에 가자

이 말을 두텁게 덥고 잠들곤 했다

신접살림 집에 딸을 두고 돌아서며 어머니는 몇 번이나

이제는 여기가 네 집이다 못을 박았다

그래도 나는 자주 집에 가고 싶었다

우는 아이 손을 잡고 집에 가자 달래면서도

나도 내 집에 가고 싶었다

어머니 돌아가실 즈음

혼미한 중에도 입술만 가만가만 집에 가자 하신다

우리들의 집이었던 어머니도 집에 가고 싶으셨구나

켜켜히 쌓인 한 생의 울음을 뚝! 그치게 해 줄 그런 집

어머니 돌아가신 지 삼십 년

제사를 거둔다는 전갈이 왔다

어머니 이제 가고 싶은 집에 닿으신 거다

ㅡ계간 《유심》(2024,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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