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 편의 詩

봄 산행 / 임영조

뚜르(Tours) 2025. 3. 22. 23:09

 

 

봄 산행   / 임영조

 

사람이 그리운 날

사람을 멀리하고 산에 오른다

오르면 오를수록 산봉은

짙푸른 색정만 상승하는 곳

색이 공일까? 공이 색일까?

이 세상 날고 기던 목숨들

종당에는 산으로 가기 마련

그러니까 등산은 사전답사 같은 것?

인파 넘치는 관악산 피해

매봉에 올라 야호! 고함 한번 지르고

다시 청계산 올라 天空을 받는다

그제서야 법어로 돌아오는 메아리

네가 산이다! 네가 부처다!

떨갈나무 차일 친 오솔길 가노라면

찔레꽃이 하얀 지등을 켜고

자, 여기를 보세요!

때죽나무 꽃초롱 조리개 열고

일제히 터뜨리는 플래시 세례

(우상은 늘 외눈박이 편견들이 세웠다!)

연초록물 번지는 잡목림 사이사이

버짐처럼 허옇게 핀 산벚꽃

색이 넘치면 보는 눈도 가렵다

밤나무가 되려다 만 너도밤나무

아직도 숙제를 못해왔는지

손 들고 벌 서는 아이처럼 멋쩍다

자꾸만 키들대는 제비꽃 무리

(너희들도 신세대니?)

그러도 보니 어느새 나도

사람 벗은 한 마리 나비였구나

어느 경전 위에 앉아도 두렵지 않은……

뻐꾹새가 불현듯

내 마음 빈터로 날아들어

뻐꾹뻐꾹 뻑뻐꾹 방점을 찍는다

이제 그만 환속하라고?

- 임영조,​『귀로 웃는 집』(창작과비평사,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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