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학자와 천재 직원이 고액 연봉 거부한 까닭

 

1970년 말 단국대 장충식 총장이 국어학의 기둥이었던 일석(一石) 이희승 박사를 찾아갔습니다. 장 총장은 대학 때 일석의 수업을 감명 깊게 들었다면서, “동양학연구소를 세워 단국대의 대표적 연구소로 키우고 싶은데 10년 동안 기틀을 잡아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일석은 “내가 가면 장 총장이 곤란해진다”며 완곡히 거절합니다. 일석은 성균관대 대학원장 때 ‘3선개헌’에 반대했다가 자리에서 물러났기 때문에 제자가 자신을 영입해 곤란해지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장 총장은 삼고초려하며 물러서지 않았고 일석은 제자의 열정에 두 손을 듭니다. 장 총장은 ‘국보급 학자’에 대한 예우로 당시 대학교에서 가장 많은 급여를 책정했습니다. 하지만 일석은 봉급액을 듣더니 “이런 법은 없다”며 화를 냈습니다. 분수에 넘치는 돈을 받을 수 없다며! 두 사람은 옥신각신했고, 장 총장이 할 수 없이 원래 액수의 1/3로 줄이자 그때서야 일석의 얼굴이 누그러졌다고 합니다.

1896년 오늘(6월 9일)은 우리 국어학의 보물이었던 일석이 경기 광주군 의곡면 포일리(지금의 의왕시 포일동)에서 태어난 날입니다. 5살 때 천자문을 줄줄 외울 정도로 총명했고 13세 때 한성외국어학교 영어부에 입학했지만 경술국치로 폐교되자 경성고보(현 경기고)에 들어갔다가 조선인 차별과 일본어 강요에 반발해서 자퇴하지요.

 

그는 양정의숙을 졸업하고 교사로 취직한 이후에도 중동학교, 중앙학교 등에서 공부했습니다. 일제강점기에는 경성제대 조선어문학과를 졸업했고 도쿄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해방 후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예일대에서 언어학을 연구했습니다. 그는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함흥형무소에서 3년 간 감옥살이하다 해방을 맞았으며 서울대 교수 및 문리대학장, 동아일보 사장, 대구대(지금의 영남대) 대학원장, 성균관대 대학원장 등을 역임하면서 꼭 필요할 때 피해를 감내하고 목소리를 냈습니다.

 

일석은 ‘딸깍발이’로 유명하지요? 고교 교과서에도 소개된 수필에서 ‘남산골 샌님’ 선비들을 소개하면서 “궂은날이나 마른날이나 나막신 하나를 신고 다녀서, 마른날에 나막신 굽이 굳은 땅에 부딪혀 딸깍딸깍 소리가 유난했기 때문에 이렇게 불렀다”고 했는데, 사람들은 ‘딸깍발이=일석’으로 기억하고 있지요.

 

일석은 돈이나 권력에 우르르 몰려다니는 지식인을 보며 혀를 찼습니다. 그렇다고 돈의 중요함을 부정하는 ‘벽창호’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1989년 93세 생일 때 제자와 친지 앞에서 “국어학자들이 대체로 생활이 어려우니 이들의 연구를 북돋워주는 상을 제정했으면 좋겠다”며 평생 모은 2억 원을 내놓았습니다. 그리고 5개월여 뒤 평화롭게 눈을 감았습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돈은 다다익선으로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는 것을 일석은 모범적으로 보여줬지요? ‘옛날이야기일 뿐’이라고 폄훼하는 이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지금도 돈보다 더 멋진 것을 추구하는 이가 있습니다.

 

선글라스 젠틀몬스터로 유명한 아이아이컴바인드 김한국 대표는 2009년 당시 국내 최고 연봉의 첫 직장에서 자신의 공들인 아이디어를 계속 무시당하다, ‘아이들을 행복하게 하겠다’는 철학이 있는 중소기업 캠프코리아로 자리를 옮깁니다. 캠프코리아 오재욱 대표가 이전 회사보다는 적지만 자신에 버금가는 연봉을 제시하자 “사장님 그러시면 안됩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전할 때 가벼운 사람들은 “요즘 젊은이들은 돈밖에···”하고 말을 잘랐지만 반전이 있습니다.

 

김 대표는 “제가 이 분야를 담당해서 중소기업들의 사정을 잘 아는데···”하면서 연봉은 절반만 주고 직급도 낮춰달라고 요구합니다. 일석 이희승이 장충식 총장에게 요구했던 것처럼! 오 대표는 더 줄 수 있다며 설득을 거듭했지만 결국 백기를 들었습니다.

 

김 대표는 취업 후 오전 6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연구하며 회사를 이끌다 자회사를 만들었고 그 회사가 지난해 7891억원 매출에 2339억원 영업이익을 낸 초우량회사로 성장했지요. 김 대표에겐 지금도 자기 사무실이 없고, 10년 된 중소형 승용차를 몰고 다닌다고 합니다. 대주주인 오 대표에겐 “에르메스나 루이비통 이상으로 우리 후손들이 자랑스러워할 회사를 만들어야 하는데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고 ‘협박(?)’하고 있고요···.

 

우리 사회의 많은 위기가 ‘황금만능주의’와 돈과 성적 등 숫자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계량적 이성주의’에서 온다면 너무 단정적인 걸까요? 어쨌든 일석의 탄생일에 돈이 행복의 절대조건은 아니라는 점, 생각해봤으면 합니다. 돈을 좇지 않아도 충분히 유복하게 살 수 있고, 어떤 땐 그래서 더 많은 재산을 가질 수도 있다는 것, 위선적 주장일까요?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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