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d News

Holy Spirit's Works

뚜르(Tours) 2006. 5. 25. 10:26
2-2: 성령의 내적, 외적 작업

 2201. 성령의 내적, 외적 작업


 
우리는 2-1강에서 그리스도의 사제직, 예언직, 왕직을 계속해 나가기 위해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어떻게 성령께 협력할 (conspire) 수 있는지에 대해 묵상했습니다.
 
우리는 성령에 협력합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와 공동 직무를 갖으시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는 그리스도께서 하시지 않은 무엇을 이루실 수도 없고 이루시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성자와 성령께서 공동으로 우리에게 하느님 사랑의 선물을 주시며, 그러한 선물을 받을 수 있도록 우리에게 힘을 북돋아 주십니다.
 
성령께서는 이러한 선물을 두 가지 매우 다른 방식으로 우리에게 주십니다.  하나는 교회의 외적인 작업을 통해서입니다.  다른 하나는 성령의 작업에 대한 개인의 내적 수용을 통해서 입니다.
 
이러한 성령의 작업은 균형있는 조화를 이룹니다.  성령의 제도적이고 외적인 작업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이지만, 성령의 내적인 선물 없이는 그러한 선물을 받을 수 없고 그로부터 유익을 얻을 수도 없습니다.
 
2202. 성령의 선물

 
예수 그리스도
성체
성서
성전(聖傳)
교도권
무류권
성사
교회
카리스마
 
성령의 외적 은사를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본 강좌의 첫 부분에서 우리는 그리스도 자신이라는 선물 성체, 성서, 성전(聖傳), 교도권, 무류권, 성사, 교회, 카리스마 또는 여러 종류의 사도적 활동이라는 선물들에 대해 성찰할 것입니다.
 
본 강좌에서는 이러한 선물들이 무엇인가 뿐만 아니라, 개개인이 그에 대한 내적 수용력을 함양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것입니다.
 
2203. 예수 그리스도라는 선물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실 것이다.”(루까, 1:35)
 
성령께서 이루신 가장 명백한 첫번째 외적 작업은 당신께서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실 때 이루신 육화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께서 주신 최상의 선물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께서는 죄를 제외하고는 우리와 같이 되신 분으로서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증여하십니다. 
 
그리스도를 우리 가운데 현존케 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서가 전하고 있듯이, 가브리엘 대천사는 마리아에게: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리실 것이다.”(루까, 1:35)
 
성 루까 사도는 성령께서 그리스도라는 선물을 우리에게 주셨음을 지극히 명료하게 기술합니다
 
2204.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라는 선물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성령의 힘으로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이미 활동하고 계신다.”  (2차 바티칸 공의회현대세계의 교회에 관한 사목헌장: 기쁨과 희망38)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러 오시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못합니다.  우리는 그분을 우리 구세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2차 바티칸 공의회는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성령의 힘으로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이미 활동하고 계신다.”라고 가르칩니다. (기쁨과 희망, 38)
 
그리스도께서 우리 가운데 계신 하느님이시고 그리스도 자신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임을 충만히 발견하기 위해서, 우리는 믿음의 선물을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이러한 믿음은 우리 안에 계신, 우리 마음 속에 계신 성령의 작업입니다.
 
2205. 이끌림의 은총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믿음의 은총을이끌림의 은총이라는 말로 표현하셨습니다.  이러한 표현은 하느님께서 우리의 자유 의지를 압도하지 않으심을 강조합니다.  오히려, 성령의 은총으로써 우리는 스스로 내적으로 이끌림을 발견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사랑받으실만한 분임을 발견하면서 그러한 사랑으로 인해 그분께 이끌립니다.
 
성서는 많은 부분을 할애하여 그리스도의 매력을 예시합니다.  사도들은 매우 즉각적으로 그분께 이끌렸습니다.  병자들은 그분이 입으신 옷자락이라도 만져보려 서둘렀습니다.  우물가의 여성은 자신이 누구인지 즉각적으로  꿰뚫어 보신 그분에게 이끌렸습니다.
 
그리스도에 대해 듣거나 읽어본 사람들 중에 그분에게 이끌리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부언합니다만,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강제로 부여하지 않으시며, 우리가 그분의 선하심과 진실하심과 사랑을 통해서 그분에게로 우리를 이끄십니다.
 
2206. 성체라는 선물


성령께서는 단지 2000년 전에만 그리스도의 몸을 세상에 내신 것이 아닙니다.  사실, 성령께서는 성령의 두번째 외적 선물인 성체 안에서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길 계속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체 안에 몸과 영혼, 인성과 신성을 지니신 실제로 존재하십니다.  성체는 지극히 값진 선물, 즉 성령께서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주시는 그리스도라는 선물입니다.
 
우리는 본 강좌 후반부에서 성체에 대해 잠깐 논의한 후, 2-3강 전체를 할애하여 집중적으로 그에 대해 이야기할 것입니다.
 
2207. 성서라는 선물


성서
는 성령께서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주시기 위해 외적으로 일하시는 또다른 방법입니다.
 
많은 신자들은 어떤 책을 성서로 규정할 것인지 결정을 초기 교회가 하였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하느님께서 성서 자체를 하늘에서 떨어뜨리신 것이 아닙니다.  사실, 정전(正典) 텍스트를 결정하기 전에 그리스도교 공동체에는 그리스도에 관한 소위복음서들과 많은 서간들이 돌고 있었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통해서 어떤 텍스트가 진정으로 신성한 영감을 받았고 어떤 것이 그렇지 않은지 결정하는 것은 교회에 위임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서는 교회 없이는 존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2208. 교회는 성령을 통하여 성서를 해석한다.


성령께서는 성서 창조에서 교회를 인도하셨을 뿐만 아니라, 성서 해석에서도 같은 성령께서 교회를 계속해서 인도하십니다.  때때로 성서를 해석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있음은 모든 사람이 알고 있습니다.  항상 그 의미가 즉각적으로 명백하지는 못하며, 여러 다른 해석의 여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성서의 의미를 홀로 추정하도록 내버려 주시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성서를 해석해 주도록 성령의 인도를 받는 교회를 주셨습니다.  교회가 성서의 의미를 해석하는 일에서, 성서의 내용을 결정하신 성령보다 그 작업을 더 잘 도울 수 있는 분이 있겠습니까?
 
성령의 감도로 인해 성서는 진실로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명백히 성서를 소유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못합니다.  우리는 성서가 하느님 말씀이심을 받아들이고 믿어야 합니다.  성서를 참되게 받아들이려면 우리에게는 신앙이라는 내적 선물이 필요합니다.  성 바오로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우리가 전하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때, 여러분은 그것을 사람의 말로 받아들이지 않고 사실 그대로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그 말씀이 신자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데살로니카 1, 2:13)
 
2209. 성전(聖傳)의 선물


* 전례, 성인들의 삶, 교부들의 저술, 공의회, 회칙
 
성령께서는 성서를 통해서 뿐만 아니라 성전을 통해서도 우리를 가르치십니다.
 
성전은 전해 내려온 말씀으로부터 유래합니다.  사도들은 몸소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내용을 교회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조금 전 언급했듯이, 성서는 성전의 산물입니다.
 
또한 성전은 교회의 전례 기념성인들의 삶 뿐만 아니라 교회 교부들과 박사들의 저술, 공의회, 회칙들을 포함합니다
 
이 모든 수단을 통하여, 교회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전파하는 예언직이라는 성령의 작업을 계속해 나갑니다.
 
2210. 교도권이라는 선물 


교회 가르침의 진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가르침의 권위를 주교들과 교황에게 위임하셨습니다.  교황과 친교를 이루는 주교들이 신앙의 진리를 가르칠 때, 그를 교도권이라고 합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교도권은 하느님의 백성이 빗나가거나 쇠약해지지 않도록 보호해야 하며, 올바른 신앙을 오류 없이 고백할 수 있는 객관적 가능성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 이처럼 교도권의 사목적 임무는 자유를 주는 진리 안에 하느님의 백성이 머물도록 보살피는 임무이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890)
 
교회는 하느님께서 가르치시는 바를 가르칩니다교회는 자신이 전수받은 것만을 가르칩니다.  교회는 하느님의 명령과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것을 경건히 듣고 거룩히 보존하고 충실히 해석합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85-86)
 
교회가 하느님께서 가르치시는 것만을 가르치기 때문에, 가톨릭 신자들은 교회가 신앙과 도덕적 문제에 있어 오류가 없다고 믿습니다.  
 
2211. 무류성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진리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사도들이 전해 준 순수한 신앙으로 교회를 보존하기 위해 교회를 당신의 무류성에 참여시키고자 하셨다.초자연적 신앙 감각’으로 하느님의 백성은 교회의 살아 있는 교도권의 지도를 받아신앙을 온전히 지킨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889 )
 
교회를 통하여 성령께서는 신앙의 순수성을 보증하십니다.  교회가 가르치는 내용은 진실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시는 바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무류성을 나누어 갖습니다
 
무류성은 위대한 선물이기에, 하느님 백성인 우리는 교회가 가르치는 바를온전히 지킴으로써 그에 대한 감사를 나타냅니다.
 
2212. 통상적 무류성과 예외적 무류성

 
교회는 두 가지 방식으로 가르칩니다.  전세계에 걸쳐 흩어져 있기는 하지만 주교들이 교황과 친교를 이루어 가르칠 때, 우리는 그것을 통상적 교도권 행사라 부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당신 가르침을 우리에게 전하시는 통상적이고 상례적인 방식입니다.  우리는 예를 들어 교황의 저술과 교리와 강론과 주교들의 사목 서한들을 통해서 통상적 교도권의 가르침을 알 수 있습니다.
 
한편, 교회는 예외적인 방식으로도 가르칩니다예외적인 교도권은 교황과 주교들이 공의회에 모여서 가르치거나 교황이 교좌 (ex cathedra) 선언을 하는 경우입니다.
 
교도권의 가르침은 반드시 무류적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모든 신자들이 명시적으로 지켜야 한다고 말하는 진리를 주교들이 교황과 함께 가르칠 때, 그 가르침을 무류적이라 간주합니다.  예를 들어, 교도권은 무류적으로 낙태와 안락사를 악이라 가르칩니다.  지난 백 여년동안 교황의 교좌 선언은 성모 승천과 성모 무염시태라는 마리아 교의에 관해 두 번 있었습니다.  그것 역시 무류적으로 참됩니다.
 
2213. 교의(敎義)


교회 가르침의 권위 행사의 정점(頂點)은 교도권이 교의를 정의할 때입니다.  교도권이 하느님 계시에 담긴 진리를 제시하면서 그 진리를 믿어야 한다고 선언할 때, 교의가 정의됩니다.  달리 말하자면, 교도권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러한 진리에번복할 수 없는 신앙의 동의를 드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88)
 
교회가 어떠어떠한 것을 진리로서 엄수해야 한다고 말할 때, 즉 교회가 교의를 정의할 때교회는 교회의 일치를 이루기 위해서 그렇게 합니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대한 분분한 해석으로 그리스도인들이 갈라지는 것은 하느님의 뜻이 아닙니다.
 
교회 가르침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언제나 쉬운 일만은 아닙니다.  어떤 이들은 피임에 관한 교회 가르침을 받아들이는데 어려움을 겪고 어떤 이들은 사회 정의에 관한 교회 가르침에 대해 곤혹스러워 합니다.  이러한 경우 우리는 순종의 모범이신 마리아를 본받아야 합니다.
 
성사를 통해서 성령께서는 우리가 순종의 덕을 갖출 수 있도록 돕습니다.
 
2114. 그리스도께서 치유하신다.


성서는 고질병을 치유받은 많은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여러 가지 면에서, 교회 가르침에 대한 우리의 저항은 고질병과 닮았습니다.  성서에서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을 치유하셨듯이,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치유되기를 소망하십니다.
 
12년간 하혈을 앓다가 그리스도의 옷자락을 만지고 치유된 여인 이야기를 떠올려 보십시오 (마르꼬, 5:25-34).  그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대자,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힘이 빠져 나갔음을 느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여인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말씀하시기는 했지만, 치유의 일차적인 원천은 그리스도의 치유력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치유받기 위해서 그 여인은 믿음이 필요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능력의 효과를 받을 수 있기 위해 그 여인은 온당한 준비를 해야 했습니다.  결국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고향에서는 아무런 기적도 일으키실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마르꼬, 6:1-6).
 
그리스도께서는 언제나 우리를 치유하고 구원에 필요한 은총을 주시길 갈망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은총을 전달하는 주요한 그릇에는 전례가 있습니다.
 
2115. 전례 안에서 성령의 작업


* 만남을 준비시킨다.
* 그리스도의 구원 작업을 제시한다.
*  친교의 열매를 맺게 한다.
 
성령께서는 전례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구원 작업을 계속 하십니다.  실상, 전례는 성령의 외적 선물들 중 하나입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전례에서 네 가지 일이 일어난다고 말합니다:
 
성령께서 교회의 전례에서 수행하시는 사명은 회중이 그리스도를 만나도록 준비시키시고, 회중들의 신앙에 그리스도를 일깨우고 드러내 주시고, 변화시키는 힘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구원 활동을 현존하게 하고 실현시키시며, 교회 안에서 친교의 열매를 맺게 하시는 것이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1112)
 
성령께서 전례를 통하여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이끄시는 이러한 네 가지 길에 대해 성찰해 봅시다.
 
2116. (1) 준비로서의 말씀의 전례


우선, 전례를 통하여 성령께서는 그리스도를 모실 수 있도록 우리를 준비시키십니다. 
 
미사 시작에서 구약 성서와 시편 독서는 하느님께서 역사를 통해서 당신 백성에게 그리스도의 구원 행위를 준비시키셨음을 알 수 있도록 돕습니다.  우리는 신약의 사건들을 예견하는 이야기들을 듣습니다.  예를 들어, 노아와 홍수 이야기는 세례를 예표하며, 하늘에서 떨어진 만나 이야기는 성체의 예형(豫形)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유다인들에게 그리스도의 구원 행위를 준비시키셨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모실 수 있도록 준비시키십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믿음을 일깨우시고, 우리의 마음을 회개로 이끄시며, 하느님 뜻에 충실하도록 우리를 움직이심으로써 그렇게 하십니다.  이러한 세 가지 준비 믿음, 마음의 회개, 하느님 뜻에 충실함 는 전례로써 전해지는 은총을 받기 위해 필요한 선행조건입니다.
 
2217. (2) 기억으로서의 말씀의 전례


* 그리스도께서 세례받으심
* 그리스도의 가르치심
* 그리스도께서 수난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심
*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
 
전례는 구약성서를 통해서 우리를 준비시킬 뿐만 아니라 신약 성서에서 그리스도의 행적을 상기시킵니다.
 
성령께서는 교회의 살아있는 기억이십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1099).  성령께서는 말씀 전례로써 회중에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모든 것들을상기시켜주십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1103).  우리는 그리스도의 가르치심과 치유하심, 용서하심과 타이르심을 듣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한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듣습니다.
 
그리스도의 메시지에 온당히 마음을 쏟는 사람은 그리스도와 보다 친밀한 생생한 관계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 구원의 말씀에 대한 믿음의 응답을 통해서, 우리는 전례 거행에서 듣고 묵상하고 행하는 것들의 의미를  생활에 옮길 수 있는 힘을 강화합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1101-2)
 
2218. (3) 성체 안에 현존하시는 그리스도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리스도교 전례는 우리를 구원한 사건을 상기시킬 뿐 아니라, 그것을 실현하고 현존하게 한다.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는 (그 때마다 새롭게) 거행되는 것이지 반복되는 것이 아니다. 반복되는 것은 기념 예식일 뿐이다. 전례 거행 때마다 유일한 신비를 실현하시는 성령께서 임하신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1104)
 
최상의 외적 선물로서,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의 신비를 성체 안에 현존케 하십니다
 
축성 바로 전, 사제는 빵과 포도주 위에 손을 뻗고 다음과 같이 성령청원 기도를 성부께 드립니다: “간구하오니, 성령의 힘으로 이 예물을 거룩하게 하시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게 하소서.”  성부께서는 성령을 보내시며, 성령께서는 빵과 포도주를 거룩하게 하시어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게 하십니다.
 
이로써, 최후의 만찬에서 일어났던 것과 동일한 사건이 성체에 발생합니다.  사제가이는 내 몸이다.”,“이는 내 피다.”라 말할 때 그것은 최후의 만찬에서 그리스도께서 의도하신 뜻과 완전히 동일하며, 사제는 최후의 만찬에서 그리스도께서 사도들에게 주신 것과 완전히 동일한 것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성체를 영하면서 우리는 더욱 그리스도를 닮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그리스도를 모시고 그분을 따라 우리 삶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2219. (4) 일치의 회복


성체는 우리를 그리스도와 -- 그래서 하느님과도 -- 일치를 이루게 하실 뿐만 아니라, 신자들 사이의 일치도 심화시키십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모든 전례 행위에서 성령의 사명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친교를 이루어 그리스도의 신비체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전례 안에서 성령과 교회의 가장 긴밀한 협동이 실현된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1108)
 
이러한 일치는 포도나무이신 그리스도와 농부이신 성부의 이미지를 통해서 잘 그려집니다 (요한, 15:1).  물론 우리는 그 가지 (요한, 15:5) 이고 성령은 그수액과 같은 분이십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1108)
 
이러한 수액은 포도나무를 관통해 흐르면서 갖가지 열매로써 자신을 드러냅니다.  이러한 열매는 카리스마들입니다.  그로써 우리는 그리스도를 다른 이들에게 전할 수 있습니다.
 
2220. ‘카리스마’(은사:恩賜) 의 선물


 * 설교, 자문, 위로, 봉사
 
성 바오로에 의하면, 카리스마 또는 은사는 공동선을 위해 개개인에게 주신 성령의 드러남입니다 (고린토 1, 12:7).  그리스도와의 일치의 열매는 우리가 성령으로부터 받는 카리스마들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에 봉사하고 그와 한몸을 이룬 공동체를 증진시키기 위해 성령께서는 카리스마의 선물을 주십니다. 
 
성 바오로는 고린토 112-14에서 이러한 선물에 대해 상세히 가르치십니다카리스마는 교회의 구원 사명을 증진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여러 가지 방식으로 카리스마는 사람들에게 믿음을 불러 일으키거나 그들의 믿음을 심화시키고 풍성하게 합니다.
 
일반적인 카리스마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효과적으로 설교하거나 가르치는 은사, 좋은 영적 조언을 주는 은사, 슬퍼하는 이를 위로하는 은사, 가난한 이들과 고통받는 이들에게 봉사하는 은사.
 
교회의 요구가 너무도 다양하기 때문에, 교회에 봉사하는 카리스마들을 모두 장황하게 설명할 수는 없겠습니다.  하지만, 육체적이고 영신적인 자선 사업들은 갖가지 카리스마 유형의 매우 좋은 예입니다.
 
2221. 영신적인 자선사업


* 가르치기, 자문하기, 위로하기, 위안하기, 용서하기, 후원하기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자선사업육체적으로나 영신적으로 궁핍한 이웃을 돕는 사랑의 행위라 정의합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2447).  그렇다면 자선사업에는 영신적인 자선사업과 육체적인 자선사업이 있겠습니다.
 
영신적 자선사업은 사람들이 올바로 생각하고 올바로 행동할 수 있도록 도움으로써, 그리고 사람들에게 그들이 필요로 하는 위안을 줌으로써 영신적 차원에서 그들을 인도하고 돕는 일입니다.  영신적인 자선사업에는 여섯 가지 활동이 있다고 합니다: 가르치기, 자문하기, 위로하기, 위안하기, 용서하기, 인내심 있게 후원하기.
 
2222. 육체적 자선사업


* 먹을 것 주기, 묵게 해 주기, 입을 것 주기, 찾아보기, 장사지내기, 구호품이나 의연금 희사.
 
육체적 자선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다른 이들의 신체적 요구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전통적으로 육체적 자선사업은 굶주린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집을 잃은 사람을 묵게 해 주고, 헐벗은 이들에게 입을 것을 주며, 병자와 감옥에 갇힌 이들을 찾아보고, 죽은 이들을 장사지내는 일과 같은 활동들 말합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특별히 가난한 이들에게 구호품을 보내는 일을 형재애적 자선의 중요한 증거로 권면합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구호품이나 의연금을 희사하는 것정의를 실천하는 일이며,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라 합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2447)
 
우리 모두가 영적이고 육체적인 자선사업에 부분적으로나마 동참해야 하겠지만, 우리 모두에게는 자신의 카리스마에 따라 주님을 섬기는 특별한 방식이 있습니다. 
 
2223. 카리스마 또는 은사의 식별


* 열매, 봉사, 초연, 애덕, 질서
 
우리 모두에게는 카리스마가 있기는 하지만, 어떤 것은 참되나 어떤 것은 그렇지 못합니다.  , 우리는 자신이 주님을 섬기고 있다고 쉽게 믿지만, 실상 그렇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카리사마라 믿는 것이 실제로 하느님으로부터 온 선물인지 식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카리스마가 참된지를 결정하는 기준 또는 다섯 가지 테스트가 있습니다: 열매, 봉사, 초연, 애덕, 질서.
 
이제 이러한 기준들을 살펴 보도록 합시다
 
2224. 열매 맺음


*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의, 성실, 온유, 절제 
 
참된 카리스마 또는 은사의 첫번째 징표는 그것이 좋은 열매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그 열매로써 나무를 알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오, 7:17-19).
 
그리스도와 떨어져서는 우리는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열매 맺음  또는 결실(結實)이 바로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길입니다 (요한, 15:2-8). 
 
진정으로, 성 바오로께서는 자신이 하느님께서 명하신 일을 하고 있음을  입증하기 위해서 사도로서 자신이 하고 있는 사업의 열매맺음에 신자들의 관심을 이끄셨습니다 (로마서, 15:17-19; 갈라디아, 2:7-9). 
 
이러한 기준을 만족시키려면 어떠한 종류의 열매를 맺어야 할까요성 바오로께서는 성령의 열매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고 하십니다: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의, 성실, 온유, 절제”(갈라디아, 5:22
 
참된 카리스마를 행사하는 사람은 이러한 덕()들이 커나갈 것이고 다른 사람들 안에서도 그러한 덕을 함양시킬 것입니다.
 
2225. 봉사


* 나를 좀 보세요, 굉장하지 않나요?”
 
둘째, 참된 카리스마는 언제나 교회에 봉사합니다.  성령의 선물은 다른 이들의 선익을 위한 것이지 은사를 행사하는 사람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다른 이들에게 선한 일을 할 때, 우리는 그것을 자신의 자만심을 쌓거나 은행 금고를 늘릴 기회로 사용해서는 안됩니다.  예를 들어, 단지 이력서를 좋게 보이기 위해서만 본당 평의회 봉사를 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공직에 선출되려는 욕망 때문에 무료 급식소에서 봉사하는 것은 동기가 잘못되었습니다.  어떠한 일을 하건 우리는 하느님의 보다 큰 영광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2226. 초연함


* 성공과 실패: 내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결정하십니다
 
세 번째, 카리스마 또는 은사의 축복을 받은 사람은 은사 자체에 집착해서는 안되며, 오히려 그리스도께 정신을 모아야 합니다.  은사에 대한 그러한 초연함이 필요합니다.  은사는 종종 교회의 특별한 필요에 부합하는 것이며 그러한 요구가 충족될 때에 사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가하여, 우리는 삶에서 자신의 노력이 성공함을 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자주 우리의 기도는 즉각적으로 명백한 방식으로는 응답받지 못합니다.  초연한 사람은 자신의 노력이 성공하지 못더라도 지나치게 실망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마더 데레사께서 말씀하셨듯이, 우리는 충실하라는 부르심을 받은 것이지 성공하라는 명령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2227. 애덕


참된 카리스마 또는 은사의 네번째 기준은 애덕입니다.  성 바오로께서는 이에 대해 매우 분명하십니다: 사랑은 모든 선물들 중 가장 위대합니다 (고린토 전서, 13).  우리의 모든 행위는 사랑이 동기가 되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이웃에게 언제나 가장 애덕에 넘치는 일을 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진정으로 우리는 언제나 자신을 펼쳐야(stretch ourselves) 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카리스마라고 생각하는 일을 행사할 수 있을 때에만 다른 이를 사랑하는 것으로 국한해서는 안됩니다.  그들을 위해서 우리는 그들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성 바오로처럼 우리는 모든 이들에게 모든 것이 되어 주어야 합니다 (고린토 전서, 9:19-23) 
 
2228. 올바른 질서


카리스마의 진정성의 마지막 기준은 올바른 질서입니다. 
 
카리스마 또는 은사에 바른 질서가 있으려면,“교회의 목자들의 의견에 귀기울이고 순종해야합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801).  예를 들어, 교회 가르침에 관한 책을 쓰는 사람은 자신의 저술을 기꺼이 교회의 판정 아래 두어야 합니다.
 
교회에 대한 순종은 크나큰 겸손을 요구합니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께서는 다른 사람들 안에 있는 하느님의 은사들에 기꺼이 순명하려는 의지로 겸손을 정의하십니다.
 
겸손한 사람은 자신이 모든 은사들을 지니지 못할 뿐더러 최고 은사조차 소유하지 못함을 알고 있습니다.  그는 개인적인 기분에 따라 카리스마를 사용할 수 없음도 알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는 다른 이들의 은사, 특히 사도적 권위의 은사가 자신의 은사를 보완해 주기를 기대합니다.
 
이러한 권위는 하느님의 선물이기에, 주교들의 판단과 훈계에 순종하는 사람은 인간이 아니라 하느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2229. 교회와의 일치


사실, 어떠한 은사의 행사도 하느님의 지혜와 질서에 따라야 한다면, 우리 모두는 교회에 순명해야 합니다.  은사를 행사하는 사람이 심각한 위험에 있지 않는 한, 교회와의 활기있는 일치를 벗어나서 은사를 행사해서는 안됩니다.
 
아마도 그러한 상황을 염두에 두시고 우리 주님께서 다음과 같은 준엄한 가르침을 주셨을 것입니다: 나에게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에게,‘주님, 주님! 저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 내고,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일으키지 않았습니까?’하고 말할 것이다.  그 때에 나는 그들에게,‘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내게서 물러들 가라, 악행을 일삼는 자들아!’하고 선언할 것이다 (마태오, 7:21-23).
 
분명히, 기적을 행하고 마귀를 쫓아내고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는 것은 카리스마 또는 은사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성령께서 심판의 날에 우리가 하느님 앞에 수많은 좋은 업적들을 내놓을 수 있게 하려고 우리에게 은사를 주신 것이 아님을 강조하십니다.  오히려, 우리가 이루어야 할 근본적인 선업(善業)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바에 따라 우리가 받은 은사를 행사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은사 사용이 교회 가르침과 일치를 이루어야 하고 사도들의 승계자들과 일치해야 합니다. 
 
분명히, 자신의 카리스마를 행사하고자 하는 사람과 교회 권위 간에 긴장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긴장은 두 가지 통상적인 방식으로 드러납니다.
 
2230. 교회 대() 개인


때때로, 성령의 외적 또는 제도적 선물들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내적 선물들을 간과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교리의 순수성과 성사의 효과를 보장하는 교회 역할의 진실성과 중요성을 부정할 여지는 없지만,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성령의 객관적 은사들과 권위를 그 자체를 목적으로 주시지는 않았음을 언제나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진정으로 이러한 은사들은 개인이 성령의 내적 선물을 성장시켜 나갈 수 있도록 봉사하기 위해 있는 것입니다.
 
목자는 양들을 잃어 버리거나 그들의 영혼을 짓누르는 방식으로 양들 위에 군림해서는 안됩니다.   
 
2231.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시오."


교회의 외적
/제도적 선물들과 내적/개인적 선물들간의 연관성오순절에 명백하게 드러납니다.
 
오순절에, 성령께서 바람과 불혀의 형상으로 내려오시자, 베드로는 청중 앞에 일어서서 이러한 기적의 의미를 설명하였습니다
 
성 루까는 사람들이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마음이 꿰찔리듯 아파하며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형제 여러분,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하고 물었다고 기록합니다 (사도행전, 2:37).  베드로는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저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여러분의 죄를 용서받으십시오.”라는 초대의 답변을 하면서 그러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라는 약속을 합니다 (사도행전, 2:37-38).
 
오순절에 성령께서는 교회를 통해서 그리고 사람들 마음 속에서 동시에 작업하십니다교회 측면에서,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생애와 죽으심, 부활과 승천의 의미에 대한 권위있는 가르침을 줍니다.  사람들 측면에서, 성령께서는 청중들이 그러한 메시지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그들의 마음을 준비시키시고, 믿음의 은총으로 베드로의 말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그들의 마음을 이끄시고 온유하게 움직이십니다.  성 대 그레고리오께서는 그것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셨습니다: “성령께서 듣는 이들의 마음을 채우시지 않는다면, 가르치는 이의 목소리는 공허히 듣는 이의 귀를 울릴 것이다.”(성 대 그레고리오, 오순절에 관한 강론 30)
 
2232. 온당한 관계


그러므로
, 오순절은 교회의 모든 활동 -- 그것이 교의에 대한 권위적인 정의(定義)이든, 전례 활동이든, 봉사로의 부르심이든, 은사들에 질서를 부여하는 일이 되었든 -- 의 페러다임입니다.
 
언제나 성령께서는 교회의 외적이고 제도적인 선물들을 통해서 그리고 그로부터 유익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동시에 작업하십니다.
 
2233. 개인 대() 교회


개인의 마음 속에서 성령의 내적인 활동의 가치를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교회를 통한 성령의 작업을 아예 배제시켜 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 가르침보다는 자신의 사적인 종교 체험에 더 큰 가치를 둡니다개인적 체험이 종교적 실천과 신앙의 일차적 기준이 되어 버립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 마음 속에 주신다고 생각하는 말씀을 교회가 가르치는 진리보다 더 신뢰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우리 마음 안에서 하시는 말씀과 교회를 통해서 하시는 말씀이 서로 다를 수 있겠습니까?  아닙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만일 우리의 사적 종교 체험이 교회가 가르치는 바와 다른 무엇을 믿도록 이끈다면, 우리는 그러한 체험이나 그에 대한 해석을 믿어서는 안됩니다.
 
2234. 마음


다시 말씀드리지만, 우리는 성령께서 개인적으로 우리 마음에게 말씀하심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진정으로,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마음은 우리의 이성이나 타인의 이성으로 파악할 수 없는, 우리의 숨겨진 중심이다.  그러기에 오로지 하느님의 성령만이 마음을 살피고 감지하실 수 있다.”고 확인합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2563)
 
그러나, 아무리 종교가 마음의 문제에 관한 것이라 하여도, 마음은 홀로 서지 못합니다.  우리는 종종 자신을 속이기 때문입니다우리 마음 안에서 체험하는 은총은 자기기만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하느님께서 교회에 주시는 외적 은총과 항상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교회보다 자신을 따른다면, 우리는 교회가 주는 실재적인 안전성을 잃어 버립니다.
 
2235. 요람 속의 가톨릭 신자


나면서부터 가톨릭 신자로 자라난 일부 가톨릭 신자들조차도 교회 권위에 반감을 표현합니다.  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교회에 대하여, 그리고 그리스도와 성령과 교회의 관계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합니다.  다른 이들은 가톨릭 신앙에 대해 잘 알고는 있으나, 이런 저런 이유로 인해 여전히 어떤 교회 가르침에 대해서는 어려워 합니다.  하느님의 신비로운 지혜 안에서, 합당히 정해진 순간이 올 때까지 깊은 인격적인 회개가 지연되고 있을 수 있습니다.
 
아마도 그 순간은 개인적인 증언, 교리, 성서 봉독, 심지어 어떤 유형의 고통 체험을 통해서 올지도 모릅니다.  어느 순간, 교회 가르침의 광채나 하느님 사랑의 성사적 기념의 아름다움이 그들을 움직일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교회 안팍에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 복음 전도자가 되어야 합니다우리는 사람들이 교회의 모든 교리, 전례, 규율, 실천 이면에 있는  하느님 사랑을 새롭고 보다 깊이 깨달을 수 있도록 사람들을 도와야 합니다.
 
2236. 우리 목자 사랑하기


가톨릭 신자들은 교회 가르침의 권위를 받아들여야 하고, 성령의 인도를 받는 교회에 속해 있다는 사실에 즐거워해야 합니다.  우리가 약속받은 교회는 신앙과 도덕의 문제에서 우리를 오류로 인도할 수 없습니다.  교회와 교회 가르침의 권위는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이며 우리는 그것을 그렇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는 교회가 성령께서 개인적으로 우리 각자에게 주신 내적 선물인 카리스마, 개인적 은사들을 인도하고 양육하시도록 의탁해야 합니다.
 
2237. 다음 강좌


* 성령, 성체, 그리고 희망
 
본 강좌에서 우리는 성령의 외적, 내적 선물들과 그들의 온당한 관계에 대해 살펴 보았습니다.  다음 강좌에서 우리는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큰 선물인 성체에 대해 자세히 살펴 볼 것입니다.
 

'Good New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령칠은(聖靈七恩)  (0) 2006.05.31
성령과 교회  (0) 2006.05.25
성령  (0) 2006.05.24
야곱의 우물  (0) 2006.05.15
빈 무덤  (0) 2006.0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