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d News

성령과 교회

뚜르(Tours) 2006. 5. 25. 10:34

 새천년 복음화 프로젝트

(Millennium Evangelization Project)


제2-1강: 성령과 교회

(Talk 1: The Holy Spirit and The Church)


2101. 성령과 교회

 

 

교황께서는 삼 년간 "2000년 대희년"을 준비할 것을 요청하면서, "1998년은 특별히 성령께 봉헌되고, 그리스도의 제자 공동체 안에 계시는 그분의 성화 현존에" 바치십니다.

교황께서는 성령을 "복된 성삼의 위격적 사랑"이라 말씀하십니다.  진정으로, 우리가 성령을 생각할 때면 신성한 사랑을 떠올리게 됩니다.  우선, 우리는 성부와 성자를 일치시키는 사랑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두번째로 우리는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삼위일체적 사랑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이 증여하는 사랑의 본질입니다.  성삼의 위격적 사랑이신 성령에 대해 가장 부각되는 점은 성령께서 증여자인 동시에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교황의 말씀을 인용하자면 성령께서는 "창조계 안에서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모든 선물의 영원한 원천"입니다 (제삼천년기 44).

 

2102. 성령: 생명을 주시는 분

 

 

성령께서 주시는 첫번째 선물은 생명의 선물입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교회가 성령을 "생명을 주시는 주님"이라 부르고 있음을 말씀하심으로써 회칙『교회와 세상의 삶 속에 계신 성령』 (The Holy Spirit in the Life of the Church and the World) 을 시작하십니다.  이러한 구절은 우리에게 익숙하게 들리는데, 매주마다 신경(信經)에서 드리고 있는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생명을 주시는 분, 우리가 그리스도께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생명--육체적인 생명이 아니라 영적인 생명--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2103. 성령은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증여하신다.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생명을 주십니다.

 

우선, 성령께서는 하느님께서 이루신 가장 큰 생명의 증여와 사랑의 증여, 즉 예수 그리스도의 육화를 책임지십니다.  "성모 마리아를 감싸셨고" 성자께서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에 계실 수 있도록 작용하신 분은 성령이셨습니다.

 

성령께서는 세례 성사와 견진성사를 통하여 우리 삶을 새롭게 하심으로써, 그리고 우리가 교도권을 통하여 하느님에 대한 진리를 받고 있음을 보증함으로써 교회를 통하여 우리에게 끊임없이 영적 생명을 주십니다.

 

끝으로,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 계신 하느님의 목소리로서 하느님의 뜻을 행하도록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2104. 1998년 준비 주제들

* 성령의 현존과 활동

* 새로운 복음화

* 희망의 징표들

* 일치의 가치

* 성모 마리아의 순종

 

 

우리의 삶 속에서 성령께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인식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다가오는 대희년을 준비하면서 다음 다섯 가지 주제를 마음에 둘 것을 요청하셨습니다.

 

첫 번째로, 교황께서는 교회 안의 "성령의 현존과 활동"에 대해 묵상하길 원하십니다.  우리는 이러한 성령의 현존과 활동을 성사 안에서, 그리고 "교회의 선을 위해 성령께서 불어 넣어 주시는 다양한 카리스마와 역할과 직무들에서" 봅니다.

 

두 번째, 우리는 역사의 진행 속에서 성령께서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는 작업을 해오심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날, 성령께서는 특별히 새로운 복음화를 통하여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고 계십니다.

 

세 번째, 성령께서는 희망의 덕의 원천입니다.  "삶에 의미와 가치를 주는 궁극적 목적에 대한 시각을 잃지 않을 것"을 당부하시는 한편, 교황께서는 "인간 생명에 봉사하는 의학적 발전", 평신도의 교회 직무 참여 증진과 같은 우리 시대 속에 많은 희망의 징표들에 관심을 기울일 것을 요청하십니다.

 

네번째로, 우리는 "교회 안의 일치의 가치"에 초점을 맞출 것입니다.  교회를 성령의 활동에 기반을 둔 그리스도의 몸으로 이해함으로써, 교황께서는 우리 모두가 자신의 책임에 대한 "보다 성숙한 자각"과 "교회적 순종의 중요성에 대한 보다 생기있는 인식"을 갖게 되기를 희망하십니다.

 

끝으로 우리는 "온 마음을 다하여 하느님의 약속에 자신을 의탁하는 사람들의 빛나는 모범"이시며 성령의 목소리에 순응하신 마리아에 대해 묵상하도록 초대받습니다.

 

2105. 강좌 개요

 

 

이와 같은 강좌에서는 이 모든 주제들을 모두 세세히 다룰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적어도 4회의 강의를 통해서 개괄적으로나마 다루어 나갈 것입니다:

 

* 제2-1강: 성령은 누구이신가?

* 제2-2강: 성령의 외적 내적 은사

* 제2-3강: 성령, 성체, 그리고 희망

* 제2-4강: 교회는 신앙인들의 어머니이다.

 

2106. 성령은 그리스도를 알게 해 주신다.

예수님은 주님이십니다!

 

 

대희년을 위한 교황의 준비 계획에서 1998년은 예수 그리스도께 봉헌된 해의 뒤를 이어 성령께 봉헌되었습니다.  교황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언급하지 않고서는 성령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기 때문에 이렇게 순서를 정하셨습니다.  사실, 성령의 직무는 그리스도를 알리는 것입니다.

 

성서는 우리에게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님께서는 주님이시다.’ 하고 고백할 수 없습니다" (1고린 12,3) 라고 이야기합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이러한 신앙의 인식은 성령 안에서만 가능하다. 그리스도와 만나기 위해서는 먼저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683)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 없이는 그리스도께서 우리 구세주이심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2107. 성령은 누구이신가?

 

 

성령은 누구이십니까?  분명히 성령은 성삼위 중 가장 덜 알려져 있습니다.  부분적인 이유는 성령을 가시화(可視化)하기 어렵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성부와 성자를 가시화하여 관련짓기는 쉽습니다.  우리는 인간으로서의 아버지와 아들을 알고 있고 실제로 성자께서 사람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령께서는 인간의 형상을 취하지 않으시며 따라서 눈에 보이지 않고 불분명합니다.  우리 대부분은 그렇게도 모호한 분과는 관계를 정립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2108. 성령의 이미지들

 

 

성서는 우리가 성령을 시각화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다양한 이미지들을 사용합니다.  우리는 창세기 첫째 줄부터 성령을 만나게 됩니다: "강한 바람이 그 물위를 감돌고 있었다" (창세기 1:1).  그러한 강한 바람은 성령의 창조력을 의미합니다.

 

성령께서는 비둘기로 형상화되기도 합니다.  세례자 요한이 그리스도께 세례를 베풀 때 성령께서 내려오셨습니다 (마태오 3:16).  종종 예술가들은 수태고지 때 성모 마리아에게 나타난 가브리엘 대천사와 동반한 비둘기 형상으로 성령을 그립니다.

 

성령은 갈멜 산에서 예언자 엘리야의 희생 제물 위에 (열왕기 상 18:38), 그리고 오순절에 제자들에게 내려오는 불로도 그려집니다 (사도행전 2:2-4).  

 

종종 성령은 구름으로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성령께서는 구름으로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사막에서 인도하셨습니다. (탈출기 40:34-38)  구름으로써 성령께서 예수님, 모세와 엘리야를 감싸신 것과 마찬가지로 (루까 9:34-35), 성령께서는 예수 승천의 날 구름으로서 그리스도를 하늘로 올리셨습니다 (사도행전 1:9).

 

끝으로, 종종 우리는 우리 가운데 계신 성령의 현존을 기름을 사용하여 표시합니다.  신품성사, 견진성사, 병자성사에서는 우리 가운데 계신 성령의 현존을 나타내기 위해 성유가 사용됩니다 (참고: 가톨릭 교회 교리서 698).

 

2109. 자신의 모습을 숨기시는 성령

 

 

그러한 다양한 이미지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모호하게만 보입니다.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 타당한 이유가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자신에게는 주의를 끌지 않으시면서 성부와 성자에게로 이끄시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하느님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그리스도를 알 수 있도록 돕는 일에 봉사하십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가 이야기하고 있는 바와 같습니다: "성령께서는 하느님의 살아 계신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알려 주시지만, 자신에 대해서는 말씀하지 않으신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687).  그분께서는 심지어 "스스로 말씀하시지"도 않습니다 (요한 16:13).

 

결과적으로,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성삼위 중 성령을 자신을 숨기시는 분이라 부릅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687).  즉, 성령께서는 자신이 간과(看過)되어 지나치도록 하십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에 의하면, 성령께서는 우선적으로 그리스도를 증거함으로써 당신의 사명을 완수하십니다.  우리는 요한 복음에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읽습니다: "내가 아버지에게서 너희에게로 보낼 보호자, 곧 아버지에게서 나오시는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분께서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  그리고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나를 증언할 것이다." (요한 15:26)

 

2110. 성령께서는 그리스도께 빛을 비추신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보는 행위에 비유하여 그리스도의 직무와 성령의 직무가 불가분(不可分)의 관계에 있음을 강조합니다.  보기 위해서는 시야에 포착되는 뭔가가 있어야 하고, 볼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하며, 볼 수 있도록 빛을 비추어 주는 광원(光源)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뵙기를 원하는 분이십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단지 아주 좋으신 분으로만 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그 이상이신 분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신앙의 눈으로써 계몽되어 그리스도를 볼 수 있도록 도우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뵙게 될 뿐만 아니라, 그분을 우리 구세주, 하느님 아버지의 아드님이심도 알게 됩니다.  

 

하지만 성서는 우리가 볼 수 있는 눈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리에게는 들을 수 있는 귀 역시 필요한 것입니다.

 

2111.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

 

 

성령께서는 우리가 두 가지 방식으로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도우십니다.  그것을 다음과 같이도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두 가지 방식으로 당신 말씀을 전하십니다.  첫번째 방법은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과 행적을 통해서입니다.  이 방법은 우리 밖에서 이야기된 말씀과 닮았습니다.  교회는 우리가 그러한 말씀을 정확히 받을 수 있도록 보증합니다.  그러한 말씀은 역사적이고 공적이며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내용은 우리의 감정이나 성향에 의지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제단에서 빵과 포도주가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된다는 말씀이나 가르침은 우리의 감정에 의지하고 있지 않습니다.

 

또한, 하느님께서는 이와 같은 말씀을 두번째 방식, 즉 성령의 은총을 통하여 우리에게 오시는 내적인 말씀으로써 이야기하십니다.

 

예를 들어,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는 하느님과의 내밀한 대화인 관상기도는 친구들 간의 긴밀한 나눔과 같은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참고, 가톨릭 교회 교리서 2709).  이러한 두 번째 방법인 내적인 말씀의 목적은 우리가 외적인 말씀을 내면화하여 그리스도처럼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다음 슬라이드는 그러한 논점에 대해 교회가 자신을 표현하는 전형적인 방식인 제2차 바티칸 공의회로부터 인용한 내용입니다.  그것을 읽어나가면서 우리는 그리스도는 거룩함의 외적 모델로 제시되고 있는 반면, 성령은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는 분으로 제시된다는 사실에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입시다.  공의회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다음 슬라이드로 넘어가십시오.]

 

2112. 예수: 거룩함의 모델

 

 

모든 완덕의 천상 스승이시며 모범이신 주 예수님께서는 친히 거룩한 생활의 창시자요 완성자로서 당신의 모든 제자에게 어떠한 신분이든 그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생활의 성화를 가르치셨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같이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완전한 사람이 되어라”(마태 5,48).  주님께서는 실제로 모든 사람이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도록 (마르 12,30 참조), 또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사랑하신 것처럼 서로 사랑하도록(요한 13,34; 15,12 참조) 내적으로 그들을 움직이시는 성령을 모든 사람에게 보내 주셨다. (교회에 관한 교의헌장,『인류의 빛』40)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거룩함에로 부르십니다.  그리스도 스스로 거룩함의 외적인 표본이십니다.  성령께서는 내적으로 우리를 움직여서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응답하게 함으로써 우리가 거룩하게 될 수 있도록 하십니다.

 

우리는 자신만의 힘으로는 그리스도를 성공적으로 모방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생애에 대해 아는 것은 우리가 그분께서 사셨던 삶을 살아내는 것과 별개의 이야기입니다.  그리스도처럼 살기 위해서 우리에게는 성령의 내적인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2113. 성령: 기도의 내적 보조자

 

 

우리가 그리스도와 성령께서 함께 일하신다는 것을 볼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기도의 영역에서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기도라는 외적인 말씀을 주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성령을 "그리스도인이 드리는 기도의 내적 스승이시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2672) 라 말하고 있으며, 성령께서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치신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기도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성령께서 우리를 가르쳐 주시도록 청함으로써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었을 때, 우리는 성령으로 가득 찰 것이며 하느님의 뜻을 행할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끄시는 성령의 재촉하심을 식별할 수 있습니다.

 

2114. 성령의 인도를 받다.

"이끄소서, 친히 빛을 밝히소서, 저를 당신께로 이끄소서."

 

 

우리 삶을 통하여, 성령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인격적으로 이끌어 오십니다.  성령의 이미지들을 담은 이전 슬라이드를 기억하십니까?  그들 중 하나는 이집트로부터 이스라엘 사람들을 이끌어내신 것과 같은 구름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령은 우리 개개인을 이끄십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죄의 노예상태로부터 이끌어 내셔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삶의 충만함으로 인도하십니다.  성령께서는 때때로 설교를 통하여, 벗과의 대화를 통하여, 우리가 읽거나 보는 내용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심으로써 우리를 이끄십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끄시는 곳으로 갈 수 있도록 우리 삶 속에서 성령의 움직임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령은 언제나 즉각적으로 만나뵐 수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매 순간마다 성령께 의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길을 잃거나 인도를 필요로 할 때마다, 우리는 존 헨리 뉴만 추기경께서 이러한 아름다운 기도에서 그러셨던 것처럼 성령께 의탁해야 합니다.

 

2115. 세례: 기름부음 (도유)

 

 

내적인 성령의 삶은 우리의 세례로써 시작됩니다.  세례는 우리를 모든 죄로부터 정화시킬 뿐만 아니라 우리를 성령께서 머무시는 성전과 새 사람이 되게 합니다 (참고, 가톨릭 교회 교리서 1265).

 

세례성사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진리를 알리는 직무를 위해 기름부음 받습니다.  진정으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기름부음 받으신 것과 같이 기름부음 받은 사람이 됨을 의미합니다.  기름부음 받음으로써 우리는 사제직, 예언직, 왕직의 그리스도 사명에 동참하도록 위촉받고 권한을 부여받습니다.

 

우리가 세례성사에서 기름부음 받는 성유(聖油)는 그리스도인의 삼중 직무에서 우리를 이끄시는 성령의 현존을 의미합니다.

 

2116. 기름부음 받은 자

그리스도

 

 

그리스도(히브리어로‘메시아’)는 하느님의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분’를 의미한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695) 는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까?

 

때때로 그 말은 메시아로 번역됩니다.  메시아는 성령께서 특별히 기름부으심으로써 사명을 받고 힘을 얻은 자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성서에서 사제와 왕은 그들의 직무를 위해 하느님께서 선택하셨다는 징표로, 그리고 그러한 직무를 수행하기 위한 특별한 은사를 받았다는 징표로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탈출기 29:7, 30:22-33; 레위 8:12; 사무엘 상 16:13).

 

2117. 사제, 예언자, 왕이신 그리스도

사제는 거룩하게 하고

예언자는 진리를 증언하며

왕은 다스린다.

 

 

신약성서에서 우리는 사제이자 예언자이시며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됩니다.

 

사제는 희생으로써 대상을 축성, 또는 거룩하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제이십니다.  그리스도 친히 우리 구원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절대적으로 고유한 것은 단순히 그리스도께서 희생을 드리셨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희생으로 봉헌하셨다는 것입니다.  성서는 그리스도께서 새 계약의 대사제로서 "당신의 피로 백성을 거룩하게 하시려고" 자신을 바치셨다고 이야기합니다 (히브리 13:12).

 

그리스도는 최고 예언자셨습니다.  예언자의 임무는 진리를 증언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진리를 증언하려 세상에 오셨습니다 (요한 18:37).  그 진리는 예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며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로부터 우리를 구원하러 오셨다는 것입니다.

 

끝으로, 그리스도께서는 왕직에 대한 세상의 이해를 뒤엎으심으로써 왕으로서의 직무를 완수하셨습니다.  당신께서 절대자 주님이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다스림은 섬김이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오셨습니다 (마르꼬 10:45).

 

2118. 그리스도의 직무에 동참하기

 

 

그러나 예수께서 하느님 아버지의 오른편으로 승천하셨을 때 그리스도의 삼중 직무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부께서 성령으로 기름부어 ‘사제이고 예언자이며 왕’으로 세우신 분이다. 하느님의 백성 전체가 이러한 그리스도의 세 가지 직분에 참여하며, 거기에서 나오는 사명과 봉사의 책임을 진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783).

 

그리스도께서 이루셨던 모든 일을 성령께서 계속해서 완수하십니다.  그러나 성자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적 몸을 통하여 당신 사명을 이루셨지만, 성자께서는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를 통하여 당신 사명을 완수하십니다.  하느님 백성인 우리가 교회입니다.  우리는 신비체의 구성원입니다.  따라서 우리도 역시 그리스도를 본받고 사제직, 예언직, 왕직의 그리스도 사명에 동참함으로써 거룩함을 추구해야 합니다.

 

2119. 세례적 사제직과 교계적 사제직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참여할 수 있는 두 가지 근본적인 방법이 있습니다.  실제로, 세례받은 모든 사람들은 세례적 사제직에 동참합니다.  

 

세례받은 모든 사람들은 성사를 통하여 은총을 받음으로써 그리고 매일의 생활 속에서 그러한 은총을 삶으로써 세례적 사제직을 행사합니다.  이렇게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행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온 삶을 하느님께 대한 영적인 희생으로 삼습니다.

 

사제직의 가장 특징적인 행동은 기도입니다.  모든 믿는 이들은 하느님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고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며 하느님의 나라가 오시기를 매일 기도하도록 부르심받습니다.

 

신품 성사는 교계적 사제직이라 부르는 다른 유형의 동참을 가져 옵니다.  서품받은 사람만이 이러한 사제직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교계적 사제직은 "성직" ministerial 이라고도 부릅니다.  세례받은 모든 이들을 섬기기 때문입니다.

 

2120. 예언자는 진리를 증언한다

 

 

조금 전에 이야기했던 바와 같이, 신자들은 기도와 희생에 동참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참여합니다.  우리는 진리를 증언함으로써 예언직에 참여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진리의 성령" (요한 14:17; 16:13) 이라 부르신다는 것을 발견한다고 해서 놀라서는 안됩니다.  물론, 그리스도께서는 진리이십니다.

 

성령께서는 교황과 주교들이 우리에게 진리를 가르칠 것임을 확증하시고 우리가 진리의 용감한 증거자가 될 수 있도록 하십니다.  예를 들어, 교회의 도덕 가르침을 바꾸라는 엄청난 사회적 압력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견고히 낙태와 안락사와 같은 행위에 반대하여 설교해 왔습니다.  교황과 주교들은 이러한 악에 대해 많은 공적 선언을 해오셨고 평신도들은 이러한 진리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진리를 증거함으로 인해 수난하는 사람들은 열 번째 참된 행복에 있는 위안을 받을 수 있습니다: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이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니" (마태오 5:10).

 

2121. 왕은 섬기는 자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의 지상 대리자인 교황 주교들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다스리심을 지속시키십니다.  주교들은 "그리스도의 대리자이며 사절로서 자기에게 맡겨진 개별 교회들을 다스림"으로써 봉사합니다 (교회에 관한 교의헌장,『인류의 빛』27).

교황과 주교들은 세속적 영역을 다스리지 않습니다.  세속적 영역을 다스리는 것은 평신도의 직무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다음 슬라이드로 넘어 가십시오.]

 

2122. 평신도의 왕직

 

 

평신도들의 임무는 자기 소명에 따라 현세의 일을 하고 하느님의 뜻대로 관리하며 하느님의 나라를 추구하는 것이다. 평신도들은 세속 안에서, 곧 각각의 온갖 세상 직무와 일 가운데에서, 마치 그들의 삶이 짜여지는 것 같은 일상의 가정 생활과 사회 상황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거기에서 하느님께 부르심을 받아, 자기의 고유한 임무를 수행하며 복음 정신을 실천하고 누룩처럼 내부로부터 세상의 성화에 이바지하며, 또 그렇게 하여 무엇보다도 자기 삶의 증거로써 믿음과 바람과 사랑으로 빛을 밝혀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분명하게 보여 준다 (교회에 관한 교의헌장,『인류의 빛』31).

 

우리는 교회의 일을 통치함으로써가 아니라 정의로운 법이 통과되는 것을 지켜보고 우리 자녀들을 교육시키며 노숙자들을 보살핌으로써 우리의 왕직 은사를 행사합니다.  요약하면,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 세계를 변화시킴으로써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이러한 섬김을 실천할 수 있는 카리스마와 은사를 주십니다.  

 

2123. 영향력의 위치

 

 

영향력이나 힘이 교회의 위계로만 제한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우리 문화 속에서 사람들은 중요한 직위에 앉아 있지 않는 경우 소외되고 푸대접받게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교회에서 통용될 수 있는 이야기가 될 수 없으며, 사회적으로 대승적인 견지에서 보아도 그렇지 않습니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는 공적인 직위도 가지고 있지 않았으나 그가 미국 사회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쳤음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누가 캘커타의 마더 데레사의 영향력을 부정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주교와 사제와 달리 데레사 수녀님은 아무런 교계적 권위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는 교황 그레고리오 11세에게 "남자답게" be a man 아비뇽을 떠나 로마로 돌아가라고 훈계함으로써 교회 전체 역사를 뒤바꾸어 놓으셨습니다.  그녀는 성령의 인도를 받음으로써 대담한 요청을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그녀의 성소요 사명이요 성령께서 주신 은사였습니다.

 

2124. 거룩함과 교계

 

 

더군다나, 교회 안의 권위적 위치들에 자동적으로 따라오는 아무런 특별한 거룩함도 없습니다.  평신도와 성직자 모두 자신의 임무를 책임성있게 수행함으로써 거룩해져야 합니다.  우리들 중 어떤 사람은 위대한 업적을 실행할 수도 있을 것이지만, 우리 대부분은 좋은 아내와 남편, 좋은 동료와 이웃이 됨으로써 거룩함에 도달하게 됩니다.  성령께서는 우리 개개인을 인도하시고 우리가 삶에서 대면하는 도전들에 응답할 수 있도록 도우실 것이기에, 우리는 성령의 은사에 응답할 책임을 개개인이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는 마리아거룩함의 근본적인 모범으로 제시합니다.  마리아는 아무런 제도상의 공식 직위에도 오르지 않았습니다.  마리아는 아무런 놀라운 공적인 업적도 행사하지 않았습니다.  마리아는 자신의 전생애를 그리스도의 섬김에 의탁하라는 성령의 초대에 즉각적이고 전심으로 응답하심으로써 거룩하게 되셨습니다.

 

그렇게 하심으로써 성모 마리아는 여태껏 살았던 사람들 중 가장 거룩한 분이 되었습니다.  마리아처럼 우리는 교회와 기도를 통하여 시작되는 성령의 초대에 응답하여 어떠한 직업이나 삶의 여건에 처해 있든지 완전히 자신을 증여하는 삶을 살아가길 열망해야 합니다.

 

2125. 진리로 엮어진 교계와 평신도

 

 

우리 모두는 거룩함에도 부르심받았을 뿐만 아니라, 진리를 찾고 진리로써 살아갈 의무가 있습니다.  모든 이는 사도전승의 가톨릭 교회를 통하여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복음의 진리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신앙은 평신도에게나 교계 제도에 속해 있는 사람에게나 아무런 다를 것이 없습니다.  신앙의 진리는 언제나 사도들과 그 계승자들인 주교들의, 신적으로 세워진 권위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아무도 무엇이 진리인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를 세우심으로써 모든 이들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신뢰로써 받아들일 수 있도록 보장하셨습니다.

 

2126. 크리스마 기름

세례: 다시 태어남

견진: 성숙

 

 

세례와 견진에 사용되는 크리스마 기름을 축성하는 주교의 역할은 교회의 일치가 사도들의 후계자들을 통하여 실현된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주교들은 "사도적 일치" (가톨릭 교회 교리서 1312) 가 있음을 보증합니다.  주교들은 우리 모두를 제자로 삼음으로써 사도들께서 하셨던 일을 수행해 나갑니다.

 

앞에서 우리는 세례성사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세례성사와 견진성사의 연관성에 대해 살펴 보겠습니다.  그 관련성은 두 성사 모두 매년마다 크리스마 미사에서 주교가 축성하는 동일한 크리스마 기름을 사용한다는 사실에서 풍부히 상징화됩니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두 성사에서 크리스마 기름이 유의하게 다른 역할을 한다는 사실입니다.

 

세례성사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고 그를 알립니다.  그럼으로써 우리 존재는 그리스도의 죽으심 안으로 던져져서 그분과 더불어 새 생명으로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견진성사에서 성사를 이루는 핵심적인 표징은 "성령을 받으십시오."라는 말씀으로써 크리스마를 준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견진성사의 특별한 효과는 성령의 은사를 심화시키고 성숙시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견진성사에서 크리스마 기름으로 축복받기 바로 전에 다음 이사야 말씀이 봉독됩니다: [다음 슬라이드로 가십시오]

 

2127. 성령의 선물

 

 

이새의 그루터기에서 햇순이 돋아나고 그 뿌리에서 새싹이 움트리라.  그 위에 주님의 영이 머무르리니, 지혜슬기의 영, 경륜용맹의 영, 지식의 영과 주님을 경외함이다.  그는 주님을 경외함으로 흐뭇해 하리라 (이사야 11:1-3).

 

이러한 구절은 교회의 사명에서 우리가 나누어 받고 성숙하는 성령의 은사를 보여줍니다.  고대 그리이스와 라틴어 번역은 주님을 두려워함 대신 신앙 piety 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전통적인 성령 칠은을 표시합니다.

 

2128. 오순절과 견진성사

 

 

 

견진성사의 은총오순절에 제자들에게 처음 내렸습니다.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믿음 속에서 예수님과 함께 걸어 갔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알아보고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바를 믿을 수 있는 은총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믿음은 여전히 부족한 것이었습니다 (참고, 마태오 8:26; 14:31; 16:8).  아직까지 제자들은 주님께서 생각하시는 길 속으로 충만히 들어가지 않았고 (참고, 마르꼬 9:33-37; 사도행전 1:6; 요한 14:8-11), 매우 중요한 것은 그들이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것입니다 (요한 20:19).  그들은 진정으로 "주님과 함께" 있었고 그리스도와 가까이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으로부터 크나큰 가르침을 받기는 했지만, 가르침을 받고 관찰하고 스승을 본받는 통례적인 방법을 통해서만 배울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2129. 사도적 일치

 

 

오순절에 교회 구성원들은 그리스도의 진리를 위해 싸우는 믿는이들의 군대가 되어 일치하였습니다.

 

오순절에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계시하고자 하신 모든 것을 내면화시킬 수 있는 은총을 사도들에게 주셨습니다.  오순절이 사도들에게 가져온 크나큰 변화는 우선적으로 더이상 박해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는 데에서 나타납니다.  이러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그들은 성령에 감동되어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심지어 순교하는 시점까지도 이르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견진성사에서 그러한 은총을 받습니다.

 

그렇다면, 견진성사의 은총은 이러한 그리스도 안의 새 생명을 완성시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새 생명을 다른 이들에게 전할 수 있게 됨으로써, 특히 살아있는 증거를 통하여 그리스도 안의 새 생명을 완성시킵니다.

 

견진성사를 통하여 우리는 어려움, 심지어 박해조차 두려움 없이 대면할 수 있을만큼 굳건해집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 진리에 대한 사랑, 교회와 타인에 대한 사랑에서 희생, 심지어 우리 자신의 생명에 대한 희생을 치를 준비가 됩니다.  

 

군대 이미지는 목적을 이루기 위한 무력사용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진리를 전하는데 일치하고 열심이어야 한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2130. 하느님의 갑옷

허리띠 - 진리

갑옷 - 의로움

신발 - 평화의 복음

방패 - 믿음

투구 - 구원

성령의 칼 - 하느님 말씀

 

 

성 바오로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끝으로, 주님 안에서 그분의 강한 힘을 받아 굳세어지십시오.  악마의 간계에 맞설 수 있도록 하느님의 무기로 완전히 무장하십시오.  우리의 전투 상대는 인간이 아니라, 권세와 권력의 악신들과 이 어두운 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령들입니다.  그러므로 악한 날에 그들에게 대항할 수 있도록, 그리고 모든 채비를 마치고서 그들에게 맞설 수 있도록, 하느님의 무기로 완전한 무장을 갖추십시오. 그리하여 진리로 허리에 띠를 두르고 의로움의 갑옷을 입고 굳건히 서십시오.  발에는 평화의 복음을 위한 준비의 신을 신으십시오.  무엇보다도 믿음의 방패를 잡으십시오.  여러분은 악한 자가 쏘는 불화살을 그 방패로 막아서 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의 투구를 받아 쓰고 성령의 칼을 받아 쥐십시오.  성령의 칼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에페소 6:13-17).

 

자신의 목숨을 바쳐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고 보호하는 그리스도의 이러한 군인 이미지는 다른 이를 섬기는 자리에서 우리에게 요구되는 성숙함의 적절한 이미지입니다.  견진을 받은 사람은 군인과 같은 성숙함에 이를 수 있고, 받기만 하는 어린이 단계로부터 벗어나 교회의 생명과 사명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는 세례 은총이 강화됩니다.

 

2131. 그리스도인의 "협력"

협력하다 conspire : 협동하다, 합심하여 일하다.

 

 

군대의 구성원들이 합심하여 일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합심하여 일해야 합니다.  사실, 우리는 너무도 가까이 일해야 하는 까닭에 서로 협력 conspire 한다고까지 말할 수 있습니다.  ’협력’을 문자 그래도 풀이하면 함께 숨쉰다라는 뜻이 됩니다.  그리스도의 사명은 성령만으로 지속되지 않으며 인간 혼자 힘만으로도 유지되지 않습니다.  성령과 인간의 일치된 활동만이 그 사명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교회는 하느님의 숨결이신 성령과 그리스도의 제자들과 함께 숨쉬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모든 가톨릭 학교 체제는 가톨릭 부모들 상호간의 협력, 그리고 그 자녀들에게 신앙의 진리를 가르치는 교회의 산물입니다.  이는 진실로 성령으로써 세례를 받고 협력하는 경우입니다.

 

그리스도의 사제직, 예언직, 왕직은 인간과 하느님이신 성령의 협력을 통하여 수행됩니다.  진정으로, 교회의 존재는 신성한 협력 divine conspiracy 으로 이루어집니다.  

 

2132. 다음 강의

성령의 내적 외적 작용

 

 

우리 모두는 우리가 교회에 봉사할 수 있도록 해주시는 성령으로부터 선물을 받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하느님 나라가 오는데 있어 특별한 특정 역할이 있습니다.

다음 강의에서 우리는 성령께서 당신께 대한 협력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교회에 주시는 다양한 은사에 대해 보다 자세히 살펴볼 것입니다.  우리는 다양한 성령의 다양한 (성서와 교도권과 같은) 외적인 은사들과 (믿음과 겸손과 같은) 내적인 은사들에 대해 배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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