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Manor(莊園)

55년만의 포옹 - 4촌 형의 이야기

뚜르(Tours) 2006. 8. 9. 11:59
55년만의 포옹
미군아저씨와 전쟁고아 만났다
고아 수백명 돌본 드레이크씨
광주서 당시 사진·자료 전시

▲ 한국전 때 전쟁 고아들을 돌본 미국인 조지 F 드레이크씨(왼쪽)와 그의 보살핌을 받았던 조우연씨가 55년 만에 만나 얼싸안고 있다. /이명원기자 mwlee@chosun.com
8일 오전 서울 태평로 한국언론재단 사무실. 피부색이 다른 두 동서양 노인(老人)이 서로를 얼싸안은 채 발을 동동 구른다. 55년 만에 만난 두 사람. 눈물이 그렁그렁한 백발 미국인은 76세의 조지 F 드레이크(George F Drake)씨, 얼굴도 제대로 들지 못한 채 드레이크씨의 어깨를 움켜쥐고 있는 한국인은 조우연(63)씨다.

“15년 동안 당신을 찾았는데 이렇게 만나게 되는군요.”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제가 먼저 선생님을 찾았어야 되는데….”

드레이크씨는 한국전쟁 당시, 32 통신 중대에서 사병으로 근무하면서도 전쟁 고아를 돌보는 데 온 힘을 기울였던 인물. 1950년 참전한 그는 처음 6개월간 미국의 시민들에게 오갈 데 없는 한국 전쟁고아를 도와줄 것을 요청하는 편지 1000여통을 보냈으며 부대원들의 성금을 모아 수백명 고아를 직접 돌보기도 했다. 그는 매주 20시간 이상 고아들을 돌보는 데 시간을 썼다. 그는 “당시 한국의 가난은 삶이 불가능한 지경이었다”며 “6살짜리 어린 여자 아이가 2살 동생을 등에 업고 음식을 구걸하는 모습을 봤을 때, 과연 내가 할 일이 무엇인지 심각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 미군병사들을 조씨는 이렇게 기억했다. “저는 원래 어린 동생 둘과 장충동의 고아원에 있었어요. 아버지는 납북되시고 어머니도 병으로 돌아가셨어요. 옷도, 이불도, 먹을 것도 없었어요. 그런데 드레이크씨와 미군들이 나타나 저희 고아원생 150여명을 부대 옆 ‘모나세스’ 고아원으로 옮겨놓더군요. 이불, 솔, 치약, 옷, 없는 게 없었어요. 드레이크씨는 우리에게 상상도 할 수 없는 사랑을 줬죠.”

그는 “그때 미군들이 아니었으면 언제 삶의 끈을 놓아버렸을지 모른다”며 “뼛속 깊이 새겨진 그 고마움을 잊지 못해 나도 다른 사람의 어려운 형편을 쉽게 넘어가지 못한다”고 했다.

전쟁 중에도 고아들을 위해 미국 시민들로부터 200여만달러를 미국에서 끌어왔던 드레이크씨는, 제대 후에도 20여t 가까운 물품을 한국 고아원으로 보냈다. 사회학을 전공, 웨스턴 워싱턴 대학에서 교수로 일하다가 지난 90년 정년 퇴직한 뒤 그가 온 몸을 바친 것은 ‘한국전쟁의 또 다른 이면’에 대한 조명이다. 미군이 전쟁고아를 돕는 현장을 보여주는 자료, 사진 등을 수집해 왔다. 그는 “미군들이 그간 전세계에서 1만명이 넘는 아이들 목숨을 구했고 400개가 넘는 고아원의 5만4000여명 고아들을 보살피는 일도 자발적으로 해왔다는 사실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호남사회봉사회 주최로 14~19일 광주시청 1층 전시실에서 열리는 전시회 ‘미군 병사들과 한국 아이들, 그들의 사랑이야기’는 그런 드레이크씨 노력의 결실이다. 2000여점의 사진·자료는 그가 수집했거나 직접 촬영한 것. 한국전쟁 당시 군목(軍牧)으로 참전해 상부의 허가도 받지 않고 고아 950여명을 안전지대로 옮겼던 블라이스델(Rus sel L Blaisedel·95)씨가 촬영한 사진도 함께 전시된다. 드레이크씨는 자신의 고향인 벨링햄시의 공원에 한국전쟁 참전용사 추모기념탑을 세웠으며 한국 전쟁고아들을 위한 인터넷 사이트(www.koreanchildren. org)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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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우연씨는 저의 4촌 형입니다. 작은 댁 4남 1녀 중 셋째 아들입니다. 전쟁 중에 부모님을 잃고 모두

뿔뿔이 흩어져 살았답니다. 우리 집도 전쟁 중에 폭격으로 19살의 큰 아들을 잃고, 피난살이로 이 4촌들을 돌볼 수가 없었답니다. 우애 깊으셨던 아버지는 전쟁 중에 헤어진 동생들과 조카들을 생각하시고 종종 우시던 모습이 선합니다. 이제 4남 1녀 모두 자수성가하여 깊은 신앙생활을 하시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조선일보에서 전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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