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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경세유표(經世遺表)
:《경세유표(經世遺表)》는 조선 후기 실학자 정약용이 행정기구의 개편을 비롯하여 관제 · 토지제도 · 부세제도 등 모든 제도의 개혁원리를 제시한 책. 44권 15책. 필사본(필사연기 미상). 원제명은 《방례초본 邦禮草本》이며, 1817년(순조 17)에 저술되었고 미완본이다. 정약용이 유배 중에 전라남도 강진에서 저술하였는데, 앞머리에 〈방례초본인 邦禮草本引〉을 붙여 저술의도를 밝히면서 “터럭만큼도 병통이 아닌 것이 없는 바 지금이라도 고치지 않으면 반드시 나라가 망할 것이다.”라고 하여 근본적인 개혁을 통해서만 국가와 사회가 유지될 수 있음을 강조하였다. 관제·군현제도·전제(田制)·부역·공시(貢市)·창저(倉儲)·군제·과제·해세(海稅)·마정(馬政)·선법(船法) 등 국가경영을 위한 제도론으로서 현실적 실용여부는 불구하고 기강의 대경대법을 서술하여 구방(舊邦)을 유신하고자 하였다. '경세 經世'란 국가제도의 뼈대를 세워 운영함으로써 나라를 새롭게 하겠다는 뜻이며, '유표 遺表'란 신하가 죽으면서 임금에게 올리는 글이라는 뜻이다. 곧 경세유표란 다산의 학문을 결집한 국가개혁론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이른바 1표2서(一表二書)라 하여 《목민심서 牧民心書》 · 《흠흠신서 欽欽新書》와 함께 정약용의 경세사상을 대표하는 저술의 하나이다. 이 가운데 《목민심서》나 《흠흠신서》가 당시의 법률체계나 사회구성원리를 크게 변화시키지 않는 범위내에서 지방행정이나 형사사건 등을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한 상세하고 세부적인 실무지침을 규정하고 있는 책들임에 비해, 《경세유표》는 국가와 사회의 전반적인 개혁을 위한 원칙이 보다 근본적으로 제시된 저술이다. 관직체계의 전면적 개편, 신분과 지역에 따른 차별을 배제한 인재등용책, 자원에 대한 국가관리제 실시, 정전제 토지제도개혁, 부세제도의 합리화, 지방행정조직의 재편 등 이 책에서 제기되고 있는 개혁안들은 사회체제의 근본적 개혁이 반드시 이루어져야만 가능한 것들이다. 또, 남인 실학자들의 공통된 주장인 토지제도개혁과 민생안정뿐 아니라 기술발달과 상공업진흥을 통한 부국강병의 실현이라는 북학파 실학자들의 주장이 폭넓게 반영되어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정약용 자신의 정치 · 사회적 이념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당시 실학자들이 궁극적으로 지향하고자 한 사회의 성격을 이해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된다. 그밖에도 당시 사회의 실상과 제반모순을 비판적 안목에서 상세히 서술하고 있어 조선 후기의 정치 · 사회 · 경제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2.목민심서(牧民心書) :《목민심서(牧民心書)》 48권이 있다. 현재의 법도로 인민을 다스리고자 한 것이니 율기·봉공·애민을 3기(紀)로 삼았고 거기에다가 이·호·예·병·형·공을 6전(典)으로 삼았으며 진황(賑荒)을 끝으로 하였다. 부정행위를 적발하여 목민관을 깨우치게 함으로써 그 혜택이 백성들에게 돌아가도록 하였다. 목민관 곧 고을 수령이 지켜야할 지침을 밝히면서 관리들의 폭정을 비판한 저술. 고을 수령이 백성을 다스리는 방법과 갖추어야 할 기본자세를 조목조목 적고 있다. 1.부임 2. 율기 3. 봉공 4. 애민 5. 이전 6. 호전 7. 예전 8. 병전 9. 형전 10. 공전 11. 진황 12. 해관의 12편으로 나누고 각편을 다시 6조로 나누어 모두 72조로 편술되어 있다. 모두 48권 16책이며 책의 체제는 수령이 지켜야 할 덕목을 먼저 제시한 다음 그것에 관련된 실례를 광범위한 문헌을 들어 예시하는 이른바 강목체의 기술 방식을 취했다. 그의 저작연표에 의하면, 그가 현실적인 문제에 마지막 정열을 기울인 것은 강진 유배생활 19년간의 거의 전부를 경전연구에 몰두하고 있다가 연만(年晩)한 때에 얻은 학문적 이해와 경험을 경주하여 해배 전 년에 《경세유표》, 해배되던 해에 《목민심서》, 해배 다음해에 《흠흠신서》를 계속 펴낸 것만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정약용은 16세부터 31세까지 부친이 현감 · 군수 · 부사 · 목사 등 여러 고을의 수령을 역임하고 있을 때 임지에 따라가서 견문을 넓힌 일이 있었고, 자신도 33세 때 경기도에 암행어사로 나아가 지방행정의 문란과 부패로 인한 민생의 궁핍상을 생생히 목도한 데다가 직접 찰방 · 부사 등의 목민관을 지내면서 지방행정에 대한 산 체험을 경험하였다. 이러한 다산의 생생한 체험이 녹아 들어있으며 조선후기 지방사회의 부패상과 인생문제가 소상하게 적혀 있다. 그러나 이는 수령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백성의 편에서 수령의 횡포와 부정부패를 고발하는 형식으로 기술되고 있어 다산의 애민정신이 잘 드러나 있다. 그는 이 책의 서문에서 “오늘날 백성을 다스리는 자들은 오직 거두어들이는 데만 급급하고 백성을 부양할 바는 알지 못한다. 이 때문에 하민(下民)들은 여위고 곤궁하고 병까지 들어 진구렁 속에 줄을 이어 그득한데도, 그들을 다스리는 자는 바야흐로 고운 옷과 맛있는 음식에 자기만 살찌고 있으니 슬프지 아니한가” 라고 개탄하고, 특히 수령칠사(守令七事)의 하나인 간활식(奸猾息)에서 수령과 아전의 간활을 배제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 책을 비롯하여 조선 초기의 《목민심감》, 후기의 《거관요람》 · 《거관대요》 · 《임관정요》 등 여러 목민의 서가 지향한 가장 중요한 특징은 목민관의 정기(正己)와 청백사상이 전편에 걸쳐 강하게 흐르고 있는 점이다. 또한 청렴은 수령의 본무이며 모든 선의 원천이며 덕의 근본이니, 청렴하지 않고 능히 수령노릇 할 수 있는 자는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목민심감》이 《거관요람》 · 《임관정요》에 많은 영향을 주었고, 또 이 책은 안정복(安鼎福)의 《임관정요》를 여러 곳에서 인용함으로써 그의 목민관을 계승하고 있다는 점에서, 《목민심감》 · 《임관정요》가 이 책의 선하(先河)가 되고 있는 것은 이미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조선후기 지방행정의 실태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거울과 같은 책으로 다산이 돌아간 뒤 수많은 필사본이 유통될 정도로 널리 읽혀졌으며 오늘날에도 많은 교양인들이 찾고 있는 우리시대의 고전적인 경전이다. 3.흠흠신서(欽欽新書) :《흠흠신서(欽欽新書)》는 조선 순조 때 정약용이 저술한 형법서(刑法書). 30권 10책. 508권의 저서 가운데 《경세유표》 · 《목민심서》와 함께 1표(表) 2서(書)라고 일컬어지는 정약용의 대표적 저서이다. 인명에 관한 옥사를 다스리는 책이 적었기 때문에 경사(經史)에 근본하였거나 공안(公案)에 증거가 있는 것들을 모아 옥리들로 하여금 참고하게 함으로써 원한의 소지를 없애도록 하였다. "흠흠신서는 어떤 내용인가? 마치 사람의 목숨을 다루는 형사사건에서 다스리는 사람이 더러 알지 못하는 것이 있기에 경서와 사서로서 근본을 삼고 비평과 논의로서 보강하고, 사건 기록으로서 증거가 되게 하였으며 모든 것을 헤아리고 바로잡아 형사사건을 처리하는 사람들에게 보여주어 백성들의 억울함이 없기를 바라는게 나의 뜻이었다." 다산은 생전에 손수 쓴 자신의 묘지명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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