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 그 뒤안길

다산 정약용의 출생과 배경

뚜르(Tours) 2007. 8. 17. 11:26

 

 

 
다산은 1762년(임오년,영조38년) 음력 6월 16일, 아버지 정재원(羅州丁氏-荷石 丁載遠)과 어머니 해남윤씨(海南尹氏) 사이에서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태어난 곳은 한강 강변 마현 마을이다.
당시로는 경기도 광주군(廣州郡) 초부면(草阜面) 마재(馬峴)이고, 오늘날의 행정구역으로는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이다.
 
나주정씨는 처음 본관을 압해(押海)로 하였으나 영조 때 나주로 본관을 바꾸었다.
시조(始祖) 고려 검교대장군 정윤종(丁允宗)으로부터 6세(六世) 공일(公逸)까지 압해도에 거주하였고 7세(七世) 원보(元甫)가 황해도 덕수(德水)로 이거하였다.

시조 이하 6세의 분묘는 압해도에 있었으나 고려말 압해도가 왜구의 침탈로 실토(失土)
됨에 따라 실전(?)되었다고 한다. 압해도는 본래 군치(郡治)의 섬으로 박씨, 정씨, 주씨, 홍씨

등이 본거지로 하였으나 고려조에 현치(縣治)로 하였다가 현이 없어지고 나주에 소속되었다.

고려 말에는 왜구의 침략으로 빼앗겼던비운의 섬으로 지금은 행정구역이 전남 신안군 압해면이다.
고려 말에 배천(白川)에서 살다가 이씨조선을 세울 무렵부터 서울에서 살았다.

 
 

어머니는 숙인(淑人) 해남 윤씨(海南 尹氏/1728-1770)는 윤덕렬의 딸로 우리 국문학상 대표적

시조시인으로 일컬 어지는 고산 윤선도(孤山 尹善道)의 6세 손녀이자 詩 · 書에 두루 능했던

공재 윤두서(恭齋 尹斗緖)의 손녀였다. 윤선도의 증손자인 윤두서는 한국 회화사에 유명한 자화상을

남긴 화가로 유명하다.

 

다산의 아버지 정재원(1730-1792)에게는 세부인 사이에 모두 5남 5녀의 10남매가 있었다.

큰아들 약현(若鉉)은 24세로 요절한 의령 南씨(1729-1752)의 소생이며, 둘째 부인 해남 윤씨

(1728-1770)에게서는 약전, 약종, 약용과 이승훈에게 시집간 누이 등이 있었다.

윤씨가 세상을 뜬 다음해 김화현의 처녀 황씨를 첩으로 삼았으나 요절해버리자 1773년 다산이

12살되던 해에 서울에서 20세의 김씨(1754-1813)를 데려왔다. 어린 다산을 친자식처럼 돌봐준 그가

서모 김씨다. 이 분이 다산이 장가들 때까지 손수 부스럼이나 종기를 치료해주고 친어머니처럼 살뜰하
게 보살펴 준 서모 김씨로 형제 중에서 다산과 특별히 정이 돈독하였다.

김씨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낸 김의택(金宜澤)의 딸로서 슬하에 삼녀 일남(약황)을

두었는데, 큰딸은 채제공의 서자인 채홍근(蔡弘謹)에게, 다음은 나주목사를 지낸 이인섭의 서자

이중식(李重植)에게 시집갔다.

 

다산은 1776년 2월 22일 풍산 홍씨(豊山 洪씨 1761-1838)와 결혼하였다. 장인은 후일 무과승지

홍화보(洪和輔)이다. 홍씨 부인과 다산 사이에는 6남 3녀의 9남매가 있었으나 대부분이 요절하고

2남 1녀만이 살아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