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의 세계] 예언자 이사야 - 임마누엘’의 예언자 이사야
송재준(마르코), 신부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1. 이사야 예언서
모두 66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사야 예언서에는 각기 다른 시기에 상이한 예언자에 의해 선포되었던 말씀들이 담겨져 있다. 먼저 1-39장은 본래의 이사야 예언서(제1 이사야 예언서)로서 왕조시대인 기원전 740년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남유다 왕국에서 활동했던 예언자 이사야의 선포와 행적을 수록하고 있다. 그러나 “위로하여라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이라고 시작되는 40-55장 부분은 유배시대(기원전 587-538년) 중반 고된 유배생활을 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위로와 구원의 메시지를 선포했던 신원을 알 수 없는 한 예언자의 말씀을 전하고 있는데, 학자들은 이 부분이 이사야 예언서 두루마리에 함께 수록되어 있는 관계로 제2 이사야 예언서라 부른다. 마지막 단락인 56-66장은 유배에서 해방되어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직후 공동체의 재건을 위해 노력했던 예언자의 선포를 기록하고 있는데, 이를 구분하여 제3 이사야 예언서라 부른다. 여기서는 1-39장이 전하는 본래의 이사야 예언자를 먼저 만나 보기로 한다.
2. 이사야 예언자
히브리어로 ‘야훼께서는 구원하신다.(구원이시다)’라는 의미를 지닌 이사야는 기원전 760년경 예루살렘의 명문집안에서 출생하였다. 그 후 우찌야 임금이 죽던 해인 기원전 740/739년 20대의 젊은 나이에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그는 요담(740-735년), 아하즈(735-716년), 히즈키야(716-687년) 임금 시대에 예언자로서 활동을 하였는데, 아시리아의 임금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위협하던 기원전 701년까지 약 40년 동안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였다.
그는 ① 하느님 백성인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근본적인 삶의 규범인 시나이 계약(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 ② 하느님께서 다윗 왕조를 세우시어 당신 백성을 정의로 다스리도록 하셨다는 다윗 계약을 신학적 바탕으로 하여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을 고발하고, 하느님께 대한 전적인 믿음을 촉구하였으며, 나아가 메시아의 오심을 선포함으로써 하느님의 구원의지를 밝히고 있다.
3. 시대적 상황
이사야가 예언자로서 활동했던 당시는 이스라엘이 내우외환(內憂外患)에 시달리던 격동기였다. 먼저 내부적으로 공동체는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위협하던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 일부 권력가들의 횡포, 극심한 부의 편중, 이기적 향락주의로 말미암아 본래 이웃(특히 가난한 이들)을 사랑하고 정의를 구현해야 할 공동체 내부에는 부정과 불의, 억압과 착취가 만연하였다. 또한 종교적으로도 혼합주의가 다시 번창하기 시작하였는데, 특히 아하즈 임금의 경우 아시리아의 신들을 인정하고 공적으로 예배를 드리기도 하였다.(2열왕 16,10-18)
외부적으로는 당시 고대근동 지방을 장악하려던 아시리아의 침략으로 인해 기원전 722년 북왕국 이스라엘이 멸망하게 되었으며, 남왕국 유다 역시 강대국들의 세력경쟁 틈바구니에서 불안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이스라엘은 하느님께 의지하고, 그분의 말씀에 충실한 삶을 살지 아니하고, 현실적인 이익과 쾌락을 추구하며 강대국에 의지하는 정치적 기회주의에 기울어지고 만다. 이러한 행위들은 결국 하느님이 자신의 주님이심을 거부하고, 그분의 권능을 부정했던 당시 이스라엘의 잘못된 삶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하겠다.
4. 이사야 예언서의 전체 구조
대부분의 다른 예언서들처럼 이사야 예언서도 ①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 예고, ② 이방 민족들에 대한 불행 선포, ③ 이스라엘에 대한 구원 약속이란 주제들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데, 선포된 말씀을 내용에 따라 구분해보면 다음과 같다.
1장 예언서 전체의 도입부분으로 선포 내용을 요약하여 제시
2-13장 주로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한 신탁말씀으로 가장 오래된 부분
13-23장 이방 민족들에 대한 신탁들
24-27장 대부분 묵시록의 성격을 띤 글들의 모음
28-33장 이스라엘과 유다에 대한 심판과 약속의 다양한 신탁들
34-35장 묵시록적 단편들
36-39장 산헤립의 예루살렘 공격 당시 이사야의 활동에 관한 이야기
5. 예언자의 주요 선포 내용
1) 이사야의 소명
이사야가 하느님으로부터 예언자로 불리움을 받은 소명이야기(이사 6장)는 이사야 예언서의 세계로 들어가는 관문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예언자 자신의 체험에서 유래하는 하느님에 대한 사상(神觀)과 예언자로서의 자의식(自意識), 그가 선포하게 될 하느님 말씀의 핵심적 내용 그리고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황이 집약되어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사야가 환시(幻視)를 통해 목격한 하느님은 천상 어좌에 앉아 계시며 세상에 당신의 통치권을 행사하시는 임금으로서, 그분의 현존이 지상 성전의 영역에 제한되지 않으시는 초월적인 분이시다.(1절) 그리고 그분을 모시는 천상적 존재인 스랍들의 외침을 통해 하느님은 지극히 거룩하신 분이며, 만군의 주님이심이 계시된다. :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만군의 주님! 온 땅에 그분의 영광이 가득하다.”(3절)
이처럼 위대하신 하느님 앞에서 이사야는 자신이 보잘 것 없는 존재이며, 입술이 더러운 죄인임을 깨닫게 된다.(5절)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이러한 인간에게 다가오시어 그를 정화하여 죄를 용서해주시고, 당신의 말씀을 전할 사자로 준비시키신다.(6-7절) 이제 당신을 대신하여 파견될 이를 찾으시는 하느님의 말씀에 이사야는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십시오.”(8절)라고 응답한다. 이러한 이사야의 적극적이며 능동적인 태도는 그가 하느님의 소명을 하느님께서 죄인인 인간에게 부여하시는 무상의 은혜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이어 하느님께서는 이사야를 파견하시기에 앞서 당시 이스라엘의 상황을 역설적인 방식으로 제시하신다.(9-10절) 여기서 “이 백성”은 자신의 것, 자신의 이익에만 집착하는 ‘마음이 완고한’ 이스라엘을 가리키며, 이처럼 반항적이고 알아들으려 하지 않는 청중들에게 이사야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하느님의 심판 선고(11절ㄴ-13절ㄹ)와 구원 약속(13절ㅁ)을 선포하는 마지막 부분은 이사야의 사명을 설명하면서, 예언서 전체의 내용을 요약하고 있다.
2) 이스라엘의 잘못된 삶에 대한 고발
당시 이스라엘과 하느님의 관계는 포도밭의 노래(5,1-7)에서 단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여기서 포도밭은 이스라엘을 상징한다. 농부가 정성을 다해 포도밭을 가꾸듯이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에집트의 노예상태에서 구해내시고, 40년 광야여정을 인도하시며, 시나이 계약을 통해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마침내 가나안에 정착하여 왕국을 이루어 살기까지 온갖 사랑과 정성을 다 기울이셨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좋은 포도가 아니라 ‘들포도’를 맺고 만다. 즉 하느님께서는 공정과 정의를 바라셨는데, 이스라엘에는 온갖 불의와 억압에 의한 피흘림과 울부짖음이 가득하다.(5,7) 구체적으로 지도자들은 도둑의 친구들로서 뇌물과 선물만을 좋아하고(1,23), 법을 집행하는 이들은 가난한 이들의 권리를 박탈하며(10,1-2), 가진 자들은 자신의 재산 증식과 향락에 빠져 “주님의 업적에는 관심을 기울이지도 않고, 주님의 손이 이루신 일에는 눈을 돌리지도 않는다.”(5,12)
그리고 과거의 소돔과 고모라 백성들처럼 종교적으로 타락한 이스라엘이 거행하는 형식적이며 습관적인 모든 경신례는 더 이상 하느님의 즐거움이 아니라 오히려 견딜 수 없는 역겨움이 되고 말았으며, 마침내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기도까지도 거부하시게 되었다. : “너희가 팔을 벌려 기도할지라도 나는 너희 앞에서 내 눈을 가려 버리리라.”(1,15)
또한 이사야는 급변하는 국제정세 가운데 아시리아(아하즈 임금)나 에집트(히즈키야 임금)의 힘에 의존하려는 이스라엘의 정치적 기회주의를 경고한다. 즉 “인간일 뿐 하느님이 아닌”(31,3) 강대국에 의지하는 이러한 행위 이면에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을 신뢰하지 않고, 구원의 원천이신 분을 저버리는(30,15) 이스라엘의 커다란 죄악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30,1) 이에 이사야는 이스라엘이 그토록 믿었던 아시리아(10장)와 에집트(19-20장)가 하느님의 심판으로 결국 수치를 당하게 될 것임을 선포하면서 하느님께 대한 전적인 믿음을 촉구하고 있다. : “너희가 믿지 않으면 정녕 서 있지 못하리라.”(7,9)
3) 하느님의 심판 선포와 회개의 촉구
이사야는 이처럼 “입으로는 나에게 다가오고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떨어져 있는”(29,13) 이스라엘이 자신의 죄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심판을 초래하게 되었음을 엄중하게 선포한다.(5,3-6) 이와 함께 예언자는 이스라엘이 진정 회개하여 참된 하느님의 백성으로 새롭게 태어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즉 이스라엘은 무엇보다도 먼저 거룩하신 하느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자녀다운 자세로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임으로써(1,10; 28,12)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회복하여야 하며, 나아가 구체적인 삶 안에서 공정과 정의를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1,16-17)
4) 하느님의 구원의지와 메시아 예언
하느님의 심판은 단지 과거 잘못에 대한 응분의 처벌만이 아니라 구원의 미래를 위한 도구이기도 하다.(28,23-29) 나아가 이사야는 하느님의 결정적인 구원의지를 세 차례에 걸친 메시아 예언을 통해 선포하고 있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낳을 아들의 이름 임마누엘이 상징하듯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실 것이며(7,10-17), 오실 그분의 어깨에는 다윗의 왕권이 놓이고 그 왕국은 공정과 정의로 다스려질 것이며 끝없는 평화가 이루어질 것이다.(9,1-6) 그리고 이새의 그루터기에서 햇순이 돋아나고 그 위에 지혜와 슬기의 영, 경륜과 용맹의 영, 지식의 영과 주님을 경외함이 머무르게 될 것이다.(11,1-9)
지금까지 만났던 이사야 예언자는 오늘날 모든 신앙인들에게도 하느님의 자녀로서 가져야 할 근본자세를 일깨워주고 있다. 먼저 우리의 신앙생활이 형식적이며 습관적인 것이 아니라, 진정 하느님 체험을 바탕으로 한 인격적인 관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세상적인 것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의지하거나 자신의 교만함에 빠지지 않고, 우리 생명의 원천이시며 지극히 거룩하신 하느님만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나아가 예언자가 선포했던 임마누엘 예언은 말씀이 사람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강생의 신비를, 부활하신 주님께서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와 함께 계시며 돌보아주시는 놀라운 하느님 사랑의 신비를 깨닫게 해주고 있다.
[월간 빛, 2002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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