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화(惡貨)와 위조지폐가 다른 점
1950년대 중반, 지금은 서울시내 한 복판이 되었지만 그 때까지만 해도 동대문 밖 변두리에 위치한 제가 살던 집 바로 옆 공터에는 누렇게 빛 바랜 군용천막으로 지어진 가설극장이 있었습니다.
그 곳에서는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총천연색 시네마스코프 서부활극과 화면상태가 좋지않아 항상 비가 내리는 흑백 우리나라 필름들이 상영되었고 가끔가다가 전국을 떠도는 유랑극단이 와서 공연을 펼칠 때도 있었습니다.
TV도 없던 그 시절, 별로 볼거리가 없었던 때인지라 가설극장은 항상 관객으로 북적대었고 공전의 히트를 한 영화라던지 어쩌다가 꿈에 그리던 유명배우들이 속한 유랑극단이 와서 공연을 할때는 넘치는 관객들로 가설극장 천막은 터져나갈 지경이 되었습니다.
당시 국민학생(초등학생)이었던 저는 바로 우리집 옆 가설극장 천막 안에서 울려 나오는 말발굽 소리와 총소리, 관객들의 박수소리에 가슴 설레며 부모님을 졸라 타낸 코묻은 돈을 내고 여러번 들어가 진한 감동을 느끼고 집으로 돌아오면 오랫동안 영화속의 장면들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관객들이 많아 장사가 잘되니 당연히 입장권을 판 돈이 많이 들어와 영화 상영이나 연극공연이 끝나면 사장이하 극장 직원들은 그날 들어온 돈을 극장 사무실에 모여 13촉(13W) 백열전등 밑에서 눈을 부벼가며 간추리고 세는 일이 신나면서도 신경쓰이는 큰 일이었습니다.
특히나 히트친 영화나 모처럼 유랑극단이 와서 공연을 하는 날에는 관객이 넘쳐 말 그대로 가마니에 갈퀴로 돈을 긁어 모은다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돈이 들어왔습니다. 그런 날이면 전 직원이 신바람이 나서 한 사람이 돈을 자루에서 큰 탁자위에 풀어놓으면 여러명이 달라붙어 색갈 별(돈 종류 별)로 분류하여 100장씩 노끈으로 묶었습니다.
요즈음은 세상이 좋아져 찢어진 돈이나 오염되고 훼손된 돈을 눈을 씻고 일부러 찾아보려고 해도 잘 안보이지만 그 당시에는 반 토막이 나서 가운데를 종이로 붙인 돈은 기본이고 한쪽 귀퉁이가 날아간 돈, 잉크로 오염된 돈, 옷에 넣고 빨았다가 다시 말려서 다린 돈, 하도 여러 사람들의 손을 거쳐 누더기가 다 된 돈, 돈이 무슨 메모지라도 되는양 마구 낙서한 돈, 어린아이들의 코묻은 돈...벼라별 돈이 다 있었습니다.
그래도 극장 직원들은 그려려니하고 짜증 한 번 내지않고 구겨진 돈은 바로펴고 찢어진 돈은 정성껏 붙이고 하여 100장씩 간추려 세어 가끔가다가 발견되는 새 돈을 양쪽에다가 놓고서 노끈으로 질끈 묶고 차곡차곡 금고에 쌓아 놓았다가 다음날 아침 일찍 잽싸게 자전거에 싣고 문안(동대문안 시내)에 있는 은행으로 운반하여 저금을 했습니다. 어떤날( 관객이 많아 돈이 많이 들어온 날)은 은행 직원들이 출장을 와서 갖고 가기도 했답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구두쇠 부자가 은행도 못 믿어 자기 집 다락방에 만원권 지폐를 수 억정도 감추어 놓았다가 어느날 갑자기 화재가 발생하여 돈이 타버렸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문제가 생겼을 때 타다 남은 증거가 있으면 한국은행에서 새 돈으로 바꾸어 준다."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듯 한데, 타다 남아서 일부라도 형체가 있는 돈을 바꾸어 주는 것인지 재가 된 돈도 바꾸어 주는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하여튼 반쯤 타다 남은 돈은 새돈과 교환해 주는 것이 맞는 말 같습니다.
또 "아르헨티나 등 남미 각국에서 인플레이션이 극심하여 생필품 한 가지 사려해도 많은 부피의 돈 보따리를 갖고 가야 한다."라는 보도를 접했듯이 이 세상 돈 중에는 심한 인플레이션에 의해 가치가 떨어진 돈도 있습니다.
"악화는 양화를 구축한다."라는 16세기 영국의 재무관 T.그레셤이 제창한 화폐유통에 관한 법칙(그레샴의 법칙)이 있습니다. 이 말은 한 사회 내에서 귀금속으로서의 가치가 서로 다른 화폐(예를 들어 금화와 은화 따위)가 동일한 화폐가치로서 유통되는 경우, 귀금속 가치가 작은 화폐[惡貨:은화]는 가치가 큰 화폐[良貨:금화]를 유통으로부터 배제시킨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처럼 주화(鑄貨)가 아닌 신용화폐(지폐 등)가 중심을 이루는 시대에 있어서는 이 법칙은 역사적 사실의 뜻밖에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만 금화만을 양화라고 볼때 은화가 금화를 구축했듯이 동전이 은화를 몰아냈고 근세에들어 경제규모가 점점 커지자 신용화폐(지폐)가 그자리를 차지하고 동전은 보조역할을 하는데 그치게된 것입니다. 따라서 신용화폐(지폐등 유가증권)가 마지막으로 남은 악화가 아닌가 저는 생각했습니다.
앞에서 살펴 보았듯이 이 세상 돈에는 금화, 은화, 동전, 지폐등이 있고 우리가 제일 많이 사용하고 있는 지폐 중에는 구겨진 돈, 찢어진 돈, 잉크로 오염된 돈, 타다 남은 돈, 메모지로 사용된 돈, 세탁기를 거친 돈, 코 묻은 돈, 장농이나 금고속에서 쉬는 돈, 인플레이션으로 인하여 가치가 떨어진 돈...등이 있습니다.
이상의 모든 돈들은 번쩍 번쩍 빛나는 금화이건 인플레에 찌들어 평가절하되고 누더기가 다된 지폐이건 어느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고 사용하는 사람이 나쁜자가 있을지 모르나 지폐 자체로는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돈과 거의 흡사하면서 돈이 아닌 것이 있으니 위조지폐가 바로 그것입니다. 위조지폐를 제조하고 사용하는 일은 국가경제를 교란시키는 짓이요 법을 크게 어기는 범죄행위로서 중벌을 받아 마땅한 일입니다.
* * * *
위조지폐에 관하여 두산 세계대백과사전을 통하여 알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위조지폐란 위조 또는 변조된 지폐·은행권이다. 위조는 진짜 지폐를 모방하여 진짜와 같게 가짜 지폐를 제조하는 것으로 사진·인쇄, 또는 손으로 그리는 방법 등이 있다. 인쇄위조에는 사진제판(寫眞製版)과 조각제판(彫刻製版)의 2가지가 있는데, 보통 대량의 위조지폐를 제조할 경우에는 사진제판인 경우가 많다. 변조란 진짜 지폐를 가공하여 그 가치를 변경하는 것으로 진권(眞券)을 표면과 이면(裏面)으로 분리하여 변조하는 방식 등이 있다.
외국에서는 나치스 독일의 정보선전장관 H.히믈러가 세계경제의 혼란을 노려서 미국의 달러, 영국의 파운드를 위조하여 주로 영국의 식민지에 사용한 안드레아스계획이 있다. 오늘날 대다수 위조지폐의 2/3 가량은 미국의 달러이며, 그 외에 독일의 마르크, 영국의 파운드, 프랑스의 프랑 등 주로 유통도(流通度)가 높은 지폐일수록 위조가 많다. 이러한 위조지폐는 주로 국제적 위조단에 의한 것이 많으며, 그 조직은 자금제공·기술·행사 등 각 그룹으로 나뉘어 있어 수사를 어렵게 하고 있다. 근래에는 통화 외에 주권(株券), 여행자수표의 위조도 늘고 있다.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위조지폐사건은 광복 직후인 1946년 공산당의 조선정판사(朝鮮精版社) 사건으로, 이는 남조선노동당이 당시 한국은행권의 지폐 원판을 도용하여 대량으로 위조지폐를 발행, 경제를 혼란에 빠뜨리려던 계획이었다. 한국의 형법에서는 행사할 목적으로 통용하는 대한민국의 화폐, 지폐 또는 은행권을 위조 또는 변조한 자는 무기 또는 2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고 명시하고 있다(207조 1항).]
악화(惡貨; 지폐 등)와 위조지폐가 다른 점은 아무리 헐고 평가절하된
소액권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발권은행에서 정당히 발행된 지폐라면
그것은 모두가 아껴 써야할 우리들의 소중한 돈이요,
아무리 빠닥빠닥한 새 종이에 잉크 냄새 풍기는 100$짜리 고액권이라도
그것이 범죄집단에서 제조한 위조지폐라 하면 그것은 결코 돈이 아니고
반드시 근절되야할 백해무익(百害無益)한 휴지조각에 지나지 않습니다.
* * * *
위조지폐 만드는 사람들의 몇가지 유형
첫번째 유형, 한 사람이 여러 사람이 만드든 것 처럼 보이려고 몇 대의 인쇄기계
를 사용하여 위조지폐를 남발하다가 관계기관에 들통이 나서 퇴출
된 유형.
두번째 유형, 누가 뭐라고 해도 대꾸도 않고 "지폐완성"표 위조지폐를 시리즈로
계속 반복하여 찍어내는 후안무치형. 이 사람도 나중에 퇴출되었슴.
세번째 유형, 한동안은 조잡한 형태의 인쇄기술로 찍어 동네방네 뿌리다가
언제부터인가 누가 대신 찍어주는지 그 기술이 한층 세련되어진 형.
네번째 유형, 가장 많은 유형으로, 사람들이 위조지폐 제조행위자라고 지적하면
곧 죽어도 아니라고 박박 우기다가 제 풀에 지쳐 슬그머니 사라지는
유형.
- 끝 -
이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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