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는 “이 세대가 왜 이렇게도 악할까!”하고 탄식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눅 11:29).
예수님은 화를 내실 때 그 대상이 사람은 물론 어느 구체적인 장소도 포함됩니다. 그리고 누가복음에서는 한 세대를 언급하시며 전반적인 사회와 종교적인 환경을 힐책하십니다. 잘 알아듣지 못하는 세대에 대한 안타까움이 탄식으로 표현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표현에는 연민의 정이 가득한 절제되고 간결함이 있고 그리스도의 인간에 대한 사랑이 배여 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과 같이 그렇게 화를 낼 수가 있습니다. 절제되고 사랑이 스며 있는 화는 아주 건강한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자신의 화를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화가 자신을 통제 할 때는 낭패를 보고 맙니다. 사랑이 스며있지 않은 꾸지람과 분노는 관계와 상황을 더 나쁘게 합니다. 우리 인간의 구성요소 가운데 하나로서 화는 그 자체로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성경 구절을 잘 음미 할 때, 우리는 화가 필연적으로 죄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화는 때때로 옳습니다.
만약 우리가 잘못된 행위에 대해서 통제된 표현 방법으로 화를 낸다면 화는 올바른 것입니다. 우리가 옳은 것에 대해서 화를 내거나, 자제력을 잃거나 화가 우리를 통제할 때, 또는 만약 우리가 우리의 뜻 데로 되지 않는다고 화를 낸다면, 그것을 올바른 것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3장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께 반대하고 당신을 고발하려고 증거를 찾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들과 마주 치셨습니다. 그들의 완고한 마음 때문에 그들은 안식일에 병자를 고쳐주어서는 안 된다는 식으로 법을 해석했습니다. 예수님은 노골적으로 이러한 태도에 대해 힐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쳐주시기로 작정하시면서 화가 나셨고 그들을 향해 화를 퍼부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려운 상황에 대처하시면서 자연스럽게 화를 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화를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곧, 당신께서 하시고자 하는 선한 행위를 방해하는 것들에 대처하는 도구로서 사용하신 것입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들의 잘못된 행위에 대항해서 화를 내셨기에 예수님께서 내신 화는 올바릅니다. 마태복음은 말합니다. “예수님은 노기 띤 얼굴로 그들을 돌아보시고”(마 3:5). 깊이 생각하신 후에 화를 내시면서, 주님은 그들을 꾸짖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화를 통제하며 내셨습니다. 화가 그분을 통제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마음을 굳게 먹고 다시는 종의 멍에를 매지 마십시오(갈 5:1).. <옮겨온 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