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들의 영광

[스크랩] 원주교구 > 용소막 성당

뚜르(Tours) 2010. 10. 25. 23:20

  한국의 성지

 

원주교구 >  용소막 성당 

 

간략설명 100주년 맞은 원주 지방의 세 번째 성당
지리좌표 북위 37°12′31″ 동경 128°05′24″
주      소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 용암리 719-2 
전화번호 (033)763-2343
팩스번호 (033)763-2344
홈페이지
전자메일
             

 

 

소재지는 강원도 원성군 신림면 용암리(江原道 原城郡 神林面 龍岩里) 719의 2. 본당 주보는 루르드의 성모. 용소막 본당은 강원도에서는 풍수원(豊水院), 원주에 이어 세 번째로 1904년에 설정된 교회이다. 이 교회의 개척자는 제천(堤川) 사람 최도철(崔道澈, 바르나바)이었다. 그는 1848년에 태어나 18세 때 병인(丙寅) 박해를 겪고, 1893년 풍수원 본당의 르메르(L. Le Merre, 李類斯) 신부로부터 전교회장에 임명되어 각처를 다니며 전교하다가 1898년 용소막에 정착, 5∼6명 교우들과 작은 경당을 짓고 원주본당 소속 공소를 개설하였다.

 

1904년 4월 용소막 공소는 원주 본당에서 분리, 초대 주임 프와요(Vedastus Poyaud, 表光東) 신부가 부임, 용소막 본당으로 발족하였다. 당시 관할지역은 원주 · 평창 · 영월 · 제천 · 단양 등 5개 군에 공소는 17개로, 본당을 중심으로 사방 300리의 광활한 지역이었으며, 신자 수는 864명이었다. 그러나 10여간 초가 성당을 짓고 선교를 시작한 프와요 신부가 최도철, 선병로(宣秉魯, 베드로) 회장 등의 도움에 힘입어 수년 후에는 교세가 1,000명을 넘었고, 1910년 프와요 신부가 서울로 전임 될 때는 교세 2,000명의 큰 본당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하였다.

 

1910년 4월 2대 주임으로 부임한 기요(J. Guillot, 吉) 신부는 새 양옥 성당 건립을 계획, 신축공사를 시작하려던 차에 1914년 7월 1차 세계대전 반발로 8월에 본국 프랑스 군대에 소집되어 귀국, 애석하게도 1916년 5월에 전사하고 말았다. 기요 신부의 성당 신축계획을 실천에 옮긴 선교사는 3대 시잘레(P. Chizallet, 池士元) 주임신부였다. 그는 1914년 가을에 묘재 공소 이사연 회장의 알선으로 중국인 기술자들을 고용, 1915년 가을에 건평 100평의 벽돌 양옥성당을 준공하였다.

 

시잘레 신부는 1927년 5월 서울의 백동(栢洞, 현 혜화동) 본당 창설신부로 전임, 안성(安城) 본당에 있던 뤼카(F. Lucas, 陸嘉恩) 신부가 4대 주임으로 있은 뒤, 1928년에는 이철연(李喆淵, 프란치스코) 신부가 5대 주임으로 사목, 1940년 7월 제천 공소를 본당으로 분리 승격시켰다. 같은 해 12월 춘천교구 설정으로 용소막 본당은 서울 교구에서 춘천 교구로 이관, 골롬반 외방선교회 선교사들의 관할 하에 들어갔다.

 

6.25동란 때는 성당이 공산군의 식량창고가 되어 많은 파손을 보았다. 수복 후에 이종흥(李鍾興, 크리산도) 신부가 11대 주임으로 부임, 성당과 사제관을 원상복구하고 강당을 신축하였다. 1954년 대구(大邱) 교구로 이적한 이 신부의 후임으로 최동오(崔東五, 아타나시오) 신부가 부임하여 성당 증축사업을 계속하면서 성가대를 도시수준으로 육성 발전시켰다. 그 후부터 골룸반 외방선교회 신부들이 주임으로 계속 부임했으며, 1965년에 이 본당은 춘천 교구와 청주(淸州) 교구에서 분할 신설된 원주 교구 소속이 되었다. 그 동안 관할지역 분할과 주민들의 도시진출 현상으로 교세가 크게 축소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83년 5월에 골롬반 외방선교회 소속의 신부들이 원주교구에서 철수함에 따라 이후부터는 한국인 사제들이 본당의 주임을 맡게 되었다. 28대 주임으로 부임한 김태원 신부는 성당 수리와 수녀원을 건립하였고, 또한 1987년 학산 공소 옆에 있는 남상교(南尙敎) 유택의 지붕을 기와로 교체하고 뒷산에 14처를 조성하여 축복식을 거행하였는데, 남상교는 성인 남종삼(南鍾三)의 부친으로 관직에서 물러나 신앙생활에 전념하기 위해 꽃당이(현 제천시 백운면 화당리)에서 이곳으로 이사와 살았던 인물이다.

 

아울러 1988년 11월에는 용소막 출신 사제로 성모 영보 수녀회를 설립하고 성서 번역에 큰 자취를 남기고 1976년에 선종한 선종완(宣鍾完, 라우렌시오) 신부의 삶과 공적을 기리는 유물관을 성모 영보 수녀회의 도움을 받아 설치하였고, 피정 센터인 두루의 집과 지하 기도실을 새로 준공하여 축복식을 가졌으며, 1989년 5월에 낡고 협소한 학산 공소의 강당을 헐고 새로 지은 뒤 축복식을 거행하였다. [출처 : 한국가톨릭대사전]

[사진출처 : 오영환, 한국의 성지 - http://www.paxkorea.co.kr, 2005]

 

 

 

 

 

 

 

 

 

 


 

출처 : 잔디밭( seasonless = 사계절 푸른 잔디)
글쓴이 : 풍차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