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춘선은 떠나갔지만 닭갈비는 남아 있다
지난해 12월 20일 추억 속으로 마지막 여행을 떠난 경춘선. 38년 동안 철도인으로 살아온 김유정역의 마지막 역장, 신영수 씨가 20년 된 단골집을 소개한다.
71년 동안의 여행을 마무리한 경춘선
낭만과 청춘을 싣고 달리는 기차가 ‘있었다’. 느리지만 운치 있었던 경춘선은 서울과 춘천을 50분 만에 주파하는 복선전철이 개통되면서 이제 과거형으로 표현해야 할 옛일이 됐다. 경춘선은 1939년 7월 사설철도로 개통된 이후 71년 만인 지난해 12월 20일, 마지막 인사를 고했다. 이와 함께 한국인들의 젊은 날 추억도 경춘선 무궁화호 열차의 마지막 기적 소리에 담겼다.
연인이 생기면 함께 떠날 여행지로, 대학생이 되어 꿈에 그리던 MT 장소로 늘 사람들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던 경춘선 간이역의 풍경. 지금처럼 여행지와 교통수단이 다양하지 않았을 시절, 경춘선을 타고 서울에서 두어 시간 남짓이면 도착하는 춘천 일대는 당일치기 여행지로 인기가 높았다. 강줄기를 따라 달리는 철도 자체의 운치는 물론, 산과 강을 끼고 있는 주변 경치에 황홀경을 느끼고 나면 김유정문학촌에서 잠시 토속적인 문학의 향기에 잠기곤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춘천의 명물, 닭갈비의 맛이 존재한다. 거대한 원형 닭갈비 불판 위에 온갖 채소는 기본, 빨갛게 잘 익은 양념장, 그리고 주인공인 닭이 살코기 부위만 통째로 담긴다. 춘천 어딜 가나 쉽게 목격할 수 있는 닭갈비음식점.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맛집은 많지 않다.
‘김유정역의 마지막 역장’이라는 칭호가 새로이 붙게 된 신영수 역장(58). 신 역장은 김유정역과 인연이 깊다. 1974년 8월, 역무원을 시작한 이래 38년째 철도인으로 살아오고 있는 그는 1989년, 2007년 두 번을 김유정역과 함께했고 현장에서 폐선을 지켜봤다. 현재 폐쇄된 김유정역은 신 역장이 근무 당시 직접 만든 바람개비만이 오가는 사람들을 맞고 있다. 신역사가 지어지면서 1939년 일제시대 때 지어진 김유정역은 역사의 한 단면으로 보존될 계획이다.
옛 김유정역에서 현재 경전철이 다니는 신 역사 방향으로 걷다 보면 가정집을 개조한 빨간색 간판의 대용닭갈비집이 있다. 역 근처 몇 안 되는 음식점 중 가장 오랜 세월을 견디어 온 곳이다.
많은 인연이 스쳐 지나가는 곳이 바로 역이다.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졌을 신영수 역장. 현재 남춘천 역장으로 근무지를 옮긴 그는 김유정역이 그리울 때마다, 지인들에게 대접할 때마다, 여행객들이 맛집을 물을 때마다 으레 이곳을 찾는다. “운이 좋았어요. 김유정역을 두 번이나 지킬 수 있었던 것도, 20년이 넘도록 대용닭갈비를 방문할 수 있다는 것도요.”
닭갈비에 세월이라는 진한 양념을
기차가 도착하면 곧장 새로운 사람들로 채워지는 풍경이지만 그들이 변치 않고 방문하는 곳은 대용닭갈비 단 한 곳이다. “20년 전 맛도, 공간도, 사람도 모두 그대로예요. 단지 달라진 것이 있다면 지나온 시간만큼 세월을 향유하고 있다는 것이겠죠.”(신영수 역장)
테이블이 채 10개도 되지 않는 이곳은 10년, 20년 된 단골들만 찾아도 자리가 부족해 먼 길 왔다가 못 먹고 가는 경우가 다반사. 대학생 시절 즐겨 찾던 손님이 결혼해 자신의 아이와 함께 들르기도 하고, 할아버지, 아빠, 아들 삼대가 모두 애용하는 등 시간과 맛이 함께 묻혀 있는 곳이다.
돈 버는 것에 집착했다면 20년이 넘도록 한 곳에서, 그 모습 그대로 닭갈비만 팔 수는 없었을 거라고 말하는 대용닭갈비 박남순 사장. 그녀는 음식이란 ‘판매’가 아닌, ‘대접’이라고 생각한다. 음식이 먼저고, 대접하는 마음이 그 다음, 그리고 마지막에 오는 것이 돈이라는 생각. 때문에 겨울을 제외하고는 예나 지금이나 인근 텃밭에서 손수 기른 채소들로만 요리하고, 곱디고운 고춧가루도 직접 농사지은 것을 사용한다.
닭 역시 옛날 방식 그대로 살코기 부위를 통째로 넣어 익히면서 잘라 먹도록 하고 있다.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가위질하는 것도 하나의 고된 노동으로 느껴지지만, 그래도 맛은 변함없어야 하니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그녀. 값진 노동이 있어야 ‘맛있게 잡숫고 가는 손님’이 생겨나니 그저 그거면 된단다.
“오늘은 향긋한 냉이를 넣어봤는데 어때요? 향이 양념에 배어서 코까지 즐거워지지 않나요?” 시골 간이역은 추억 속으로 사라졌지만, 재료에서 뿜어져 나오는 시골 식당의 손맛은 여전히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속도가 제일인 세상에서 여전히 그대로인 맛을 고집해 고마운 곳. 느려서 좋았던 기찻길 옆 식당이 위로처럼 다가온다.
- 주소 | 춘천시 신동면 증1리 92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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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뉴 | 닭갈비 1인분 9,000원 |
- 영업시간 | 오전 8시~오후 9시(휴무일은 딱히 정해져 있지 않고 사장님 집안에 경조사가 있다면 그날이 바로 휴무일이다) |
- 문의 | 033-261-9034 |
삼성화재 웹진 2월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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