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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4일, 오늘의 묵상(사순 제2주간 목요일)

뚜르(Tours) 2011. 3. 24. 01:38
 

 

    오늘의 묵상(사순 제2주간 목요일) 제1독서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사람에게 의지하는 자와, 스러질 몸을 제 힘인 양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으 리라. 그의 마음이 주님에게서 떠나 있다. 그는 사막의 덤불과 같아, 좋은 일이 찾아드는 것도 보지 못하리라. 그는 광야의 메마른 곳에서, 인적 없는 소금 땅에서 살리라." 그러나 주님을 신뢰하고, 그의 신뢰를 주님께 두는 이는 복되다. 그는 물가에 심긴 나무와 같아, 제 뿌리를 시냇가에 뻗어, 무더위가 닥쳐와도 두려움 없이 그 잎이 푸르고, 가문 해에도 걱정 없이 줄곧 열매를 맺는다. 사람의 마음은 만물보다 더 교활하여 치유될 가망이 없으니, 누가 그 마음을 알리오? 내가 바로 마음을 살피고 속을 떠보는 주님이다. 나는 사람마다 제 길에 따라, 제 행실의 결과에 따라 갚는다.(예레 17,5-10) 복음 그때에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즐 겁고 호화롭게 살았다. 그의 집 대문 앞에는 라자로라는 가난한 이가 종기 투 성이 몸으로 누워있었다. 그는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 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개들까지 와서 그의 종기를 핥곤 하였다. 그러다 그 가난한 이가 죽자 천사들이 그를 아브라함 곁으로 데려갔다. 부자 도 죽어 묻혔다. 부자가 저승에서 고통을 받으며 눈을 드니,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곁에 있는 라자로가 보였다. 그래서 그가 소리를 질러 말하였다. '아브 라함 할아버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라자로를 보내시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제 혀를 식히게 해 주십시오. 제가 이 불길 속에서 고초를 겪고 있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말하였다. '얘야, 너는 살아 있는 동안에 좋은 것들을 받았 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하여라.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 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이 가로놓여 있어, 여기에서 너희 쪽으로 건너가려 해도 갈 수 없고 거기에서 우리 쪽으로 건너오려 해도 올 수 없다.' 부자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할아버지, 제발 라자로를 제 아버지 집으로 보내 주십시오. 저에게 다섯 형제가 있는데, 라자로가 그들에게 경고하여 그들만은 이 고통스러운 곳에 오지 않게 해 주십시오.' 아브라함이, '그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하고 대답하자, 부자가 다시 '안 됩니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죽은 이들 가운데 에서 누가 가야 그들이 회개할 것입니다.' 하였다. 그에게 아브라함이 이렇게 일렀다.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루카 16,19-31) 부자와 거지 라자로 사이에 건너갈 수 없는 구렁을 누가 만들어 놓았는지요? 저 구렁텅이만 없다면 부자도 죽어서 아브라함 품 안에 달려갈 수 있었을 텐데, 결코 건너갈 수 없는 구렁은 왜 생긴 것인지요? 아마도 거지 라자 로가 그렇게 만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복음에서 볼 수 있듯, 살아 있는 동안 부자는 좋은 옷을 입고 호화롭게 살았습 니다. 자신의 집 대문 앞 거지는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대문 앞에서 음식 부스 러기라도 먹고 살려는 거지와 그 자신은 이미 존재 자체부터 다르다고 생각합 니다. 부자의 눈에 라자로는 사람으로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부자와 라 자로 사이에는 이렇게 깊고 넓은 구렁이 생겼습니다. 살아서 부자가 스스로 파 놓은 이 구렁텅이가 죽어서는 아브라함 품에 안긴 라 자로에게 건너갈 수가 없는 구렁이 되었던 것입니다. 가난한 이와 철저하게 단 절하며 살았던 부자가 죽어서는 철저하게 고립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지요. '굶주리고 헐벗은 이엑 해 준 것이 곧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36 참조)라고. 우리가 가난한 이를 외면하고 산다면, 알고 보 면 예수님과 관계를 맺지 않고 사는 것이 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도 우리가 건너갈 수 없는 구렁이 생기게 되는 것이지요. 가난한 이들은 사실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오히려 가난한 이들에게 문을 닫고 있는 사람들은 별로 아쉬울 것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거지 '라자로'는 '하느님께서 도우신다.'는 뜻을 가진 구원의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 안에 갇혀 있는 부자는 아무런 이름이 없습니다.. 하느님도 그를 부를 수 있는 이름이 없으니 얼마나 슬픈 일인지요? (매일미사에서 전재) ◑ 어느 신부님의 눈물 일흔 살이 넘은 노(老)신부님이 생일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백발이 성성하고 주름살이 깊게 파인 신부님은 오랜 세월을 오직 믿음으로 살 아 왔기에 그 마음이 청정하고 맑았습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의 빛이었습니다. 가난하고 불우한 사람들에게는 힘과 용기가 되어주었고, 슬프고 아픈 사람들에게는 친구와 가족이 되어 함께 슬픔을 나누며 살았습니다. 신부님의 생일날 많은 신자들이 생일잔치를 마련하였습니다. 조그만 마을이라 마을 사람들 모두가 모인 성대한 잔치가 되었습니다. 그때 생일 축하를 하던 노인 한 분이, “오늘 이 기쁜 날 우리 신부님께 자손이라도 있었다면 오죽이나 좋았겠습니까? 왠지 쓸쓸하게 보입니다.” 하고 동정하였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뒤쪽 자리에서 소년 하나가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습니다. “아닙니다. 신부님은 외롭지 않습니다. 여기 손자가 있습니다.” 그러자 앞자리에 앉았던 젊은 사람이 일어서서 말했습니다. “여기 신부님의 아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일어서며 소리쳤습니다. “저는 신부님의 딸입니다.” “저는 신부님의 아들입니다.” 이런 모습을 바라보던 신부님은 그만 눈물을 주르르 흘리셨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가난한 자입니다 일용할 양식방」中에서 - ----------------------------------------------------------------- 이 마을 사람들이 부럽습니다. 좋은 신부님과 함께 살았으니까요. '울지마, 톤즈!'의 이태석 신부님과 같은 훌륭한 사제를 영적지도자로 모실 수 있다는 것은 하나의 은총일 것입니다. 좋은 영적지도자를 만난다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일인가 생각해 봅니다. 2011.03.24. Martinus  
    The Prayer - 셀린디온 & 안드레아 보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