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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3일, 오늘의 묵상(사순 제2주간 수요일)

뚜르(Tours) 2011. 3. 23. 00:40
 

 

    오늘의 묵상(사순 제2주간 수요일) 제1독서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주민들이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자, 예레미아를 없앨 음모를 꾸미자. 그자가 없어도 언제든지 사제에게서 가르침을, 현인에게서 조언을, 예언자에게서 말씀을 얻을 수 있다. 어서 혀로 그를 치고, 그가 하는 말은 무엇이든 무시해 버리자." 주님, 제 말씀을 귀담아들어 주시고, 제 원수들의 말을 들어 보소서. 선을 악으로 갚아도 됩니까? 그런데 그들은 제 목숨을 노리며 구덩이를 파 놓았 습니다. 제가 당신 앞에 서서 그들을 위해 복을 빌어 주고, 당신의 분노를 그들에게서 돌리려 했던 일을 기억하소서.(예레18,18-20) 복음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실 때, 열두 제자를 따로 데리고 길을 가시면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보다시피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다. 거기에서 사람의 아들은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넘겨질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사람의 아들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그를 다른 민족 사람들에게 넘겨 조롱하고 채찍질하고 나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은 사흗날에 되살아날 것이다." 그때에 제베대오의 두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과 함께 예수님께 다가와 엎드려 절하고 무엇인가 청하였다.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무엇을 원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 부인이 "스승님 의 나라에서 저의 이 두 아들이, 하나는 스승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너희가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도 못한다. 내가 마시려는 잔 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할 수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내 잔을 마실 것이다. 그러나 내 오른쪽과 왼쪽에 앉는 것은 내가 허락 할 일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정하신 이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다른 열 제자가 이 말을 듣고 그 두 형제를 불쾌하게 여겼다. 예수님께서는 그들 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너희도 알다시피 다른 민족들의 통치자들은 백성 위 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 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 다. 또하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마태 20,17-28) 예나 지금이나, 자식을 위한 어머니 마음은 다 똑같은가 봅니다. 예수님께도 두 아들의 어머니가 다가가, 이른바 '치맛바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이 도대체 어떤 것인지, 또 장차 닥칠 고난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두 아들을 바쳤으니 나라를 세우면 아들들에 게 한자리 좀 달라는 것입니다. 부모의 처지에서 보면, 자식은 자신의 생명과 같아서 누구나 깊은 애착을 가지 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자식에 대한 애착이 지나치면 오히려 자녀에 게 해를 입힐 수 있습니다. 자녀는 하느님께서 부모의 몸을 빌려 이 땅에 보내신 '하느님의 자녀들'입니다. 아이들을 부모라는 이름으로 위탁한 것이지, 자녀가 부모의 '소유물'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아이들이 부모의 소유물이 되면 그 아이 들 인생도 왜곡되고 맙니다. 우리 어른들이 하는 말 가운데 "사람은 제 먹을 복은 타고 난다."는 말이 있습니 다. 이 말은 하느님께서 인간 생명을 이 땅에 보내실 때는 뜻이 있고 보살핌이 있다는 것입니다. 내 배에서 나왔지만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 자식입니다. 그렇다면 오히려 하느님께 자녀들을 맡기는 연습을 하는 것이 현명합니다. 바로 눈앞에 보이는 자녀들의 모습에 집착하지 말고, 인생 전체를 두고 자녀들을 바라보아야 합니 다. 부모가 자녀를 주님께 믿고 맡길수록, 자녀에게 주어지는 하느님의 은총도 커집니다.(매일미사에서 전재) “나의 어머니” (베르톨트 브레히트 作) 어머니가 죽자, 사람들은 어머니를 땅속에 묻어버렸다. 꽃이 자라고, 나비가 그 위로 날아간다. 어머니의 몸이 가벼워 땅은 거의 눌리지도 않았다. 이렇게 가벼워질 때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을까! ------------------------------------------------------------------- 몇 해 전 일입니다. 성령세미나 그룹원과 면담을 했습니다. 이 형제님은 의사 선생님이었고, 그 부인도 의사라고 했습니다. 이 부부는 큰딸을 두었는데, 전교에서 1,2등을 다투는 수재였습니다. 부부는 큰딸이 서울대학교 법대에 입학해서 법관으로 살아가길 원했습니다. 고3인 큰 딸도 부모의 소원을 익히 알고 있었고, 서울대학교 법대 입학이 자기가 살아가야 할 삶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큰딸은 수능시험을 앞두고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짧은 삶을 마쳤습니다. 서울대학교 법대 입학에 대한 중압감에 시달려 우울증을 앓았다고 합니다. "저희들이 딸아이를 죽인 겁니다."라고 그 형제는 울먹였습니다. 딸아이의 행복한 삶을 바랬던 부모들의 기도는 잘못된 기도였습니다. 자녀의 의지와 상관 없이 부모의 욕심을 자녀에게 강요한 기도는 하느님께서 기뻐하실리 없는 기도였습니다. 이런 체험을 한 저도, 자녀를 위한 기도 중에 어느새 제 욕심의 기도를 하고 있음에 깜짝 놀라곤 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너희가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도 못한다." 2011.03.23. Martinus  
    The Prayer - 셀린디온 & 안드레아 보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