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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사순 제2주간 토요일) 제1독서 주님,과수원 한가운데 숲 속에 홀로 살아가는 당신 백성을, 당신 소유의 양떼를 당신의 지팡이로 보살펴 주십시오. 옛날처럼 바산과 길앗에서 그들을 보살펴 주십시오. 당신께서 이집트 땅에서 나오실 때처럼, 저희에게 놀라운 일들을 보 여 주십시오. 당신의 소유인 남은 자들, 그들의 허물을 용서해 주시고 죄를 못 본 체해 주시는, 당신 같으신 하느님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분은 분노를 영원히 품지 않으시고, 오히려 기꺼이 자애를 베푸시는 분이시다. 그분께서는 다시 우리를 가없이 여기 시고, 우리의 허물들을 모른 체해 주시리라. 당신께서 저희의 모든 죄악을 바다 깊은 곳으로 던져 주십시오. 먼 옛날, 당신께 서 저희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야곱을 성실히 대하시고, 아브라함에게 자애 를 베풀어 주십시오.(미카 7,14-15,18-20) 복음 그때에 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모여들고 있었 다. 그러자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 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었다. 그런데 작은아들이, '아버지, 재산 가운데에 서 저에게 돌아올 몫을 주십시오.' 하고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들들에게 가산을 나누어 주었다. 며칠 뒤에 작은아들은 자기 것을 모두 챙 겨서 먼 고장으로 떠났다. 그러고는 그곳에서 방종한 생활을 하며 자기 재산을 허비하였다. 모든 것을 탕진하였을 즈음 그 고장에 심한 기근이 들어, 그가 곤궁에 허덕이 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그 고장 주민을 찾아가서 매달렸다. 그 주민은 그를 자기 소유의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다. 그는 돼지들이 먹는 열매 꼬투리로라 도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아무도 주지 않았다. 그제야 제정신이 든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내 아버지의 그 많은 품팔이꾼들은 먹을 것이 남아도는데, 나는 여기에서 굶어 죽는구나.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렇게 말씀드려야지.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저를 아버지의 품팔이꾼 가운데 하나로 삼아 주십시오.'' 그리하여 그는 일어나 아버지에게로 갔다. 그가 아직도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 아버지가 그를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달려가 아들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일렀다. '어서 가장 좋은 옷을 가져다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발을 신겨 주어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아라. 먹고 즐기자. 나의 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도로 찾았다.' 그리하여 그들은 즐거운 잔치를 벌이기 시작하였다. 그때에 큰아들은 들에 나가 있었다. 그가 집에 가까이 이르러, 노래하며 춤추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하인 하나를 불러 무슨 일이냐고 묻자, 하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아우님이 오셨습니다. 아우님이 몸성히 돌아오셨다고 하여, 아버님 이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습니다. 큰아들은 화가 나서 들어가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가 나와 그를 타이르자, 그가 아버지에게 대답하였다. '보심시오, 저는 여러 해 동안 종처럼 아버지를 섬기며 아버지의 명을 한 번도 어기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저에게 아버지는 친구들과 즐기라고 염소 한 마리 주신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창녀들과 어울려 아버지의 가산을 들어먹은 저 아들이 오니까, 살진 송아지를 잡아 주시는군요.' 그러자 아버지가 그에게 일렀다. '애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너의 저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그러니 즐기고 기뻐해야한다.(루카 15,1-3, 11ㄴ-32) 누구나 한 번쯤은 일탈을 꿈꾸며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있습니다.평범하게 일상을 성실히 살아가는 사람도 한 번쯤은 늪으로 빠져드는 방황의 때를 만날 수 있습니다. 잔잔한 바다에 먹구름이 일고 폭풍우가 몰아치 듯, 유혹에 젖어 들 때가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탕자로 비유되는 작은아들도 알고 보면 이런 모습의 한 면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역설적이게도, 인간 욕망의 회오리바람은 때로는 악의 정체를 폭로하고 정화시 키는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치 거친 폭풍우와 파도가 대자연의 자정 운동 이듯이, 인간의 이런 욕망은 우리 인생을 눈뜨게 하고 성장시키는 하나의 과정 일 수 있습니다. 사실 작은아들의 방탕한 생활은 재산을 탕진하고 가족에게 정 신적 상처를 주었지만, 이를 통해 그 무질서한 욕망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고, 무엇보다도 아버지의 짙은 사랑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 인생에서 방황과 어둠의 순간이 있고 없고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 니다. 큰아들처럼 그저 충실하게 살아왔다면, 그것 또한 하느님의 선물이지만, 생의 어두운 순간을 통하여 더 깊이 하느님의 사랑을 만날 수 있었다면, 그것 은 더할 나위 없는 하느님의 은총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충실하게 살아온 큰아들보다, 아버지의 품에 안겨 참회의 눈물 을 흘리는 작은아들이 더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폭풍우 뒤의 청명한 하늘처럼 넘치는 아버지의 사랑이 그를 깨끗하게 씻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사순시기는 참회를 통하여 이런 하느님의 사랑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매일미사에서 전재) 워크샾을 마친 후 귀경하고 곧바로 월례교육과 철야기도회에 참석했더니 조금 피곤했었나 봅니다. 늦게 일어나 오늘의 묵상을 올릴 시간이 없었습니다. 하루가 지난 지금에야 토요일 묵상을 올립니다. 어제(3월 26일)는 제 귀가 빠진 날이었습니다. 저의 가족 모두가 모여 즐거운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저의 가족 모두는 아홉 명입니다. 손녀들의 재롱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하루 내내 나를 낳아주신 엄마가 그리웠습니다. 그래서 묵주 기도 중에 하루 속히 엄마를 뵙고 싶어 기도했습니다. 아직도 나는 어린애입니다. 2011.03.26. Martinus The Prayer - 셀린디온 & 안드레아 보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