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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사순 제3주간 화요일) 제1독서 그 무렵 아자르야는 불 한가운데에 우뚝 서서 입을 열어 이렇게 기도하였다. "당신의 이름을 생각하시어 저희를 끝까지 저버리지 마시고, 당신의 계약을 폐 기하지 마소서. 당신의 벗 아브라함, 당신의 종 이사악, 당신의 거룩한 사람 이 스라엘을 보시어, 저희에게서 당신의 자비를 거두지 마소서. 당신께서는 그들 의 자손들을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 습니다. 주님, 저희는 모든 민족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민족이 되었습니다. 저희의 죄 때문에 저희는 오늘 온 세상에서 가장 보잘것 없는 백성이 되고 말 았습니다. 지금 저희에게는 제후도 예언자도 지도자도 없고, 번제물도 희생 제 물도 예물도 분향도 없으며, 당신께 제물을 바쳐 자비를 얻을 곳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저희의 부서진 영혼과 겸손해진 정신을 보시어, 저희를 숫양과 황소 의 번제물로, 수만 마리의 살진 양으로 받아 주소서. 이것이 오늘 저희가 당신 께 바치는 희생 제물이 되어, 당신을 온전히 따를 수 있게 하소서. 정녕 당신 을 신뢰하는 이들은 수치를 당하지 않습니다. 이제 저희는 마음을 다하여 당신을 따르렵니다. 당신을 경외하고, 당신의 얼굴 을 찾으렵니다. 저희가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해 주소서. 당신의 호의에 따라. 당 신의 크신 자비에 따라 저희를 대해 주소서. 당신의 놀라운 업적에 따라 저희를 구하시어, 주님, 당신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소서."(다니 3,25,34-43) 복음 그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다가와,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 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 일 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그러므로 하늘 나라는 자기 종들과 셈을 하려는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 임금이 셈을 하기 시작하자 만 탈렌트를 빚진 사람 하나가 끌려왔다. 그런데 그가 빚을 갚을 길이 없으므로, 주인은 그 종게게 자신 과 아내와 자식과 그 밖에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갚으라고 명령하였다. 그러자 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제발 참아 주십시오. 제가 다 갚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 종의 주인이 가엾은 마음이 들어, 그를 놓아주고 부채도 탕감해 주 었다. 그런데 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을 빚진 동료 하나를 만났다. 그러자 그를 붙들어 멱살을 잡고, '빚진 것을 갚아라.' 하고 말하였다. 그의 동료 는 엎드려서, '제발 참아 주게, 내가 갚겠네.' 하고 청하였다. 그러나 그는 들어주 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가서, 그 동료가 빚진 것을 다 갚을 때까지 감옥에 가두었다. 동료들이 그 렇게 벌어진 일을 보고 너무 안타까운 나머지,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죄다 일렀 다. 그러자 주인이 그 종을 불러들여 말하였다. '이 악한 종아, 네가 청하기에 나 는 너에게 빚을 다 탕감해 주었다.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넏 네 동료에 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 그러고 나서 화가 난 주인은 그를 고문 형리 에게 넘겨 빚진 것을 다 갚게 하였다. 너희가 저마다 자기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의 내 아버지께 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마태 18,21-35) 베드로도 참 속이 많이 상했던 모양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면서 제자들과 공동체 를 이루고 산다는 것이 그에게 만만치가 않은 것 같습니다. 며칠 전 우리가 들은 복음에서, 어머니까지 가세하여 제자들과 서로 자리다툼을 하던 것처럼(마태 20, 20-24 참조),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서로 주고받는 상처가 매우 많았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참고 있던 베드로가 결국, 오늘 복음에서 보듯 "주님 제 형제가 저에 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하고 예수님께 여쭈었던 것입 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이렇게 용서하기가 어려운데, 우리가 서로 용서하며 산 다는 것은 사실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남을 어떻게 수없이 용서하며 살 수 있는지요? 오늘 예수님의 비유 말씀을 이해하면 도움이 됩니다. 우리가 형제를 용서하지 못하는 것은 주인에게 일만 탈렌트 빚진 사람이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를 용서하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 다. 예수님 시대 화폐 단위에서 데나리온은 노동자가 하루 받는 품삯에 해당합니 다. 또한 한 탈렌트는 육천 데나리온, 곧 육천 일의 노동의 가치를 가진다고 합니 다. 그러므로 일만 탈렌트 빚이라는 것은 한 사람이 무엇으로도 다 갚을 수 없는 무한한 빚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이렇게 하느님께 무한한 빚을 지고 살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우리가 용서해야 할 대상을 바라보면 용서가 잘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헤아릴 수 없는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바라보면 용서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용서 못한다는 것은 하느님을 모르는 것과 같습니다. 그 뿌리는 하느님에 대한 교만입니다.(매일미사에서 전재) 2011.03.29. Martinus The Prayer - 셀린디온 & 안드레아 보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