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 편의 詩

아버지

뚜르(Tours) 2011. 4. 2. 15:20

아버지

1980년 3월 초순,
강원도 정동진 근처 모 부대 종합사격훈련장.
계절은 춘삼월이었건만 이른 새벽부터 함박눈이
펑펑 내렸다.

그 눈을 맞으며 사격훈련을 마치고
진흙 범벅이 된 채
숙영지로 돌아왔을 때 중대장의 호출이 왔다.
아버지가 오셨단다.

내 아버지는 군에서 불구가 되신 분이다.
6.25 사변 막바지에 화천에서 지뢰 파편에 맞아
한쪽 다리를 내어 놓으셨던,
매우 도전적인 성품을 지니신 분이다.

힘겹게 면회 허락이 떨어졌다.
반합 뚜껑으로 새 전투복을 다림질하고
앞 개울가에서 대충 몸을 닦고
그렇게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야영지 간이 위병소로 달려갔다.

하늘 가릴 곳 없는 그 곳 벌판에서 내 아버지는
낡은 목발에 의지하여 하얗게 퍼붓는 눈을 맞으며
성치 않은 몸을 세우고 계셨다.
순간 눈물이 앞을 가렸다.
아.버.지...

소대장의 주선으로 바닷가 구멍가게에
딸린 뒷방 한 칸을 얻어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다.
그 밤 아버지는 나를 처음으로
성인으로 인정해 주시는 것 같았다.

"지금 이 고생이 앞으로의 네 인생에 있어
꼭 필요한 과정임을 알고 힘들더라도
열심히 군복무를 해야 한다" 며
이불을 덮어 주시던 아버지.
그것이 아버지와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시골집 아궁이의 불씨 같은 아버지의 사랑.
지천명을 바라보는 이 나이가 되어서야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은 내 곁에 안 계시지만
아직도 아버지의 모습을 기억하며
내 아이의 아버지로서 오늘도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 솔낭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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