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西古今

고령화와 인구감소

뚜르(Tours) 2011. 4. 26. 08:49

남미 대륙에서 서쪽을 향해 뱃길로 3.200km를 달리면 전설적인 이스터 섬이 나온다. 
면적이 제주도의 10분의 1밖에 되지 않는 이스터 섬은 해안선을 따라 서 있는 모아이라는 900여 개의 거대한 석상들로 유명한 곳이다. 
높이가 20m나 되고 무게가 거이 100톤에 이르는 이 석상들은 한때 이 섬에 화려하게 꽃피어 있던 문명을 상징하지만, 내게는 이 세상에서 가장 을씨년스러운 풍경으로 보일 뿐이다. 
이스터 원주민들이 이 석상들을 만들던 시절에 이 섬은 수관부의 높이가 25m에 달하는 열대림으로 뒤덮여 있었지만, 1722년 부활절 날 네덜란드의 탐험가 로게빈(Jacob Roggeveen)이 이섬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나무 한 그루 찾아볼 수 없는 황량한 들판으로 변해 있었기 때문이다. 
문명을 일으킨 장본인은 문명의 대가로 환경을 파괴한 채 사라졌고, 지금은 문명의 흔적만 남아 무언의 증언을 하고 있다.


 풍부한 천연자원 덕으로 한때에는 1만 명에 달하던 이스터 섬의 인구는, 로게빈이 이 섬을 발견했을 당시에는 이미 2,000명으로 감소해 있었다. 
굶주림이 극에 달해 심지어는 사람들끼리 서로 잡아먹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이다. 
석상을 만들어 운반하고 세우는 데에는 나무들이 이용되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부족들간에 석상 세우기 경쟁이 가열되면서 숲이 사라졌고 결국 문명도 무너지고 말았다. 
과도한 자원 남용과 그에 따른 환경파괴가 인구 감소를 초래한 것이다.


 인구 감소는 인류의 역사에서 국지적으로 빈번하게 벌어진 현상일 것이다. 
일찍이 전쟁이나 질병이 아니라 고령화에 의한 인구 감소의 예가 있었는지 확실하지 않다. 
유럽의 경우만 보더라도 흑사병이 창궐했던 1348년 이래, 인구 구조가 이처럼 대규모로 변화한 적은 없었다. 
지금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저출산 고령화 현상은, 생명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벌어지는 매우 기이한 일이다. 
결과는 너무도 심각할 수 있지만, 생물학자에게는 매우 흥미로운 연구 주제가 아닐 수 없다. 
생물학적 문제는 당연히 생물학적으로 풀어야 한다.


 그 동안 나는 우리 사회가 여러 복잡한 문제에 봉착할 때마다, 늘 자연으로 눈을 돌렸다. 
기껏해야 20만 년 남짓 이곳에서 살아온 호모 사피엔스가, 130억 년 동안이나 존재해온 우주와 46억 년 동안 태양의 주위를 돌아온 지구의 역사에서 지혜를 얻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일찍이 생명이 탄생한 이래, 스스로 번식을 자제 또는 거부하는 생물은 없었다. 
그리고 번식을 멈추고 난 다음 번식기만큼, 아니 어쩌면 번식기보다 더 오래 생명을 유지하는 동물도 일찍이 없었다. 
고령화 문제만큼은 자연에서 특별히 베낄 게 없어 보인다. 
호모 사피엔스가 생명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겪는 일인만큼 철저하게 혼자 힘으로 풀어야 한다. 
해결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문제를 일으킨 장본인도 바로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충분히 이성적으로 풀 수 있는 문제이다. 
문제의 본질을 명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인구의 감소가 이렇게 광범위하게 벌어지는 현상은 극히 최근의 일이라지만, 사실 인구의 고령화는 상당한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일어난 현상이다. 
2004년 미국 미시건 대학의 레이첼 캐스퍼리교수와 캘리포니아 대학의 이상희 교수가 미국립과학원 회보(PNAS)에 게재한 논문에 따르면, 인간사회의 고령화는 적어도 3만 년 전부터 뚜렷하게 나타나기 시작한 현상이다. 
이들은 4종의 근대 인류 화석들의 치아 마모의 정도를 분석하여 다른 영장류들에 비해 인류는 확실하게 수명이 연장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들이 분석한 4종의 인류 모두에서 이 같은 인구 고령화 현상은 고루 발견되었지만, 특별히 현생 인류의 직계 조상인 크로마뇽인은 함께 살던 네안데르타인에 비해 무려 다섯 배의 고령자 비율 증가를 보였다. 
그와 함께 전체 인구의 규모도 급격히 상승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문제는 인구의 고령화가 인구의 감소와 맞물려 있다는 것이다.


 지금 세계는 테러와 전쟁의 위기로부터 가난, 질병, 환경, 윤리, 그리고 세계화의 위기에 이르기까지 실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위기들을 경험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 모든 위기들 중 고령화의 위기처럼 무서운 것은 또 없다고 생각한다. 
다른 많은 사회적 위기들에 비해 고령화의 위기는 은근하기 때문에 더 무서울 수 있다. 
예를 들어, 테러나 질병, 환경 오염 등의 위기는 어느 날 갑자기 자기 존재를 확실하게 알려오기 때문에 오히려 대응하기 쉬울 수 있다. 
그러나 고령화는 그 변화 양상이 너무나 점진적이라, 준비를 해야 한다는 인식은 하면서도 과연 무엇부터 준비해야 할지 사뭇 막막할 수 있다. 
피터 드러커도 “정보혁명은 지난 100년 이상 진행되어온 추세가 절정을 이룬 것인 데 반해, 젊은 인구의 감소는 인구 변화 추세에 있어 완전한 역전이자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것”이라고 설명한다.


     최재천 교수 지음 <당신의 인생을 이모작하라>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