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 살면 애국자가 된다는 말, 새삼 실감한다. 미국 어디를 가나 TV만 틀면 한국 자동차와 전자제품 광고가 쏟아져 나온다. 한식 맛을 보고 “원더풀”을 외치는 현지인을 보는 건 이제 식상할 정도다. 신경숙이란 한국 작가의 번역서가 뉴욕 타임스에 대서특필된 것도 달라진 대한민국의 위상을 엿보게 한다. 일제의 수탈과 6·25 전쟁 폐허 속에서 일궈낸 기적이기에 ‘코리아’를 보는 시선은 더 경이롭다. 애국심에 눈뜬 ‘P세대’가 등장할 만하다.
한데 영광스러운 대한민국엔 어쩐지 오늘만 있고 역사는 없는 것 같다. 얼마 전 이승만과 4·19의 화해 시도가 무산된 것만 봐도 그렇다. 이승만이란 이름 앞엔 여전히 종신집권 야욕에 눈멀었던 독재자란 딱지만 붙어 있다. 그렇지만 대한민국을 세운 건국 대통령이 이승만이란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6·25 전쟁을 치르며 미국과 담판해 한·미 동맹을 이끌어 낸 것도 이승만이다. 그 덕에 대한민국은 1960~70년대 경제개발에 전력투구할 수 있었다.
반면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세운 김일성은 군비 증강에 몰두했다. 그 결과 북한은 오늘날 전 세계에 식량을 구걸하는 거지 국가가 됐다. 그렇다면 부끄러워해야 하는 건 어느 쪽인가. 물론 건국 대통령이란 공(功)만으로 이승만의 과(過)를 모두 덮을 순 없다. 상하이 임시정부를 배척하고 민주주의를 유린한 건 그의 과오다. 그러나 그동안 우린 과만 보고 공은 애써 외면하려 했던 건 아닐까.
이승만만 그런 게 아니다. 박정희도 부하의 총탄에 쓰러진 독재자다. 그렇지만 새마을운동·경부고속도로·포항제철이 없었다면 오늘날 대한민국이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우뚝 설 수 있었을까. 전두환은 광주 민주항쟁을 군홧발로 짓밟은 폭군이다. 그러나 그가 병적으로 집착한 물가 잡기 덕에 대한민국은 60~70년대 초고속 성장의 후유증을 덜 앓고 넘어간 것도 사실이다. 적성국가였던 중국·러시아와 외교의 물꼬를 튼 건 노태우 대통령이다.
김영삼 대통령이 ‘하나회’라는 군부 내 사조직을 뿌리 뽑고 금융실명제를 밀어붙이지 않았다면 문민정치의 꿈은 요원했을지 모른다. 남북 화해 시대를 연 김대중 대통령의 역사적 남북 정상회담 덕에 대한민국은 ‘빨갱이 콤플렉스’에서 벗어났다. 세계적으로 가장 흔한 후진국 병인 금권정치의 악순환을 끊어낸 건 노무현 대통령이다. 자랑스러운 조국 대한민국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다. 이 모든 역사가 버무려져 나온 거다.
대한민국의 오늘은 자랑스러워 하면서 역사는 부정하는 건 이율배반이다. 특히 건국의 역사가 없는 대한민국은 껍데기일 뿐이다. 미국 역사교과서가 유난히 건국 역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현대사의 과를 모두 덮고 공만 미화하자는 게 아니다. 공과 과를 균형 있게 보자는 거다. 그래야 진정한 역사의 화해도 가능하지 않을까. 북한 김정일 정권과도 화해하자는 마당이다. 하물며 이승만과 4·19가 화해하지 못할 까닭이 있을까.
정경민 / 중앙일보 뉴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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