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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연중 제25주간 목요일) 말씀의 초대 유배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이 성전 재건을 시작했지만, 유다 공동체의 경제적 어려움과 사마리아인들의 반대 때문에 성전 재건이 제대로 이루어 지지 않는다. 하까이 예언자는 성전 재건을 독촉하며 성전을 통하여 만군 의 주님께서 영광을 드러내실 것임을 선포한다(제1독서). 헤로데는 예수님 을 자신이 목을 베어 죽인 요한이 다시 살아났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죄 때 문에 혼란 속에 두려움을 안고 사는 권력자의 모습을 볼 수 있다(복음). 제1독서 다리우스 임금 제이년 여섯째 달 초하룻날, 주님의 말씀이 하까이 예언자를 통하여 스알티엘의 아들 즈루빠벨 유다 총독과 여호차닥의 아들 예수아 대 사제에게 내렸다. 만군의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 백성이 '주님의 집을 지을 때가 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주님의 말씀이 하까이 예언자들 통하여 내렸다. "주님의 집이 무너져 있는데 너희가 지금 판벽으로 된 집에서 살 때냐? - 만군의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 너희가 살아온 길을 돌이켜 보 아라. 씨앗을 많이 뿌려도 얼마 거두지 못하고 먹어도 배부르지 않으며 마 셔도 만족하지 못하고 입어도 따뜻하지 않으며 품팔이꾼이 품삯을 받아도 구멍 난 주머니에 넣는 꼴이다. - 만군의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 너희가 살아온 길을 돌이켜 보 아라.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집을 지어라. 그러면 나는 그 집을 기꺼이 여기고 그것으로 영광을 받으리라.-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하까 1,1-8) 복음 그 때에 헤로데 영주는 이 모든 일을 전해 듣고 몹시 당황하였다. 더러는 "요한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났다." 하고, 더러는 "엘리야가 나타 났다." 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옛 예언자 한 분이 다시 살아났다." 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헤로데는 이렇게 말하였다.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그러면서 그는 예수님을 만나 보려고 하였다. (루카 9,7-9) 오늘의 묵상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고대 벽화나 상형 문자에서는 아이들의 마음을 세모 로 그리고 어른의 마음은 동그라미로 표현했다고 합니다. 죄를 지으면 마 음이 아픈 이유는 죄를 지을 때마다 세모꼴 양심이 회전하면서 뾰족한 모 서리가 마음을 긁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한 번 두 번 범죄를 하면서 모서 리는 점점 닳아 동그랗게 변하고 맙니다. 결국 어른이 되면 잘못을 해도 별 로 아픔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헤로데도 이렇게 날카로운 양심을 가진 어린 시절 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권력과 출세를 위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 는 사이 어느덧 양심이 무뎌질 대로 무뎌져 있습니다. 이제는 의인 요한의 생명을 잔칫상의 오락거리 정도로밖에 취급하지 않는 지경에까지 이르렀 습니다. 헤로데에게는 인간으로서 가지고 있던 본래의 자신은 어둠 속에 사 라지고 두려움과 정치적 생존 본능만이 번뜩이고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죄를 짓는 것보다 더 큰 문 제는 지은 죄를 되돌아보며 뉘우치고 자신을 새롭게 하는 시간을 가지지 않 는 데 있습니다. 성찰과 정화의 시간이 없이 거듭되는 죄는 양심을 무뎌지 게 하며, 양심이 무뎌지면 마침내 바다 한가운데에서 좌표를 잃은 배처럼 우리는 제 모습을 잃고 표류하고 맙니다. 어느 날 문득 이전의 내가 아닌 낯 선 자신과 마주하게 됩니다. 자신이 누구이며, 어디에 있고, 지금 무엇을 하 고 있는지 모르게 됩니다. 이것이 헤로데의 모습입니다. 얼마나 두려운 일 입니까?(매일미사에서 전재) --------- ------ ------------------------------------------------- 오늘의 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저희가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께 순종하며, 언제나 정성스럽고 성실한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2011.09.22 Martinus
오늘의 묵상(연중 제25주간 목요일) 말씀의 초대 유배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이 성전 재건을 시작했지만, 유다 공동체의 경제적 어려움과 사마리아인들의 반대 때문에 성전 재건이 제대로 이루어 지지 않는다. 하까이 예언자는 성전 재건을 독촉하며 성전을 통하여 만군 의 주님께서 영광을 드러내실 것임을 선포한다(제1독서). 헤로데는 예수님 을 자신이 목을 베어 죽인 요한이 다시 살아났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죄 때 문에 혼란 속에 두려움을 안고 사는 권력자의 모습을 볼 수 있다(복음). 제1독서 다리우스 임금 제이년 여섯째 달 초하룻날, 주님의 말씀이 하까이 예언자를 통하여 스알티엘의 아들 즈루빠벨 유다 총독과 여호차닥의 아들 예수아 대 사제에게 내렸다. 만군의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 백성이 '주님의 집을 지을 때가 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주님의 말씀이 하까이 예언자들 통하여 내렸다. "주님의 집이 무너져 있는데 너희가 지금 판벽으로 된 집에서 살 때냐? - 만군의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 너희가 살아온 길을 돌이켜 보 아라. 씨앗을 많이 뿌려도 얼마 거두지 못하고 먹어도 배부르지 않으며 마 셔도 만족하지 못하고 입어도 따뜻하지 않으며 품팔이꾼이 품삯을 받아도 구멍 난 주머니에 넣는 꼴이다. - 만군의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 너희가 살아온 길을 돌이켜 보 아라.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집을 지어라. 그러면 나는 그 집을 기꺼이 여기고 그것으로 영광을 받으리라.-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하까 1,1-8) 복음 그 때에 헤로데 영주는 이 모든 일을 전해 듣고 몹시 당황하였다. 더러는 "요한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났다." 하고, 더러는 "엘리야가 나타 났다." 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옛 예언자 한 분이 다시 살아났다." 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헤로데는 이렇게 말하였다.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그러면서 그는 예수님을 만나 보려고 하였다. (루카 9,7-9) 오늘의 묵상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고대 벽화나 상형 문자에서는 아이들의 마음을 세모 로 그리고 어른의 마음은 동그라미로 표현했다고 합니다. 죄를 지으면 마 음이 아픈 이유는 죄를 지을 때마다 세모꼴 양심이 회전하면서 뾰족한 모 서리가 마음을 긁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한 번 두 번 범죄를 하면서 모서 리는 점점 닳아 동그랗게 변하고 맙니다. 결국 어른이 되면 잘못을 해도 별 로 아픔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헤로데도 이렇게 날카로운 양심을 가진 어린 시절 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권력과 출세를 위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 는 사이 어느덧 양심이 무뎌질 대로 무뎌져 있습니다. 이제는 의인 요한의 생명을 잔칫상의 오락거리 정도로밖에 취급하지 않는 지경에까지 이르렀 습니다. 헤로데에게는 인간으로서 가지고 있던 본래의 자신은 어둠 속에 사 라지고 두려움과 정치적 생존 본능만이 번뜩이고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죄를 짓는 것보다 더 큰 문 제는 지은 죄를 되돌아보며 뉘우치고 자신을 새롭게 하는 시간을 가지지 않 는 데 있습니다. 성찰과 정화의 시간이 없이 거듭되는 죄는 양심을 무뎌지 게 하며, 양심이 무뎌지면 마침내 바다 한가운데에서 좌표를 잃은 배처럼 우리는 제 모습을 잃고 표류하고 맙니다. 어느 날 문득 이전의 내가 아닌 낯 선 자신과 마주하게 됩니다. 자신이 누구이며, 어디에 있고, 지금 무엇을 하 고 있는지 모르게 됩니다. 이것이 헤로데의 모습입니다. 얼마나 두려운 일 입니까?(매일미사에서 전재)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