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西古今

"안녕하세요" 인사에… 환자 "안녕한 사람이 뭐하러 병원 와"

뚜르(Tours) 2011. 11. 28. 00:41

지난여름, 흰 모시옷에 흰색 중절모, 백구두를 신고 지팡이를 짚은 노인이 진료실로 들어왔다.
우리 병원에 처음 오는 분이었다.
이런 환자의 경우 대개 두 가지 패턴으로 나뉜다.
모자를 벗고 진찰실 의자에 앉으면 ’내가 의사 선생을 존중해 줄 터이니 진료를 잘 해주시오’라는 무언의 의사표시이다.
그러나 모자를 쓰고 지팡이를 짚은 채 의자에 앉으면 마음 깊은 곳에 의사에 대한 본능적 의구심을 가진 경우가 많다. 이 노인 환자는 모자를 쓴 채 앉았다.
그리고 대화는 이렇게 시작됐다.

"안녕하세요?"(나)

"안녕한 사람이 뭐하러 병원에 와?"(환자)

환자가 단 한마디로 의사를 민망하고 어색하게 만드는 바람에 나는 환자의 눈 대신 모니터만 쳐다보며 진료해야 했다. 내가 그다지 넉살 좋은 사람이 아니기에 살갑게 대하기는 이미 불가능해졌고, 대신 어색하고 사무적인 태도가 된 것이다.
이렇게 되면 환자가 의사의 능력을 다시 의심하게 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진료를 받고 나가는 환자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하마터면 "안녕히 가세요"라고 인사할 뻔했다.

 

환자 몸속에 칩을 심어 그 안에 있는 검사 자료를 바탕으로 처방을 내리는 최첨단의 진료방법이 거론되는 시대다.
그러나 진정한 진료는 환자가 진료실 안에 들어서는 순간에 시작된다고 믿는다.
환자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 포착되는 아주 미세한 변화가 치료 방향을 바꾸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의사가 환자에게 어떻게 인사하느냐에 따라 부드럽고 협조적인 진료가 되느냐, 사무적이며 겉도는 진료가 되느냐가 결정될 수도 있다.
같은 질병으로 주기적으로 병원을 방문하는 환자라면 "별일 없으셨죠?" 정도가 무난한 인사가 된다.
하지만 처음 방문한다든가 오랜만에 방문한 환자의 경우에는 좀 더 신중한 선택이 필요하다.

’안녕하세요’ 사건 이후 내가 그동안 환자에게 건넨 첫인사에 대해 생각해보니 환자들의 속마음이 이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안녕하세요?"→"안녕한데 병원에 오겠냐?"

"어떻게 오셨나요?"→"아파서 온 거 몰라? 걸어왔다 왜?"

"어디가 불편하세요?"→"넌 인사도 없이 다짜고짜 본론부터 얘기하냐?"

"별일 없으시죠?"→"만날 인사가 그거냐?"

접수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환자에게 "어서오세요"라고 인사하면 마치 환자가 병에 걸린 것이 반갑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기에 한동안 "접수해 드리겠습니다"로 바꾸라고 지시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것도 너무 딱딱하다는 의견 때문에 다시 "안녕하세요"로 바꿨다.

동료 의사들과의 자리에서도 인사말이 화제에 오른 적이 있다.
대부분 동료 의사들은 인사보다 가벼운 목례와 함께 환자가 먼저 말을 꺼내기를 기다린다고 했다.
내가 먼저 인사를 건네는 것보다는 오히려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이 역시 어색할 것 같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 보아도 "안녕하세요"보다 나은 인사를 찾기 어렵다.
안녕하지 못한 환자에게 적절한 첫 인사말이 무엇일지 여전히 고민이다.


 

                     [동네 의사 송태호의 진료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