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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성 이레네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이레네오 성인은 130년 무렵 소아시아의 스미르나(오늘날 터키의 이즈미르) 에서 태어났다. 로마에서 공부한 그는 프랑스 리옹에서 사제품을 받고, 뒤에 그곳의 주교가 되었다. 이레네오 주교는 특히 프랑스의 영지주의의 오류를 거슬러 가톨릭 신앙을 옹호하는 일에 많은 힘을 쏟았다. 2세기 교회의 중요 한 신학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활동한 그는 영지주의 이단의 오류를 적나라 하게 지적한 「이단 논박」이라는 유명한 저서를 남겼다. 성인은 202년 무렵 순교한 것으로 전해진다. 말씀의 초대 여호야킨은 자기 아버지가 하던 그대로 주님의 눈에 거스리는 악한 짓을 하 며 유다를 통치한다. 그 결과 유다는 바빌론에 멸망당하고 임금과 신하들은 바빌론으로 붙잡혀 간다(제1독서). 하느님의 뜻을 실행에 옮기는 이는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이와 같다. 말로만 주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하느님의 뜻을 실 천하지 않는 자는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이와 같다. 비바람이 몰아치면 무너지 고 만다. 신앙은 몸으로 살아야 하는 삶이다(복음). 제1독서 여호야킨은 열여덟 살에 임금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석 달 동안 다스렸다. 그 의 어머니 이름은 느후스타인데 예루살렘 출신 엘나탄의 딸이었다. 여호야킨 은 자기 아버지가 하던 그대로 주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질렀다. 그때에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의 부하들이 예루살렘으로 올라와서 도성을 포위하였다. 이렇게 그의 부하들이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있는 동안,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가 이 도성에 이르렀다. 그러자 유다 임금 여호 야킨은 자기 어머니와 신하들, 대신들과 내시들과 함께 바빌론 임금에게 항복 하였다. 그리하여 바빌론 임금은 그의 통치 제팔년에 여호야킨을 사로잡았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네부카드네자르는 주님의 집에 있는 모든 보물과 왕궁에 있는 모든 보물을 내가고, 이스라엘 임금 솔로몬이 주님의 집에 만들 어 놓은 금 기물들을 모조리 떼어 냈다. 또한 온 예루살렘 주민과 모든 대신과 모든 용사 등 포로 일만 명과 모든 장인들과 대장장이들을 끌고 갔다. 그리하 여 나라 백성 가운데 가난한 이들 말고는 아무도 남지 않았다. 네부카드네자 르는 여호야킨을 모후와 왕비들, 내시들과 나라의 고관들과 함께 바빌론으로 끌고 갔다. 그들을 끌고 예루살렘에서 바질론으로 데려간 것이다. 바빌론 임 금은 또 훌륭한 사람 칠천 명과 장인과 대장장이 천 명 등, 전투할 수 있는 건 장한 모든 사람을 바빌론으로 데려갔다. 그런 다음에 바빌론 임금은 여호야킨의 삼초인 마탄야를 그 뒤를 이어 임금 으로 세우고, 이름을 치드키야로 바꾸게 하였다.(2열왕 24,8-17) 복음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 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에게, '주님, 주님! 저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일으 키지 않았습니까?' 하고 말할 것이다. 그때에 나는 그들에게,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내게서 물러들 가 라, 불법을 일삼는 자들아!' 하고 선언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는 이는 모두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을 것이다.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 에 들이쳤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반석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지 않는 자는 모두 자기 집을 모래 위에 지 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휘 몰아치자 무너져 버렸다.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들을 마치시자 군중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 그 분께서 자기들의 율법 학자들과는 달리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마태 7,21-29) 오늘의 묵상 사람들은 자신이 아는 것이 곧 사는 것이라고 착각할 수 있습니다. 아는 것을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데서 위선이 나옵니다. 율법 학자들이 바로 그런 사 람들이었습니다. 인도의 간디는 없어져야 할 사회적 죄악 일곱 가지를 들면서 그 가운데 '인격 없는 지식'과 '희생 없는 신앙'을 꼽았습니다. 율법 학자들은 삶이 빠진 머릿속의 지식만으로 산 사람들입니다. 또한 그들은 남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고 정작 자신들은 희생 없는 종교 생활을 했습니다. 참으로 아는 것은 사는 것, 곧 행하는 것입니다. 알고 있는 대로 살 때 권위 가 생깁니다. 율법 학자들은 알고 있는 것은 많았습니다. 그러나 아는 것을 실행에 옮기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그들의 권위를 인정받지 못한 이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아셨고, 알고 계신 바를 완벽하게 사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는 참된 권위가 있었던 것입니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주님께 믿음의 뿌리를 깊이 내린 사람은 명예나 이익 때문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인정과 사랑만으로 충분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삶이 바로 우리가 반석 위에 집을 짓고 사는 길입니다.(매일미사에서 전재) ----------------------------------------------------------------- 오늘의 기도 "하느님, 복된 이레네오 주교가 진리를 가르치며 교회의 평화를 이룩하게 하셨으니, 그의 전구를 들으시고 저희도 믿음과 사람으로 새롭게 되어, 일치와 화목을 위해 온 힘을 다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2012.06.28. Martin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