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 그 뒤안길

야사(野史)와 정사(正史)

뚜르(Tours) 2012. 8. 12. 09:57

이광수는 장편 ’단종애사’에서 세조가 단종을 쫓아내고 집권한 역사를 다뤘다.
그는 사육신(死六臣)이 처형당한 날 신숙주의 아내 윤씨가 목숨을 끊었다고 썼다.
변절한 남편이 부끄럽다며 다락방에 올라가 목을 맸다고 묘사했다.
이광수는 18세기 실학자 이긍익의 연려실기술에 실린 야사(野史)를 바탕으로 삼았다.


▶실제 역사는 달랐다.
세조실록 2년 1월 23일자엔 신숙주 아내가 병으로 세상을 떴다는 기록이 나온다.
’대제학 신숙주의 처 윤씨의 상(喪)에 조효문을 보내 호상하게 하다.’
윤씨가 숨진 것은 사육신 사태가 일어나기 다섯 달 전이었다.
그때 신숙주는 세조의 사신으로 명나라에 가 있었다.
신숙주 아내를 둘러싼 야사는 정사(正史)와 전혀 다른 허구였던 셈이다.


▶단종의 누나 경혜공주를 불쌍히 여긴 야사도 있다.
세조는 공주의 남편이 단종을 다시 왕위에 올리려는 역모에 가담했다며 능지처참했다.
분이 덜 풀린 세조는 공주를 관비(官婢)로 삼아 왕실에서 쫓아냈다고 야사는 전해왔다.
그제 한국학중앙연구원은 경혜공주가 계속 공주로 살았다는 고문서를 공개했다.
공주가 죽기 사흘 전 아들에게 재산을 물려준다며 공주 인(印)까지 찍은 분재기(分財記)다.
조선시대 공주 도장이 찍힌 문서는 처음 발견됐다고 한다.




▶퇴계 이황이 마흔여덟에 단양 군수를 지내면서 열여덟 살 기생 두향과 사랑에 빠졌다는 얘기도 오래 전해온다.
사실이냐 허구냐는 논쟁이 지금도 계속된다.
그러나 퇴계의 생애를 날짜별로 조사한 정석태 부산대 연구교수는 "퇴계와 두향의 관계는 사실이 아니다"고 했다.
당시 퇴계는 을사사화에서 간신히 살아나 언제 또 의금부로 불려갈지 모를 상황이었다.
고작 아홉 달 동안 단양 군수로 일하며 백성의 굶주림을 해결하느라 바빴다.
부임 한 달 만에 둘째 아들까지 병으로 잃어 기생과 스캔들을 일으킬 처지가 아니었다는 얘기다.


▶실록이 전하는 정사가 권력의 기록이라면 야사는 민심이 반영된 설화(說話)라 할 수 있다.
신숙주의 변절을 못마땅히 여긴 민심은 그의 아내가 자살해 남편의 죗값을 대신 치렀다는 야사를 짓고서야 조금이나마 분이 풀리지 않았을까. 퇴계를 성인(聖人)으로 떠받든 민심은 그를 좀 더 가까운 인간으로 느끼려고 기생과의 러브스토리를 상상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사실이 아닌 야사를 소설이나 영상매체가 역사인 양 우기거나 착각하게 만드는 일은 따져볼 일이다.
안방에 들어가는 TV 사극이 상상력을 너무 발휘하는 건 오히려 야사의 순박한 맛을 해친다.

 

 

박해현 / 조선일보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