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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일, 오늘의 묵상(연중 제21주간 토요일)

뚜르(Tours) 2012. 8. 31. 22:59

 

    오늘의 묵상(연중 제21주간 토요일) 한국교회는 해마다 9월을 '순교자 성월'로 지내면서, 신자들이 순교자들을 기 억하며 그들의 삶을 본받도록 이끌고 있다. 순교란 신앙을 지키고자 목숨을 바치는 행위이다. 순교자들은 하느님과 하느님의 나라에 대한 철저한 믿음을 버리지 않으려고 목숨까지 내놓는 순교를 받아들였다. 이 9월은 특별히 이 땅 의 순교 성인 103위를 비롯한 수많은 순교자들의 굳센 믿음을 본받고자 다짐 하는 때이다. 한국 교회의 순교자 성월은 1925년 로마에서 거행된 '조선 순교자 79위 시 복식'이 계기가 되었다. 한국 교회는 이듬해부터 해마다 9월 26일을 '한국 치 명 복자 79위 첨례(축일)'로 지내기로 하였는데, 이날이 기해박해(1839년)와 병오박해(1846년) 때 순교한 79위 복자들 가운데 가장 많이 순교한 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1968년에는 병인박해(1866년)의 순교자 24위가 시복되었 다. 1984년 5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우리나라를 방문하여 이들 103위 복 자를 시성하였다. 한국 교회가 공식적으로 '복자 성월'을 선포하지는 않았으나 1925년의 79 위 시복 이후로 복자들을 현양하고 공경하는 신심이 확산되면서 자연스럽게 9월을 복자 성월로 지내게 되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1984년 103위의 시성에 맞추어 복자 성월을 '순교자 성월'로 바꾸고, 9월 20일을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대축일'로 정하였다. 순교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순교자들은 평소 하느님을 체 험하며 살았기에 목숨을 내놓을 수 있었다. 오늘날은 피를 흘리며 신앙을 증 언하는 순교의 시대가 아니지만, 우리는 그분들의 순교 영성을 어떻게 본받을 수 있겠는가? 자신에게 주어지는 십자가를 기꺼이 받아들이며 이겨 내고자 노력하는 자세가 그 첫걸음일 것이다. 말씀의 초대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어리석고 약한 것을 택하셨다. 어떠 한 인간도 하느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랑 을 하려면 주님을 자랑해야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탈렌트의 비유로 하느님의 나라를 설명하신다. 예수님께서는 각자가 받은 탈렌트의 양이 문 제가 아니라, 받은 탈렌트로 하느님의 나라를 위해 얼마나 충실히 일했는지 가 중요하다고 말씀하신다(복음). 제1독서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부르심을 받았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속된 기준으 로 보아 지혜로운 이가 많지 않았고 유력한 이도 많지 않았으며 가문이 좋은 사람도 많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지혜로운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어리 석은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강한 것을 부끄럽게 하시 려고 이 세상의 약한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있는 것을 무력하게 만드시려고, 이 세상의 비천한 것과 천 대 받는 것 곧 없는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어떠한 인간도 하느님 앞 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살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하느님에게서 오는 지혜가 되시고, 의로움과 거룩 함과 속량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에도 "자랑하려는 자는 주님 안에서 자 랑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1코린 1,26-31) 복음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런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여행을 떠나면서 종들을 불러 재산을 맡기었다. 그는 각자의 능력에 따라 한 사람에게는 다섯 탈렌트, 다른 사람에게는 두 탈렌트, 또 다 른 사람에게는 한 탈렌트를 주고 여행을 떠났다. 다섯 탈렌트를 받은 이는 곧 가서 그 돈을 활용하여 다섯 탈렌트를 더 벌었 다. 두 탈렌트를 받은 이도 그렇게 하여 두 탈렌트를 더 벌었다. 그러나 한 탈 렌트를 받은 이는 물러가서 땅을 파고 주인의 그 돈을 숨겼다. 오랜 뒤에 종들의 주인이 와서 그들과 셈을 하게 되었다. 다섯 탈렌트를 받은 이가 나아가서 다섯 탈렌트를 더 바치며, '주인님, 저 에게 다섯 탈렌트를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다섯 탈렌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일렀다.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 아!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 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두 탈렌트를 받은 이도 나아가서, '주인님, 저에게 두 탈렌트를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두 탈렌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주인이 그에 게 일렀다.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이 제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그런데 한 탈렌트를 받은 이는 나아가서 이렇게 말하였다. '주인님, 저는 주인님께서 모진 분이시어서,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는 데에 서 모으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두려운 나머지 물러가서 주인 님의 탈렌트를 땅에 숨겨 두었습니다. 보십시오, 주인님의 것을 도로 받으십 시오.'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내가 심지 않 은 데에서 거두고 뿌리지 않는 데에서 모으는 줄로 알고 있었다는 말이냐? 그렇다면 내 돈을 대금업자들에게 맡겼어야지. 그리 하였으면 내가 돌아왔을 때에 내 돈에 이자를 붙여 돌려받았을 것이다. 저자에게서 그 한 탈렌트를 빼앗아 열 탈렌트를 가진 이에게 주어라. 누구 든지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그리고 저 쓸모 없는 종은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려라. 거기에서 그는 울며 이를 갈 것이다."(마태 25,14-30) 오늘의 묵상 9월이 되면 릴케의 '가을날'이라는 시가 생각납니다. 주님, 때가 왔습니다./ 지난여름은 참으로 길었습니다./ 해시계 위에 당신 의 그림자를 얹으십시오./ 들에다 많은 바람을 놓으십시오.// 마지막 과일들 을 익게 하시고/ 이틀만 더 남국의 햇볕을 주시어/ 그들을 완성시켜, 마지막 단맛이/ 짙은 포도주 속에 스미게 하십시오.……. 가을은 우리에게 자연의 오묘함을 새삼 느끼게 하며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 게 합니다. 지독한 가뭄도 겪었고 더운 여름 동안 땀방울도 참 많이 흘렸습니 다. 아침저녁으로 들녘에는 선선한 바람이 불어옵니다만 아직도 낮에는 따사 로운 햇볕이 내리쬡니다. 가을의 뜨거운 햇살 아래 들녘의 과일들이 무르익 어 갑니다. 오늘 복음에는 예수님께서 탈렌트의 비유를 통해 작은 일에도 성실히 일한 종들을 칭찬해 주시는 내용이 나옵니다. 작은 일에 성실한 사람은 큰일에도 그러합니다. 세상의 어떤 일도 갑자기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천 길 높은 둑은 개미나 땅강아지의 구멍으로 말미암아 무너지고, 백 척 높이의 으리으리한 집 도 아궁이 틈에서 나온 조그마한 불씨 때문에 타 버린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큰일이라도 자세히 살펴보면 작고 사소한 것 때문에 일어난다는 이야기입니 다. 우리 각자의 자리에서 매일매일 일어나는 작은 일에 성실할 때 우리의 신 앙도 점점 성숙해질 것입니다. 이 가을은 우리 신앙의 성숙을 위해 이렇게 또 다시 우리 곁에 찾아왔습니다.(매일미사에서 전재) ----------------------------------------------------------------- 오늘의 기도 "주 하느님, 저희에게 끊임없이 자비를 보이시니, 주님을 창조주와 인도자로 모시는 저희를 도와주시어, 주님께서 만드신 저희를 새롭게 하시고 지켜 주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2012. 9. 01. Martinus

     


    ♬무궁무진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