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빈병법’의 저자인 손빈의 예를 보자.
그는 동기생 방연의 모함으로 두 다리의 경골을 잘리는 빈형(賓刑)을 받았다.
방연이 위나라 군 책임자가 되기 위해 손빈을 모함했기 때문이다.
제나라로 탈출한 손빈은 그곳의 군사(軍師)가 돼 방연과 마릉전투를 벌인다.
이 전투에서 손빈은 거짓으로 후퇴하면서 밥 짓는 아궁이 수를 매일 크게 줄여
방연으로 하여금 도망병 수가 급증한다고 믿게 했다.
이에 속은 방연은 경무장 기병만으로 손빈군을 맹추격했다.
손빈은 해질 무렵 방연이 마릉에 도착할 것을 예상하고 군사를 매복시켰다가
방연이 협곡에 도착하자 집중 공격을 퍼부었다.
참패한 방연은 자살했다.
여기서 보듯 상대보다 역량이 약하면 허(虛), 강하면 실(實)이다.
손빈처럼 싸울 시점과 장소를 미리 알면 실이요, 방연처럼 모르면 허이다.
손빈의 군대가 신참병으로 구성됐더라도 매복을 하고, 방연의 군대는 아무리 정예병이라도 매복을 당한다면
신참병은 ’실’이고, 정예부대는 ’허’가 된다.
아무리 많은 군사, 무기, 전투 경험도 허실 전략 앞에서는 헛것이 될 수 있다.
60전 전승을 한 전설의 검객인 미야모토 무사시가 일본 최고 사무라이인 사사키 고지로와 결투할 때이다.
이 둘의 실력은 막상막하였다.
무사시는 이 결투에서 해를 등지고 서서 고지로를 햇빛에 눈부시게 만들었다.
또 일부러 결투시간에 늦어 그를 지치고 짜증 나게해 고지로의 역량을 허로 만들었다.
허실 전략을 안 무사시는 살았고, 모른 고지로는 죽었다.
손빈의 큰 승리든 무사시의 작은 승리든 승자는 적을 끌고 다니지 끌려 다니면 안 된다(致人而不致於人).
즉, 주도권을 잡아야 승자가 된다.
그래야 적을 혼란시켜 허를 드러내게 하고, 실을 허로 만들 수도 있다.
승자는 적의 허를 치지만, 패자는 적의 실을 친다.
전략전문가인 마크 맥닐리는 제1차 세계대전 때 참전국 군대 대부분이 적의 허가 아니라 실을 찾아 공격했기 때문에
막대한 인명피해를 보았다고 했다.
기업 경쟁에서도 마찬가지다.
한때 대형 컴퓨터의 최강자 IBM은 PC에는 약했다.
IBM의 실은 대형컴퓨터, 허는 PC였다.
애플은 IBM의 허를 공격하여 승자가 되고, 제록스는 실을 공략해 손해를 보았다.
송병락 /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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