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西古今

들꽃의 쓰임새

뚜르(Tours) 2013. 1. 22. 07:04

작고하신 선우휘(鮮于輝 : 1922~1986)님이 조선일보 주필로 재직했을 때 있었던 일이다.
그는 평북 정주 출신으로 자신의 대표적인 소설 <불꽃>에서
두가지 이데올로기 사이에 끼어 방황하는 인간형을 그리는 등 역사의식이 투철했던 작가이자 언론인이었다.
그는 3공화국 시절의 박정희 정권에 비교적 호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으니,
최선이라고 할 수야 없지만 저렇게 호전적인 집단이 북쪽에 버티고 있는 이상, 어쩔 수 없는 차선의 선택이 아니겠느냐며
박정희 정권의 통치방법을 옹호하던 사람이었다.
그의 분명하고 선이 굵은 성격과 논조, 그리고 사회적, 문화적 영향력 등을 감안해서
박정희 대통령은 그에게 정부에 들어와 문화공보부 장관 같은 직위를 맡아 같이 일해 보자고 제안했다.

선우휘님은 이렇게 대답했다.


"들에 피어있는 풀꽃이 아름다워 보여도 그것은 들에 있을 때 입니다.
그 풀꽃을 뽑아다 잘 정돈된 정원에 심었을 때도 그 꽃이 그렇게 아름다워 보이겠습니까?
야생의 꽃은 그 나름대로의 쓰임새가 있는 법, 저는 어디까지나 밖에서 돕겠습니다."

요즘은 몸단장에 향수까지 뿌려 냄새 풍기느라 바쁜 사람들만 설치는 세상이니,
제자리에서 제 향기 하나로 묵묵히 일하는 들꽃같은 사람, 그런 일꾼이 아쉽기만 하다.


이동명 지음 <멋진 사람 107인 이야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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