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계획에 익숙하다.
계획은 자신의 행보를 확정하고 불안한 미래에 대응하는 수단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계획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계획 자체가 미래를 고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계획은 때로 순발력과 변칙적 행동에서 멀어지게 함으로써 자신을 특정한 경로에서 이탈되지 못하게 한다.
즉, ‘계획 이상의 창조적 삶’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조나라에 조괄이라는 장수가 있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에게 병법을 익힌 그는 ‘영특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정작 아버지는 아내에게 이런 유언을 남겼다.
“조괄은 큰 전쟁에 나서면 안 되오.
조괄은 이론에는 뛰어나지만 결코 그것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오.
만일 조괄이 나라의 존망이 달린 전쟁에서 장수가 된다면 나라에 큰 위험을 미칠 수 있소.”
훗날 조나라의 왕이 진나라에 맞서 군사를 일으킬 때 조괄을 대장으로 임명했다.
이때 참모인 인상여가 반대하고 나섰다.
“조괄을 대장에 임명하는 건 거문고의 기둥을 아교로 붙이고 연주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게 되면 한 가지 소리밖에 나지 않습니다.
조괄은 아버지에게서 병법을 배웠을 뿐,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할 줄 모릅니다.
절대 조괄을 대장으로 임명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왕은 인상여의 말을 듣지 않고 조괄을 총사령관으로 세웠다.
결과는 참담했다.
오로지 병법에만 의존해 작전을 펼치다가 40만 대군 모두를 잃고 만 것이다.
장수에게 병법이란 신뢰할 수 있는 계획과 같다.
하지만 그것에 대한 외골수의 믿음은 처절한 실패를 불러왔다.
중국 변방의 여진족이 한족을 물리치고 청나라를 세울 수 있었던 것은 누르하치(1559∼1626)의 공이다.
그는 순발력과 민첩성을 높이기 위해 군사들에게 가벼운 재질의 갑옷을 만들어 입혔다.
몸놀림을 편하고 부드럽게 하기 위해서다.
우리 인생의 항로도 이와 마찬가지다.
계획에만 의존하고 창의적 일탈과 변칙적 순발력을 발휘하지 못하면 변화되는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
자신의 생각을 가볍게 만들어야 한다.
계획에 과도하게 의존하지 말고, ‘꼭 이래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그래야만 새로운 미래를 위한 창의적 일탈을 시작할 수 있다.
이남훈 / 경제 경영 전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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