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와 테오의 영혼에 바치는 노래", 오베르 쉬르 와즈에서
<고흐와 테오의 영혼에 바치는 노래 1>, 장혜숙, 50호 켄바스, 유화
성악가가 노래하는 것을 노래한다고 하지만
악기를 연주할 때도 노래하듯 하라고 지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시인이 시를 쓰는 것을 노래한다고 하고
화가가 그림 그리는 것도 노래한다고 하나 봅니다.
파리를 다녀와서 불과 며칠 지나지 않아서
아마도 밤을 세워 그렸는지
그림 두 점을, <고흐와 테오의 영혼에 바치는 노래>라는 타이틀의
추상화 2점(50호)을 그렸다고 카카오톡으로 보내왔습니다.
아, 노란색...고흐 하면 노란색이 떠오르고 우리는 아를에서도
노란색 패티오 차양이 아름답다는 이유로 그 카페를 세번이나 가서
노란색이 나는, 호박으로 만든 Soup을 갈 때 마다 먹었습니다.
맛도 있었지만 노란색이, 왠지 마음에 들어서...
추상화라는 것이 그렇다지요. 어떨 때는 작가도 "무제"라는 타이틀로
설명할 수 없는 내면의 소리를 쏟아내는 것,
여행은 그동안 바빠서 그림을 그리지 못했다는 동생의 예술혼을 일깨운듯,
밤을 세워가며 그렸을 동생의 <고흐와 테오의 영혼에게 바치는 노래>...
|
|
비가 질척거리는 1월 12일 토요일 아침, 전철로 북역에 가서 기차(RER)를 타고
고흐가 마지막 두달 여 동안(1890. 5. 21. - 7..29.) 살다가 끝내는
그림을 그리던 밀밭에서 총으로 생을 마감한 곳,
파리 근교의 작은 마을, 오베르 쉬르 와즈를 찾아갔습니다.
|
|
기차역 뒤편 창고같은 건물에도 이런 그림들이...
남 프랑스 프로방스의 아를에서
고갱과의 불화로 자신의 귀를 자르는 사건이 나자
아를의 주민들은 고흐를 경계하기 시작했고
마침내는 생 래미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있다가
쫓겨나다 싶이 아를를 떠나 오베르 쉬르 와즈에 왔던 고흐...
우리가 무슨 고흐 숭배자도 아닌데...
그래도 고흐의 흔적을 다 찾아보고 싶은 우리들의 마음이 일치하여
추운 줄도 모르고 우산 한개를 둘이 쓰고
고흐의 흔적들이 남아있는 마을을 헤메였습니다.
그곳에는 오베르 교회가 있고,
고흐가 살았던 식당을 겸한 라부 여인숙, Auberge Raboux이 있고
여인숙에는 고흐가 머물던 방 (Maison de Vincent Gogh)이 있고
즐겨 그림을 그리던, 그러나 끝내는 자신을 향해 총을 쏘았던 밀밭이 있고
고흐와 테오의 무덤이 있고
고흐를 돌보던 의사 Dr. Gasset의 집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겨울이라 고흐가 머물던 여인숙의 이층에 있는 방(현재는 기념관)도
문이 닫혀있었고... 의사 가셋의 집도 닫혀있었습니다.
|
|
라부 여인숙 옆으로 작은 빈센트 반 고흐 공원이 있는데
오시프 자드킨(1890-1967)이 1961년에 제작한
화구를 메고 있는 고흐의 모습을 담은 조각상이 있었습니다.
자화상에 익숙했던 우리는 고흐의 키가 크다는 생각을 미쳐 하지 못했었는데
이 동상을 보니 고흐의 키가 180 cm가 넘는다는 글을 어느 책에서 본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왠지 고흐의 자화상에서 본 느낌과는 사뭇 다릅니다.
|
|
|
|
기차역에서 건너 와 오른쪽으로 가다 보면
왼쪽으로 낯익은 모습의 교회가 보입니다. 오베르 교회(성당)...
교회의 모습을 보며 가다 보니
화가의 마을 답게 팔레트를 든채 여행객을 맞이하는,
이 마을에서 살았던 화가 샤를르 프랑스와 도비니의 동상이 있고
동상을 지나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 조금 더 가니
오베르 교회가 나옵니다.
세월이 흘러서인지 교회는 낡고 칙칙하고 어두웠지만
교회의 꼭대기에 붙어있는 시계까지
고흐의 그림에서의 모습 그대로 였습니다.
뒤로 돌아가니 교회의 문이 열려 있어서 아무도 없는 성당 안에 살며시 들어가
고흐의 그림이 그려있는 기념품 옆에 놓여 있는 박스에 2유로 짜리 동전 2개를 집어 넣고
오베르 교회 그림이 그려있는 양초를 2개 가져왔습니다.
교회를 지나 이 길 끝 왼쪽에는 밀밭이 있고
오른쪽 담 안은 공동묘지로 이곳에 고흐와 테오의 묘가 나란히 있었습니다.
비가 질척거리는 추운 겨울,
고흐가 그림을 그렸던 밀밭이 허허 벌판이었지만
그래도 좋았습니다.
비 속을 거닐며 우리는 고흐와 테오의 형제애를 얘기했고
그들이 서로 편지왕래를 했던 것을 얘기했습니다.
고흐는 동생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오직 그림그리는 것에, 조금이라고 잘 그리고 싶은 심정을
언제나 얘기했고 동생은 형의 그림이 얼마나 좋은지, 많은 사람들이 좋은 평가를 하고 있다고
형을 위로하고 형에게 용기를 심어주었습니다.
|
|
그들은 죽어서도 이국 땅 파리의 근교 한 모퉁이에 이렇게 나란히 누워있었습니다.
여름에는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다고 하는데
이 겨울에는 그다지 사람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공동묘지는 크지는 않았지만
비석들은 대부분 장엄하고 화려했고 예쁜 꽃들도 많이 놓여 있었는데
한쪽 담벼락에 나란히 있는 고흐와 테오의 무덤은 소박하고 초라했습니다.
어느 연인들이 고흐와 테오의 무덤 앞에 우산을 쓰고서
한참을 머물고 있어서 우리는 그들이 떠나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그들이 떠난 후에 다가 갔습니다.
37세의 안타까운 나이에 생을 마감한 고흐와
형을 보내고 6개월 후에 이유를 알 수 없이 33세의 젊은 나이에
형을 따라 간 테오의 무덤 앞에는 아이비가 엉켜 있어서 마치
두 사람의 진한, 뗄레야 뗄 수 없는 형제애를 나타내는 듯하였고
누군가 꽃아 놓은 릴리 한 송이가 시들은 채 놓여 있어서
마음이 더욱 쓸쓸했습니다.
노란 장미 한송이라도 가지고 갈 껄...ㅋㅋ
묘지 담벼락에 고흐가 그린 밀밭 그림이 붙어 있습니다.
고흐하면 어찌 이리도 마음이 아픈지, 그의 그림은 왜 그리 다 좋은지,
그림에 문외한이지만 학창시절부터 이제까지
그의 그림은 왠지 좋았습니다.
보기에 좋으면 좋은 그림이지
다른 이유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 후에 그의 편지들을 읽으면서 알게 된
그가 얼마나 영혼과 생명을 바쳐서 그림을 그렸는지,
얼마나 가난했고 고독했었는지,
미쳐버리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던 고흐의 예술혼,
고독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했는데
부모한테서 외면 당하고 다가 가는 여인들에게 까지 외면 당하여
창녀한테 다가 갈 수 밖에 없었고,
끝내는 자신을 향해 총을 쏘아야 했던
그 지독히도 비참하고 슬픈 삶...
그러나 죽은 후에라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어서
조금이라도 위로가 될까...
이번 여행이 마치 순례자처럼
오베르와 아를에서 그를 찾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어느 골목 담벼락에 때 이른 노란 개나리가 흐드러지게 피어있었습니다.
남가주에서는 볼 수없는 노란 개나리...
동생은 내과 전문의이지만 이번 여행에서 함께 지내면서 이야기를 해 보니
예술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습니다.
며칠간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림만 그리는 것이 작은 소망이라고,
바쁜 시간을 쪼개어 작업을 하는지라
항상 시간에 목마르고, 진료를 하면서도 작품구상에 여념이 없고...
배고픔보다 더한 예술에의 갈증과 허기에 항상 괴로워하는 예술혼을 지닌
훌륭한 화가였습니다.
단체 관광으로 서유럽, 동유럽, 북유럽, 스페인까지 여행을 한 적이 있지만
이번 여행처럼 개인적으로 가고 싶은 곳을 찾아다닌 적은 처음이라고
얼마나 감탄을 하는지...
동생은 초기에는 해바라기를 열정적으로 그렸다고 합니다.
이제는 추상화를 주로 그리기에, 현대미술에 더욱 관심이 많다고 하면서도
고흐에 대해서만은 어쩔 수 없이 애정이 식지 않는다고...
<고흐와 테오의 영혼에 바치는 노래 2>, 장혜숙, 50호 켄바스, 유화
<고흐와 테오의 영혼에 바치는 노래>라는 타이틀의 그림 2점을 보고
우리가 함께 한 시간이 너무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았기에
당장 문자를 날렸습니다.
"와 너무 멋있다, 눈물이 나려고 하네.
오베르 쉬르 와즈에서 본 고흐와 테오의 무덤이
너에게 엄청난 예술혼을 부어주었구나.
어떻게 이렇게 빨리 멋진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그래, 머리를 쥐어 짠다고 그려지는 것은 아니지,
역시 너는 대단한 화가다.
아마도 너는 파리 체질인가 보다.
파리에 자주 가야겠네. ㅎㅎ"
"언니 평이 더욱 멋져.
정말 무덤보고 영감을 얻었어요.
언니의 사랑과 배려에도 감동하고..."
우리 자매는 이렇게 카카오톡으로 긴밀한 소통을 하고 있습니다.
고흐와 테오가 자주 편지를 주고 받았듯이...
Trio for Piano, Violin and Cello in A minor, Op. 50
"In Memory of The Great Artist"
이 음악은 "어느 위대한 예술가의 추억"이라는 부제가 붙은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트리오입니다.
모스크바 음악원의 초대 원장이며 피아니스트였던
니콜라이 루빈스타인의 죽음 후에 그를 기념하기 위하여
차이코프스키가 작곡한 곡입니다.
니콜라이 루빈스타인은 차이코프스키의 스승이었는데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 B단조, Op. 23에 대하여
혹평을 하여서 둘은 별로 좋은 사이가 아니었다가
이 후 그 협주곡이 명피아니스트들의 연주로 호평을 받게 되자
루빈스타인은 차이코프스키에게 사과를 하여 둘을 화햐를 하고
차이코프스키는 다시 루빈스타인을 존경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루빈스타인이 파리에서 1881년 3월 23일에 숨을 거두자
차이코프스키는 차기 모스코바 음악원 원장의 물망에 올랐지만
사양하고 이태리의 로마에 가서 그를 애도하기 위해
이 곡을 작곡하였다고 합니다.
피아니스트였던 스승을 기리는 곡이라 그런지 구슬픈 멜로디와 함께
피아노 파트가 유난히 웅장하고 화려한 이 곡은
그의 실내악곡 중에서 가장 사랑받는 곡입니다.
'旅行...그곳에 가고싶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불새를 보셨나요? 빠리의 스트라빈스키 분수 (0) | 2013.03.10 |
---|---|
전주 한옥마을 (0) | 2013.02.27 |
스페인 알함브라 궁전 (0) | 2012.09.08 |
스코틀랜드의 휘트비[Whitby] 수도원 (0) | 2012.08.13 |
터키 - 돌마르체 궁전 , 블루모스크 (0) | 2012.07.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