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西古今

속절 없는 세월은 흐르고 있고

뚜르(Tours) 2013. 3. 1. 08:06

아침에 이메일을 보내고 있는데 거실에서 TV를 보던 집사람이 ’나와 보라’며 나를 불렀습니다.
못들은 척 하다가 몇번을 계속 불러 대기에 나갔더니 KBS <아침마당>을 하고 있었습니다.
< 9대 200년 가업 잇는 조선백자>라는 프로였는데 무형문화재 김정옥 사기장이 아들 손자와 함께 3대가 출연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백자白瓷 달항아리를 비추고 있었는데 그 항아리는 우리집 거실 한가운데 놓여있는 것과 같았습니다.
집사람이 흥분해 하며 ’여보, 저 항아리 저기에 두지 말고 이쪽에 두자’고 했습니다.
<이쪽에 두자>, 사연은 이렇습니다.
우리집 백자 달항아리는 옛날에 선물로 받은 것입니다.
크기가 대단합니다.
한 손으로는 들기가 쉽지않고 두 손으로 들어야 할 정도로 크고 무겁습니다.
듬직하고 담백한 모습이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우리는 이 백자를 현관에서 들어오면 제일 먼저 잘 보이는 곳, 안방 문앞 거실에 모셔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집사람이 그 항아리 속에 이런저런 쓰레기(?)를 넣었습니다.
안방과 거실 그리고 식당으로 드나드는 길목인지라, 바닥에 떨어져 있는 부스러기 등을 주워 넣었습니다.
생활속에서 자연히 묻어난 지혜(?)랄까.......
남들이 보기에는 백자白瓷라 우아해서 좋고, 실제로는 쓰레기통으로 쓸모가 있어 좋고.(그누가 속까지 들여다 볼까....)
그것을 못마땅해 하던 속 좁은 남편은 어느날 그 항아리를 다른 곳으로 옮겨버렸습니다.
그러나 자리를 옮겼어도 그 자리는 거실 한가운데 자리였습니다.

방으로 도로 들어가다가 ’다른 도자기陶瓷器들은?’ 하는 생각이 나서 나는 다시 거실로 나갔습니다.
한바퀴 도자기들을 둘러보고 다시 안방으로 들어가려는데 뭔가 찜찜했습니다.
’작은 백자白瓷가 하나 더 있는데......’
다시 거실로 나가서 둘러보았습니다.
문갑위도 보고, 복도 진열장위도 살펴보고....
그런데 작은 백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집사람을 불러 ’이런이런 백자가 보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집사람은 ’그런 것이 있었던가’하는 시늉을 하면서 거실 여기저기를 함께 둘러보았습니다.
집사람은 내가 뭘 잘못 생각하고 있겠거니 하는 듯 했습니다.
바로 그때 내 앞에 작은 백자가 ’짱 !’하고 나타났습니다.
멀리에 있지도 않았습니다.
거실 문갑위 바로 눈높이에.
긴가민가 하며 나를 의심하던 집사람이 그제서야 ’아, 이거다 !’.
농구공 크기만한 하얀 백자가 우아한 자태를 뽑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백자白瓷는 우리 둘이 찾을 때는 보이지 않다가 왜 늦게서야 갑자기 나타난(?) 건지.....

오늘은 또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오전에 헬스클럽에서 였습니다.
얼마전에 들어 온 회원인데 이 사람은 내가 하는 운동기구마다 뒤쫓아서 하고 다녀 나를 성가시게 하고 있습니다.
매번 웨이트를 바꾸어야 하니까요.
오늘도 숨바꼭질을 하다가 무심결에 주위를 둘러보니 그 사람이 보이질 않았습니다.
다 마치고 갔겠거니 하면서 주위를 다시 살펴봤습니다.
역시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사람은 빨간 티셔츠를 입고 있어서 눈에 확 띄는 편입니다.
그리고 오전 이 시간대는 5 ~ 6명 정도 밖에 없는 한산한 시간입니다.
’잘 됐구나’ 하며 바로 앞 Smith Machine을 문득 보는데 그 사람이 등받이 의자에 누워 바벨을 밀어올리고 있었습니다.
나 원 참 !
왜 쫌전에는 내 눈에 보이질 않다가 이제사 갑자기 보이는지........
아침 백자白瓷 생각이 났습니다.

내가 지금 이런 나이입니다.
옛날에는 수백명의 이름도 기억했건만, 이젠 이름이나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왜 그거 있잖아, 그거…"를 연발합니다.
기억력과 주의집중력에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치매라고 할 것 까지는 없고.....
속절 없는 세월은 흐르고 있고......

 

/박영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