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미.중.일 4개국 일본의 반인도적 범죄에 관한 국제회의 한.미.중.일 4개국 학자와 연구원 30여 명은 2001년11월 로스앤젤레스에서 리버사이드 캘리포니아대(UC)가 주최하고 UCLA 한국학연구소 등이 공동 후원한 ‘일본의 반인도적 범죄에 관한 국제회의’에서 주제발표와 토론을 통해 위안부.강제징용 등 일본의 전쟁범죄를 집중 조명했다. 미국에서 진행중인 한인 위안부. 징용소송 원고측 변호인인 배리 피셔 변호사는“미국은 나치 독일 강제노역 피해배상소송에서 유럽의 희생자들을 도와 결국 독일기업으로부터 수십억 달러의 합의금을 받아내도록 했으나 아시아 피해자들에 대해선 일본편을 들어 이들의 정의추구 노력을 실질적으로 방해하고 있다”며 “법정투쟁을 통해 제한적 범위에서라도 진실을 규명하고 사과와 배상을 받아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야시 히로후미 일본 간토(關東)-가쿠인대 교수는 “일본의 군위안부 제도 도입과 발전은 당시 일본의 모든 군(軍)조직과 행정조직의 총체적 개입에 의해 이뤄졌다”며 “일본 기업도 공범자였음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수지량 중국 상하이(上海)사범대 교수는 “위안부제도는 군사적 성노예 제도로 일본 군국주의 전쟁범죄의 중요한 부분이며 여성인권을 짓밟은 가장 폭력적 성범죄”라고 비난했다. 강정숙 한국정신대연구원 연구원은 “사쿠(콘돔) 제조업체인 오카모토주식회사는 민수가 거의 중단된 상황에서 생산품 거의 모두가 군위안소에서 비인도적 목적으로 쓰이는 군수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자기이윤 증식을 위해 사쿠를 생산했다”고 밝혔다. 김민영 군산국립대 교수는 “일본의 국유철도, 연락선, 상선, 여행사는 모두 징용 노무자 및 위안부들의 동원 및 연행을 알고도 의도적으로 돕고 이익을 누렸다”면서 “당시 일본이 통제경제 또는 동원체제가 일반적이었다 하더라도 해당 기업들이 결과를 예상할 수 있었던 만큼 결코 전쟁관련 책임이 무효화되지는 않는다”고 주장했다.
김창록 부산대 교수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및 그 부속문서의 조문을 살펴볼 때 한국인 개인의 권리까지 포기했는지 명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일본 법률 144호(한일협정에 근거, 한국인의 대일청구권을 일방 제한) 역시 일본국 헌법을 위반한 소지가 있는 만큼 개인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최봉태 변호사는 “현재 일본에서 벌어지는 재판의 결과만을 놓고 보면 정의롭지 못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으며 이는 일본 사법부가 가지는 한계”라며 “인류 역사상 위안부와 강제징용과 같은 반인도적 범죄가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재판에서 법적 정의가 세워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 일 본 유 죄 김창록 부산대 법대교수는 부산일보에 다음과 같이 기고했다. 지난 2001년 12월4일 네덜란드의 헤이그에서 특이한 판결이 내려졌다. '국가가 인가한 강간인 일본군 위안부제도에 대해 일본은 책임이 있으며, 일왕 히로히토를 비롯한 10명의 일본인은 유죄다’라는 '일본군 성노예전범 여성국제법정'의 판결이 그것이다. 이 판결은 우선 죽은 자들에게 유죄를 선고했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또한 판결의 주체가 국가의 법정이 아니라 피해국과 가해국 시민들이 구성한 '시민의 법정'이며, 그래서 판결을 집행할 강제력이 없다는 점에서도 특이하다.
이러한 판결의 특이성은 동시에 판결의 의의를 선명하게 드러내주는 것이기도 하다. 판결은, 인도에 반하는 범죄를 저지른 자는 죽어서도 법의 심판으로부터 달아날 수 없다라는 선언에 다름 아니다. 또한 판결은, 법의 선언과 집행을 독점하고 있는 국가가 그러한 중대한 범죄를 방치할 때는 시민들이 나서서 법과 정의를 실현해야 한다라는 선언에 다름 아니다. 그 점에서 판결은, '약자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국가 중심의 20세기적 틀을 뛰어넘고자 하는 새로운 세기의 시도라고 보아 마땅할 것이다. 지금까지 '직무유기'로 일관해 온 국가들이 판결을 경청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 국가들에는,피해자들의 아픔을 방치해 온 한국 등 '피해국'들과, 2차 세계대전 직후부터 범죄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책임을 추궁하지 않은 미국 등 연합국 국가들도 포함된다. 하지만, 판결에서 '유죄'가 선언된 일본이야말로 그 누구보다 겸허하게 판결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일본은 판결이 명하는 대로 진상규명 배상 명예회복 역사교육에 당장 나서야 한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일본은 정반대의 방향으로 내달리고 있다. 역사교과서 파동은 그 하나의 증거다. 게다가 9·11 이후에는 미국의 '전쟁'에 편승하여 자위대를 파병하고, 그 여세를 몰아 일체의 전쟁과 전력을 금지하는 헌법 9조의 개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런데 언뜻 생각하면, 70만 대군을 자랑하며 해외파병을 당연하게 여기는 나라, 끊임없는 전쟁의 위협에 시달리는 한편에서 '전쟁하자'는 해괴한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 나라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에게는, 자위대의 파병이나 9조의 개정이 왜 문제인지 갸우뚱거려질 법도 하다. '전력을 가질 수 없으니 적이 침공해 오면 돌을 던지며 맞서야 한다'라는 일본 헌법학자들의 주장은 황당하게 느껴지기까지 할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는 나름의 역사적인 이유가 있다.
9조는 상징 일왕제와 함께 점령군사령관 맥아더가 패전국 일본에게 지시한 것이다. 점령의 편의를 위해 일왕제를 유지하기로 한 미국이, 침략의 원흉이라는 피해국들의 규탄으로부터 일왕제를 보호하기 위해 전쟁금지라는 '피뢰침'을 고안해냈던 것이다. 그런데 냉전이 심화되는 과정에서 미국은 곧 얼굴을 바꿔 자위대의 창설을 명령했고, 그 후 줄곧 9조의 개정을 종용하고 있다. 하지만, 9조는 55년 동안이나 개정되지 못했다. 그것은 9조를 개정하는 것은 곧 군국주의를 부활시키는 것이다라는 피해국들의 비난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침략에 대해 책임은 지지 못하지만 9조가 있으니 걱정 말라'라는 것이 일본의 논리이고 보면, 일왕제에 의해 상징되는 침략에 대해 책임지지 않고서 9조를 제거하게 되면 침략의 위협은 고스란히 되살아 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일본의 한 우파 정치인은 9조를 개정해서 일본을 '보통국가'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자위전쟁도 군대도 부정하는 비정상적인 상태를 정상으로 되돌리자는 것이다. 그런데 '비정상'은 그것만이 아니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책임을 지지 못하겠다고 버티는 것도 비정상이다. 게다가 역사를 되짚어 보면 이것이야말로 '일본의 비정상'의 핵심이다. 그 점에서 '일본 유죄'를 선언한 판결은, 반세기 이상 방치되어 온 피해자들의 아픔에 대한 만시지탄의 응답일 뿐만 아니라, 21세기의 일본이 '정상국가'가 되기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을 가리키는 이정표이기도 한 것이다.
쓴소리꾼 ; 너희는 반드시 대 재앙으로 심판을 받는다 기억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