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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4일, 오늘의 묵상(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뚜르(Tours) 2013. 6. 23. 23:00

 

오늘의 묵상(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요한 세례자는 사제였던 즈카르야와 성모님의 친척인 엘리사벳 사이에서 태어났 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 다"(마태 11.11). 예수님의 이 말씀처럼, 요한 세례자는 주님에 앞서서 그분의 길을 닦은, 구약과 신약을 이어 주는 위대한 예언자이다. 그는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요한 3,30)라고 고백하는 겸손한 사람이었다. 요한 세례자는 헤로데 임금의 비윤리적 생활을 책망하다가 헤로데의 아내의 간계로 순교하였다. 그는 '말씀'이신 주님의 길을 마련한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였 다. 말씀의 초대 이사야 예언자는 '주님의 종'에 관하여 예언한다. 그가 선포한 이 종은 모태에서 부터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흩어진 당신의 백성을 다시 일으킬 것이다. 이 종은 당시 이스라엘을 이끌 소수의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이지만, 동시에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를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피시디아의 안티 오키아 회당에서 이스라엘 동족에게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선포한다. 예수님 께서는 다윗의 후손으로서 요한이 예고한 구원의 말씀이시다(제2독서). 아기를 갖지 못하는 엘리사벳이 성령의 은혜로 아들을 낳게 된다. 사람들은 통상적인 관례에 따라 아버지 즈카르야의 이름을 따서 아기의 이름을 지으려고 하였지만, 주님의 뜻에 따라 한동안 벙어리로 지냈던 즈카르야는 뜻밖에도 엘리사벳이 말 한 '요한'이라고 이름을 짓는다(복음). 제1독서 섬들아, 내말을 들어라. 먼 곳에 사는 민족들아, 귀를 기울여라. 주님께서 나를 모태에서부터 부르시고, 어머니 배속에서부터 내 이름을 지어 주셨다. 그분께서 내 입을 날카로운 칼처럼 만드시고, 당신의 손 그늘에 나를 숨겨 주셨다. 나를 날카로운 화살처럼 만드시어, 당신의 화살 통 속에 감추셨다. 그분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의 종이다. 이스라엘아, 너에게서 내 영광이 드러나리라." 그러나 나는 말하였다. "나는 쓸데없이 고생만 하였다. 허무하고 허망한 것에 내 힘을 다 써 버렸다. 그러나 내 권리는 나의 주님께 있고, 내 보상은 나의 하느 님께 있다." 이제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그분께서는 야곱을 당신께 돌아오게 하시고, 이스 라엘이 당신께 모여들게 하시려고, 나를 모태에서부터 당신 종으로 빚어 만드셨 다. 나는 주님의 눈에 소중하게 여겨졌고, 나의 하느님께서 나의 힘이 되어 주셨 다. 그분께서 말씀하신다.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다시 일으키고, 이스라엘의 생존자들을 돌아오게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나의 구원이 땅끝까지 다다르도록, 나는 너를 민족들의 빛으로 세운다."(이사 49,1-6) 제2독서 그 무렵 바오로가 말하였다. "하느님께서는 조상들에게 다윗을 임금으로 세우셨습니다. 그에 대해서는 '내 가 이사이의 아들 다윗을 찾아냈으니, 그는 내 마음에 드는 사람으로 나의 뜻을 모두 실천할 것이다.' 하고 증언해 주셨습니다. 이 다윗의 후혼 가운데에서, 하느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예수님을 구원자로 이스라엘에 보내셨습니다. 이분께서 오시기 전에 요한이 이스라엘 온 백성에게 회개의 세례를 미리 선포하였습니다. 요한은 사명을 다 마칠 무렵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너희는 내가 누구라고 생 각하느냐? 나는 그분이 아니다. 그분께서는 내 뒤에 오시는데, 나는 그분의 신 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형제 여러분, 아브라함의 후손 여러분, 그리고 하느님을 경외하는 여러분, 이 구원의 말씀이 바로 우리에게 파견되셨습니다."(사도 13,22-26) 복음 엘리사벳은 해산달이 차서 아들을 낳았다. 이웃과 친척들은 주님께서 엘리사벳 에게 큰 자비를 베푸셨다는 것을 듣고, 그와 함께 기뻐하였다. 여드레째 되는 날, 그들은 아기의 할례식에 갔다가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아기 를 즈카르야라고 부르려 하였다. 그러나 아기의 어머니는 "안 됩니다. 요한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하고 말하였 다. 그들은 "당신의 친척 가운데에는 그런 이름을 가진 이가 없습니다." 하며, 그 아버지에게 아기의 이름을 무엇이라 하겠느냐고 손짓으로 물었다. 즈카르야는 글 쓰는 판을 달라고 하여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썼다. 그러자 모두 놀라워하였다. 그때에 즈카르야는 즉시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그리하여 이웃이 모두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유다와 온 산 악 지방에서 화제가 되었다. 소문을 들은 이들은 모두 그것을 마음에 새기며, " 이 아기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 하고 말하였다. 정녕 주님의 손길이 그를 보살피고 계셨던 것이다. 아기는 자라면서 정신도 굳세어졌다. 그리고 그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 나타날 때까지 광야에서 살았다.(루카 1,57-66.80)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엘리사벳이 외칩니다. "안 됩니다. (아기의 이름을) 요한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사람들은 아기의 이름을 친척이나 집안의 이름을 따르는 관례 를 생각하여 아버지의 이름인 즈카르야를 따서 지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아기의 부모는 엉뚱하게 '요한'이라고 이름 짓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천사가 즈카르야에게 나타나서 아이가 생길 것이 라고 했고, 그 아이는 구세주보다 먼저 오는 예언자가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의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고 하였습니다(루카 1,13-15 참조). 그렇습니다. 즈카르야는 천사의 명을 받들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아이의 이름을 '즈카르야'라고 한다면 사람들의 상식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 반면 아이의 이름을 '요한'이라고 한다면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지 금 이들 부부는 아이의 이름을 짓는 데 사람들의 상식이 아닌, 하느님의 뜻을 따 르겠다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즈카르야'라는 이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아버지처럼 사제로 살아가는 삶을 뜻합니다. 명망이 높아 존경받고, 기득권도 누릴 수 있는 신분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사람들의 상식입니다. 그 반면 '요한'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예언자로 살아가는 것을 뜻합니다. 오롯이 주님께 봉헌되어 명망과 존경보다는 박해를, 기득권보다는 광야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것을 뜻합니다. 엘리사벳과 즈카르야는 이 두 가지 갈림길에서 주님의 뜻을 기꺼이 따르고 있습니다.(매일미사에서 옮김) ----------------------------------------------------------- 오늘의 기도 "하느님, 복된 요한 세례자를 보내시어, 주님이신 그리스도를 맞이할 백성을 준비하게 하셨으니. 저희에게 영신의 기쁨을 주시고, 모든 신자의 마음을 구원과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2013. 6. 24. Martinus

대영광송 / GLOR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