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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연중 제15주간 목요일) 말씀의 초대 하느님께서 모세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려 하시지만,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이 오랫동안 파라오 아래서 노예 생활을 한 탓에 하느님을 잊어비렸을 것 이라고 염려한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강한 확신으로 그에게 이스라엘 백성 을 해방시키실 당신의 계획을 밝히신다(제1독서). 예수님께서 고생하며 지친 사람들을 초대하시며 안식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그러나 짐을 덜어 주시 거나 그들 대신 짊어지시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방식으로 짐을 질 수 있게 하 심으로써 안식을 주시겠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그 무렵 떨기나무 한가운데에서 주님의 목소리를 들은 모세가 하느님께 아뢰 었다. "제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가서, '너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 나를 너희 에게 보내셨다.' 하고 말하면, 그들이 저에게 '그분 이름이 무엇이오?' 하고 물 을 터인데, 제가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하겠습니까?" 하느님께서 모 세에게 "나는 있는 나다." 하고 대답하시고, 이어서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 엘 자손들에게 ''있는 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여라." 하느님께서 다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너희 조상들의 하느님, 곧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 신 야훼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여라. 이것이 영원히 불릴 나의 이름 이며, 이것이 대대로 기릴 나의 칭호이다. 가서 이스라엘 원로들을 모아 놓고, '주 너희 조상들의 하느님, 곧 아브라함 과 이사악과 야곱의 하느님께서 나에게 나타나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고, 그 들에게 말하여라. '나는 너희를 찾아가 너희가 이집트에서 겪고 있는 일을 살 펴보았다. 그리하여 이집트에서 겪는 고난에서 너희를 끌어내어, 가나안족과 히타이트족과 아모리족과 프리즈족과 히위족과 여부스족이 사는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데리고 올라가기로 작정하였다.' 그러면 그들이 너의 말을 들을 것이다. 너는 이스라엘의 원로들과 함께 이 집트 임금에게 가서, '주 히브리인들의 하느님께서 저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러니 이제 저희가 광야로 사흘 길을 걸어가, 주 저희 하느님께 제사를 드릴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여라. 그러나 강한 손으로 몰아세우지 않는 한, 이집트 임금은 너희를 내보내지 않으리라는 것을 나는 안다. 그러므로 나는 손을 내뻗어 이집트에서 온갖 이 적을 일으켜 그 나라를 치겠다. 그런 뒤에야 그가 너희를 내보낼 것이다." (탈출 3,13-20) 복음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 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마태 11,28-30) 오늘의 묵상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이 말씀을 '예수님께 가기만 하면 내가 짊어지고 있는 짐들이 다 없어 지게 괸다.'는 식으로 알아들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그러한 뜻으로 말 씀하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뒤이어 하신 말씀에서 알 수 있습니다. "나는 마 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당신의 멍에를 메라 고 하시고, 당신에게서 짐을 지는 법을 배우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짐을 없애 주시겠다는 말씀은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짐을 지고 가기를 원하십니다. 그 대신 그 짐을 어떻게 지고 가야 하는지 가르쳐 주십니다.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는 말씀에서 우리는 그분 삶의 방식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실제로 그 분께서는 당신의 짐을 기꺼이 지셨고, 그 안에서 기쁘게 사셨습니다. 이것이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배워야 할 점입니다. 그렇다면 같은 짐이 더 가볍게 느껴지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당신의 짐을 기쁘게 지실 수 있었던 것일까요? 그 비결은 '사랑'입니다. 어머니가 자식을 낳을 때 겪는 고통은 고통이기에 앞서 기쁨입니다. 몸으로 느끼는 아픔보다도 막 태어날 아이에 대한 기대와 사랑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고통을 이기게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버지 하느님을 너무나 사랑하시기에 아버 지의 뜻에 '자발적인 순종'을 하실 수가 있었습니다. 또한 우리를 너무나 사랑 하셨기에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의 고통을 기꺼이 받아들이셨던 것입니다. 결 국 우리가 예수님께 배워야 할 점은 진심 어린 사랑입니다.(매일미사에서 옮김) ----------------------------------------------------------------- 오늘의 기도 "하느님, 타락한 세상을 성자의 순종과 굴욕으로 다시 일으키셨으니, 저희에게 파스카의 기쁨을 주시어, 죄의 억압에서 벗어나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2013. 7. 18. Martin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