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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성 보나벤투라 주교 학자 기념일) 보나벤투라 성인은 이탈리아의 중부 지방 바뇨레지오에서 태어났다. 작은 형제 회(프란치스코회)의 수도자가 된 그는 파리에서 공부한 뒤 대학교 교수로 학문 연구에 많은 힘을 기울였다. 작은 형제회의 총장으로 선출된 보나벤투라는 자 신의 수도회 설립자인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의 전기를 완성하였으며, 철학 과 신학 분야의 권위 있는 저서도 많이 남겼다. 1274년 무렵 선종한 그를 1482 년 식스토 4세 교황이 시성하였다. 1588년 식스토 5세 교황은 중세의 뛰어난 철학자이자 사상가로 존경받고 있던 보나벤투라 주교를 교회 학자로 선포하였 다. 말씀의 초대 이집트의 재상이었던 요셉이 죽은 지 오랜 세월이 지나 이스라엘 백성이 크게 불어났다. 이집트의 새 임금은 이스라엘 백성을 견제하고자 부역 감독들을 세 워 강제 노동으로 이스라엘인들을 억압하고, 그들 사이에서 아들이 태어나면 모두 강에 던져 버리라고 명령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에게 당신 을 믿고 따르려면 가족이나 자기 목숨보다도 당신을 먼저 사랑해야 한다고 가 르치신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세상의 가르침과 대립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복 음). 제1독서 그 무렵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임금이 이집트에 군림하게 되었다. 그가 자기 백성에게 말하였다. "보아라, 이스라엘 백성이 우리보다 더 많고 강해졌다. 그 러니 우리는 그들을 지혜롭게 다루어야 할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그들이 더욱 번성할 것이고, 전쟁이라도 일어나면, 그들은 우리 원수들 편에 붙어 우리에게 맞서 싸우다 이 땅에서 떠나가 버릴 것이다." 그래서 이집트인들은 강제 노동으로 그들을 억압하려고 그들 위에 부역 감 독들을 세웠다. 그렇게 하여 이스라엘 백성은 파라오의 양식을 저장하는 성읍, 곧 피톰과 라메세스를 짓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억압을 받을수록 더욱 번성 하고 더욱 널리 퍼져 나갔다. 이집트인들은 이스라엘 자손들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집트인들 은 이스라엘 자손들을 더욱 혹독하게 부렸다. 진흙을 이겨 벽돌을 만드는 고된 일과 온갖 들일 등, 모든 일을 혹독하게 시켜 그들의 삶을 쓰디쓰게 만들었다. 마침내 파라오가 온 백성에게 명령하였다. "히브리인들에게서 태어나는 아 들은 모두 강에 던져 버리고, 딸은 모두 살려 두어라."(탈출 1,8-14.22) 복음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나는 아들이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갈라서게 하려고 왔다. 집안 식구가 바로 원수가 된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아들 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또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제 목숨을 얻으려는 사 람은 목숨을 잃고, 나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너희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이고, 나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예언자를 예언자라서 받아들이는 이 는 예언자가 받을 상을 받을 것이고, 의인을 의인이라서 받아들이는 이는 의 인이 받는 상을 받을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그가 제자 라서 시원한 물 한 잔이라도 마시게 하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 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에게 다 지시하시고 나서, 유다인들의 여러 고을에서 가르치시고 복음을 선포하시려고 그곳에서 떠나가셨다.(마태 10,34-11.1) 오늘의 묵상 오늘 예수님께서는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 을 깊이 새기고자 『성경』에서 칼이 뜻하는 의미를 살펴봅시다. 첫 번째로 아브라함의 칼입니다. 그는 하느님의 명령 때문에 외아들 이사악 을 모리야 산에서 칼을 들어 찌르려고 하였습니다. 이때의 칼은 하느님의 말씀 에 대한 순종으로 사랑하는 이를 포기하는 하나의 '결단'을 상징합니다. 두 번째로 할례의 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다른 민족들과 구분하려고 사 내아이가 태어나면 칼로 할례를 합니다. 곧 깨끗하지 못한 것을 잘라 내어 하 느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겠다는 다짐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때의 칼도 하느 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으로 하느님의 참백성이 되려는 하나의 '결단'입니다. 세 번째로 성모님의 칼입니다. 성모님께서 예수님을 성전에 봉헌하실 때 시 메온은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게' 된다고 예언합니다(루카 2,35 참조). 곧 예수님 때문에 겪게 되는 고통을 견뎌 내라는 말씀입니다. 마지막으로 칼의 의미를 아우르는 구절들이 있습니다. 칼이 하느님의 말씀 을 상징한다는 것입니다. "입에서는 날카로운 쌍날칼이 나왔습니다"(묵시 1, 16). "성령의 칼을 받아 쥐십시오. 성령의 칼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에페 6, 17)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 다"(히브 4,12) 요컨대, 『성경』에서 칼이란 고통까지도 기꺼이 받아들이는 하나의 결단 이며, 그 결단의 원인이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하신 말씀은, 예수님께서 하느님 의 말씀을 전하시려고 오셨으니, 결단력을 가지고 하느님의 말씀을 지연이나 학연, 더 나아가 혈연보다도 우선시하라는 뜻입니다.(매일미사에서 옮김) ----------------------------------------------------------------- 오늘의 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복된 보나벤투라 주교의 천상 탄일을 기념하며 비오니, 저희가 그의 높은 지혜와 가르침을 따라 살아가며, 언제나 그의 불타는 사랑을 본받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2013. 7. 15. Martin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