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西古今

개미와 파리의 재능

뚜르(Tours) 2014. 6. 27. 11:09

몸무게 4배 이상의 흙은 10억번 이상 끌어내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철저한 분업으로 단칸방에서 시작해 지하 대도시를 건설하는 억척스런 살림꾼인 잎꾼개미, 우리가 어렸을 적에 읽었던 동화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서양에서는 베짱이 대신 파리가 등장 동물입니다. 로마 파이드루스 우화에는 『개미와 파리의 재능』이라는 제목의 우화가 있습니다.

개미와 파리는 부지런하기로 소문나 있었습니다. 파리는 쉴 새 없이 날아다녔고, 개미는 쉴 새 없이 기어다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개미와 파리가 만나 말싸움을 벌였습니다.

파리가 우쭐대며 말했습니다.
“나의 특별한 능력은 상상을 초월해.”
“그게 어떤 능력인데?”
“나는 너처럼 땀 흘려 일하지 않고도 배불리 먹을 수 있어.”
“그게 자랑이야?”
“제사 때는 신이 먹는 제물도 먼저 맛보고, 임금님의 머리, 코, 입에 내키는 대로 다 앉을 수 있어. 그뿐인 줄 알아? 예쁜 공주님과 키스도 할 수 있지. 이건 아무나 할 수 없는 멋지고 아름다운 모험이야. 너 같은 시골뜨기는 상상도 못할 일이지.”

개미가 대꾸했습니다.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배불리 먹고, 신의 음식을 먼저 맛보고, 임금님의 얼굴을 탐험하고, 또 아름다운 공주님과 키스하고······. 다 자랑할 만한 일이지. 그런데 그게 모두 초대받지 못한 불청객이 하는 짓이잖아. 그리고 내가 여름 내내 일해서 수확한 양식으로 겨울을 지낼 때 넌 뭘 먹고 지낼 거니?”
“먹을 건 사방에 널려 있어.”
“그렇겠지. 여기저기 버려진 더러운 찌꺼기를 빨아 먹겠지. 배불리 먹는 것에도 격이 있는 거야.”

열심히 일해서 얻는 것이 가치 있는 것입니다. 무엇이 그리 바쁜지 앞만 보고 달려온 우리에게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우화입니다.

우리가 어렸을 적에 읽었던 동화는 꿈을 간직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나 저처럼 나이 들어 세상 때에 찌든 사람들은 찌든 때를 정화시키기 위해서 동화와 동시를 읽어야한다고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꿈을 먹고 살고 어른들은 추억을 먹고 산다.”는 말이 있는가 봅니다. 위의 동화를 저는 조금 다른 시각에서 보려고 합니다. 개미와 파리는 둘 다 자기의 입장에서 보면 맞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서로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이 옳고 상대방이 하는 일은 어리석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건 동물 입장에서 본 것이고 과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신기하게도 우리 주위에도 개미와 같은 사람들이 있고 파리와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미와 같이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개미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인간은 생각할 수 있기에 자기 배만 채우는 사람들도 있지만, 가끔씩은 자신이 힘들여 모은 것들을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망설임 없이 내어 놓은 아름다운 경우도 보게 됩니다. 그러면 파리와 같은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남들이 보기에는 창피한 일인데 자신은 대단하고 특별한 일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 일이 밝혀지면 세상 사람들에게 창피를 당할 것이 뻔한 데, 자신은 그것을 숨길 수 있다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저도 주위에서 가끔씩 이런 일을 보며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품격(品格 : 품위와 격식)이라는 단어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품격’ 이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된 바탕과 타고난 성품 또는 사물 따위에서 느껴지는 품위’를 뜻합니다. 품격을 뜻하는 영어 단어 ‘dignity’의 라틴어 어원은 ‘dignitas’인데, 이것은 ‘높은 정치적·사회적 지위 및 그에 따른 도덕적 품성의 소유’를 의미합니다. 고대 로마의 철학자이자 정치가였던 키케로는 동물과 인간을 구별할 때 이 dignitas라는 말을 적용하기도 했습니다. 격(格)은 “품격 또는 이르다”의 뜻으로 쓰이는 글자입니다. 격(格)은 나무 목(木)과 각각각(各)이 합해 이루어진 글자입니다. 나무(木)가지가 각각 자유로이 자란 모습을 나타낸 것입니다. 자유로이 자란 듯하지만, 태양을 향한 일정한 품격을 지니고 자라면서 하나의 방향에 이르는 모습입니다. 여기서 ‘품격과 이르다’의의미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품격에 해당하는 인격(人格)이 있고 물건 값이 얼마 정도인가 이르는 것을 가격(價格)이라 부릅니다.

지구상에는 72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다양한 환경에서 각기 다른 일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어느 곳에서 무엇을 하든지 자기 위치에서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의 의미와 보람을 느끼며 올바른 품격을 지닌 삶을 살아갈 수만 있다면, 우리가 사는 사회도 언젠가는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며 화를 내는 일보다는 흐뭇해하며 미소를 머금는 일들이 많아질, 그런 날이 올 것이라는 파아란 기대를 해 봅니다.


조 덕 현 / 해군사관학교 군사전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