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西古今

세월호 참사를 보는 국제사회의 시선

뚜르(Tours) 2014. 6. 30. 10:03

1997년 말 해외 언론은 일제히 “한국이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고 보도했다. 외환위기를 맞아 한국이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직후의 일이다.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 시대를 열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는 등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는 환호 속에서 갑작스러운 위기를 맞은 한국을 묘사한 것이다.

 사실 이 문구는 서울 올림픽 직후인 1989년 당시 워싱턴포스트 한국특파원 피터 마스 기자가 한국의 만연한 소비 풍조에 빗대어 처음 사용한 것인데 그로부터 10년도 안 되어 그의 말이 사실처럼 되어버린 셈이다. 실제로 1990년대의 한국을 살펴보면,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그리고 서해훼리호 침몰 등 외형적 경제성장의 그늘에 가렸던 대형 사건 사고로 얼룩진 참담한 모습을 부인할 수 없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이 시점에 세월호 침몰과 그 수습 과정을 보면서 과연 대한민국이 선진국이긴 한가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바라보며 ‘통일 대박’을 외치고 있는 나라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벌어졌으며 그동안 외국에 비쳤던 긍정적 이미지와 오버랩돼 더 큰 충격을 받게 된다.

 해외에서 바라보는 한국은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단기간에 경제 발전과 민주화를 이룩한 나라, 그리고 이를 뒷받침한 뜨거운 교육열을 가진 나라로 자리매김해 왔다. 하지만 화려한 겉모습에 가렸던 부끄러운 속살이 이번 사건을 통해 여지없이 드러났고 더 늦기 전에 한국의 미래에 대해 뼛속 깊이 고민하고 성찰해야 한다.

 이번 세월호 사건을 보면서 리더들의 책임감이나 리더들에 대한 국민의 믿음을 발견할 수 없는 것이 한없이 안타깝다. 2001년 9월 11일 수천 명의 사망자를 낸 테러를 당하고도 범국가적 차원에서 일치단결하여 위기를 극복했던 미국과 너무나 대조된다. 9·11테러 이후에 국토안보부를 신설하고 국가 정보를 총괄하는 국가정보국(DNI)을 신설하는 등 후속 조치를 마련하는 과정에서 국민의 불편도 적지 않았지만 미국 사회에 대한 믿음과 지도층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미국처럼 개인주의에 기반을 두면서도 사회가 잘 유지되기 위해서는 공동체에 대한 사회구성원의 믿음과 소속감, 그리고 리더들의 책임감과 희생정신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따라서 어려서부터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대한 봉사와 책임의식을 갖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중고등학교에서는 교외활동 시간에 커뮤니티 봉사를 장려하고 대학 입학 사정에서도 리더십을 중요하게 고려하며 은퇴 후에도 자원봉사자로 일하는 시니어가 많다. 한국도 이제는 공부 잘하고 많은 스펙을 쌓아서 출세하는 것 못지않게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대한 헌신을 강조하고 리더들의 윤리의식과 책임감을 고양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해야 한다.

 이번 사건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되고 있는 관가의 유착관계만 해도 그렇다. 정부부처의 퇴직 공무원이 관련 협회장으로 가는 것은 분명히 이해관계의 상충(conflict of interests)에 해당하지만 그동안 관례처럼 되어 버렸다. 문제는 이러한 유착관계가 정부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며 또 전혀 새로운 이슈도 아니라는 데 있다.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비정상적 유착관계가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한 그 사회에 대한 구성원의 믿음은 얻을 수 없으며 지금과 같은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된다.

한 나라나 집단의 조직이 효율성이 있는지는 위기 시에 가장 명확히 드러나며 한국처럼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는 분단국으로서 통일을 준비해야 하는 입장에선 위기관리 능력이 더없이 중요하다. 하지만 새로운 기구를 만들고 조직을 개편한다고 해서 위기관리 능력이 크게 개선될 수 없다. 리더들의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 그리고 이들에 대한 사회 구성원의 믿음을 키워갈 수 있는 교육과 문화가 뒷받침되어야만 한다.

 한국은 외환위기를 가장 잘 극복한 사례로 꼽힌다. 더 나아가 그때의 경험이 최근 글로벌 경제위기를 대처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 세월호 침몰의 상처와 아픔이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선 이번 사건의 교훈을 성찰하여 1997년 외환위기처럼 대한민국이 한걸음 더 전진하는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는 데 온 국민의 에너지를 모아야 할 것이다.

                                             신기욱  /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 소장